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해 12월2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에서 삼성전자, 엘지(LG) 등 동아시아 주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아르이(RE)100’ 모의 경주 행위극을 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삼성전자, 엘지(LG)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엘지디스플레이,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국내 전자제품 관련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노력이 최하위권으로 평가됐다.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는 28일 미국 기후 환경단체 스탠드어스와 공동으로 전 세계 전자제품 브랜드와 공급업체의 기후위기 대응 성과를 분석하고 평가한 ‘온실가스 배출의 외주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는 브랜드사 10곳과 이들에게 납품하는 동아시아 반도체·디스플레이·최종조립 부문 주요 공급업체 14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평가 항목은 △기후위기 대응 목표 수립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및 조달 방법 △전력 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량 △정책 옹호 활동 등이다.
이들 단체는 전자제품 브랜드사 가 공급업체에 온실가스 배출을 떠넘겨 ‘외주화’한다고 지적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은 자사 운영 기준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100%를 달성했지만, 이들 기업에 납품하는 주요 제조사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쳤다. 또 공급망까지 포함해 배출량 감축 목표를 밝힌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에이치피(HP), 소니 등 6개 기업 가운데 실질적으로 공급업체가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릴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한 곳은 애플과 구글뿐이었다. 보고서는 자사 운영 탈탄소화에 대해서는 애플과 구글을 에이플러스(A+), 마이크로소프트는 에이마이너스(A-)로 평가했지만, 공급망 탈탄소화에 대해서는 애플 비마이너스(B-),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디(D)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전체 등급은 애플의 경우 비(B),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시마이너스(C-)로 나타났다.
전자제품 브랜드사인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가장 낮은 점수인 에프(F) 등급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공급망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기후위기 대응 노력조차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삼성전자가 20.4%, 엘지전자가 4.6%로 낮았는데, 그조차도 주로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에 의존했다. 발전사업자가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한 전력량에 대해 인증서를 발행하면 이를 사는 것이다. 반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접 설치, 재생에너지 지분 투자, 전력구매계약(PPA) 등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방식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고 있다.
국내 공급업체들도 기후위기 대응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엘지디스플레이는 각각 디플러스(D+)와 디(D)를 기록했다. 두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5%와 11%에 그친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반도체 공급업체 중 가장 낮은 점수(D)를 받았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2020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아르이(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하자는 국제 캠페인)에 가입했지만,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4.1%에 그쳤다. 2019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은 11.7%나 증가했다. 반도체 공급업체로서 삼성전자의 등급은 디플러스(D+)였다. 국내 공급업체들도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나 녹색프리미엄(전기료에 녹색프리미엄 명목의 웃돈을 낸 뒤 ‘재생에너지 사용량 확인서’를 발급받는 방식) 등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방식에 의존했다. 국내 공급업체들은 자사의 공급망에 대한 재생에너지 사용 목표도 수립하지 않았다.
캐트린 우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아이시티(ICT·정보통신기술) 캠페인 리더는 “삼성전자나 엘지전자 같은 대기업이 명확한 공급망 탈탄소 목표가 없다는 것은 글로벌 수준에 걸맞지 않다. 두 기업은 2030년까지 공급망을 포함한 100%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양연호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아이시티 기업은 오염자부담원칙에 따라 지구 온난화의 주요 책임자로서 그에 합당한 역할을 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신규로 늘리지 못하는 조달 제도에 의존해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수치만 채우는 것은 그린워싱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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