정읍 다움목장의 소들은 아침만 되면 밖에 나가겠다고 축사 문에서 줄을 선다. 목장주 손영수(43) 대표가 다가가자 소들이 다가왔다. 정읍/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지난해 10월5일 전북 정읍시의 다움목장. 손영수(43) 대표가 울타리에 다가가자, 멀리서 풀 뜯던 소들이 머리를 다가왔다. 가을 바람이 산들거렸다.
다움목장에서는 육성우 40마리, 성우 48마리 등 100여마리가 산다. 젖을 뗀 뒤 15개월령까지의 육성우는 매일 방목을 하고, 15개월 이상의 성우는 주로 축사에서 머물며 가끔 목장을 나간다. 이 농장에서는 30개월 도축될 때까지 소는 전 생애 배합사료를 안 먹고 풀만 먹는다.
“울타리를 쳐서 목장 구역(목구) 7곳을 만들었어요. 소들은 한 구역에서 사나흘 풀 뜯다가 다른 목구로 이동해요. 아침에 목구로 출근해 저녁에 축사로 돌아오죠.”
목장을 돌며 소를 이동(윤환방목)시키는 까닭은 소들이 먹는 풀을 양질의 상태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풀에게 다시 자랄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억세고 큰 풀은 성우들을 풀어 '청소 베기'를 한다. 외국의 대규모 목장에서는 이 작업에 농기계를 이용한다.
서울에서 요가 강사를 하던 손 대표가 소를 키운 건 우연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시골에 내려왔다가 이 일을 이어받은 것이다. 사람의 건강, 동물의 행복, 기후변화에 관심 있던 터라 ‘소를 초식동물답게 키워보자’고 결심했다.
“처음에 등급이 안 나와서 팔아준다는 곳도 없었죠. (국내 한우는 마블링을 중시해서 방목한 소의 육질이 질기다는 인식이 있다) 혼자 공부해서 나름의 사육 방법을 확립했어요. 쓸데없이 제각(뿔깎기)을 하지 않고, 풀을 세심하게 관리해요. 축사에 있는 소들에게는 주변 농지에서 사료 풀을 길러서 주고요.”
사료 풀을 재배할 때도 경운(밭갈기)을 안 한다. 매년 땅을 뒤엎는 밭갈기 과정에서 토양에 저장된 탄소가 대기로 배출되기 때문에 관행농업은 기후변화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최근 들어 세계는 토양의 탄소 격리저장 능력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탄소는 대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토양의 탄소량은 대기 탄소량의 2.3배이고, 살아있는 생물의 3.2배다. (모든 생물체의 재료는 탄소다)
나무를 뽑고 밭을 갈면 표토층에 있는 탄소가 날아가 버린다. 1850년 이후 1998년까지 780억톤이 날아가 온실가스 농도를 높였다. 농업이 시작된 신석기혁명 이후에는 1330억톤이 날아갔으니, 절반 이상이 근현대 들어 배출된 셈이다. 참고로, 인류가 한해 내뿜는 온실가스양이 400억~500억톤 정도다.
소가 주목받고 있다. 왜 그럴까? 식물의 뿌리는 토양 생태계에서 양분을 얻고 탄소를 주는데, 이때 수지상균근균이 미세한 실 같은 것으로 식물 뿌리를 그물처럼 감싼다. 이것을 ‘글로말린’이라고 하는데, 탄소를 토양에 저장하는 일종의 접착제다. 이때 소도 한몫한다. 풀을 뜯어 먹으면서 땅을 적당히 밟아주고 배설물을 배출함으로써, 토양의 질을 높이고 입단화(토양 입자가 모여 큰 덩어리가 되는 작용)해 침식을 방지한다. 소의 이러한 생태적 기능을 잘 알고 부릴수록, 탄소 저장 능력은 월등해진다. 손 대표는 “소는 땅을 가꾸는 농부”라고 말한다.
손영수(43) 다움목장 대표가 소에게 풀을 주며 교감하고 있다. 정읍/남종영 기자
그러나 토양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많은 소를 한꺼번에 방목하면(과방목) 안 하는 것마냥 못하다. 용펠 바이 중국과학아카데미 교수는 지난해 8월 <사이언스>에 관련 연구를 정리한 논문에서 “지구적으로 보면, 계절마다 소를 옮기거나 자주 자리를 옮겨주는(윤환) ‘가벼운 방목’을 하면 오히려 탄소 저장 능력이 향상됐다. 반면 한 자리에서 지속해서 이뤄지는 ‘중간 강도 이상의 방목’에서는 토양 탄소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재생농업과 방목을 중심으로 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재생농업은 밭갈기를 하지 않고 여러 작물을 함께 키워 토질을 향상하는 농법이다.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질소를 배출하는 비료에 의존하지 않는 데다 밭갈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한다. 여기에 소를 탄소 농사꾼으로 고용하는 방목이 결합한다.
지난달 13일 농림축산식품부 축산환경자원과 관계자는 “탄소 흡수원 확대와 사료작물 자급 그리고 동물복지 등을 위해 방목생태축산을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는 방목생태축산 농가 55곳을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한우 농가 19곳, 젖소 농가 8곳이다.
물론 난관도 있다. 우리가 먹는 일반적인 한우는 성우가 된 후 5~6개월 추가 비육해 지방 성분을 높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난다. 이른바 ‘마블링 효과’다. 역설적이지만, 맛있는 소는 운동을 시키지 않고 가둬야만 만들어진다. 방목 소는 이런 맛이 부족하다.
지구를 덮고 있는 흙과 풀과 수지상균근균 그리고 소와 소 위 속에서 메탄을 만들어내는 미생물까지 모두 인간과 지구를 함께 이끄는 존재들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깨진 균형을 또다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극복해야 할까?
손영수 대표는 “항상 판로가 걱정이었는데, 농림축산식품부가 참여한 유기농방목마켓이 생겨 올리는 즉시 바로 나간다”고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키울 거면 소가 덜 고통받고 기후에도 좋았으면 했어요. 나는 그저 풀밭의 소를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정읍/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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