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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원전 드라이브’에 ‘안전 무시’ 징후 벌써 나타나고 있다”

등록 2022-07-13 09:00수정 2022-07-13 20:26

이종규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격납건물에 공극 140개’ 한빛 4호기에 “안전” 평가
원전 확대 방침 맞추려 가동률 높이기 무리수 우려

EU ‘그린 택소노미’ 조건 까다로워 한국엔 무의미
원전이 미래 먹거리? 경제성 낮아져 사양산업 명백

문재인 정부 ‘탈원전’, 입법 통해 구속력 담보했어야
월성 원전 수사는 ‘정치 감사’ 따른 ‘정치 수사’ 의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사무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전 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사무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원전 정책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정부가 ‘원전 드라이브’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핵심 선거 공약 중 하나가 ‘원전 최강국 건설’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급기야는 “지금 원전업계는 전시다. 전시에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김영희 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거침없는 ‘친원전’ 행보가 두렵다고 했다.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그는 국내 굵직한 원전 관련 소송을 도맡다시피 해온 탈핵 전문 변호사다. 문재인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의 토대가 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을 맡아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월성 1호기 폐로는 윤 대통령이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로 꼽은 사건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악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 변호사를 만나, 탈핵 운동에 대한 소회와 윤석열 정부 원전 확대 정책의 위험성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그의 사무실에서 했다.

―‘해바라기’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십시오.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변호사·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자 등 약 100여명이 꾸린 전문가 단체입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고 약 4개월 뒤인 2011년 7월 결성됐습니다.”

―변호사로서 탈핵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후쿠시마 사고였나요?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는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을 주로 했습니다.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있어서 새만금 소송과 4대강 소송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원전이 가장 반환경적, 반인권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탈핵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진행한 소송 중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낸 소송을 꼽는다면?

“저희가 처음 진행한 소송이 2012년 제기한 원자력이용시설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작성 고시에 대한 헌법소원입니다. 당시 고시는 원전 건설 때 하게 돼 있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 중대 사고에 대한 평가를 제외하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거잖아요. 헌법소원을 낸 이후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15년 저희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중대 사고 평가를 하는 것으로 고시를 개정했습니다. 2015년엔 원전 사업자가 전원(발전 시설) 개발 실시계획 승인을 받으면 지진·해일 위험 등 부지 안전성 심사 없이도 원전 부지 사전 승인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전원개발촉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는데, 그 이듬해에 해당 규정이 삭제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2017년에는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에서 승소했는데, 수명 연장 소송에서 이긴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사례라고 알고 있습니다.”

―원전 관련 소송은 수행하기도, 승소하기도 꽤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요?

“원전 소송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도 많은데 도와주는 전문가가 거의 없습니다. ‘배신자’로 찍히면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하거든요.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저도 원자력 분야뿐만 아니라 지진, 기계, 전기, 물리, 의학 등 여러 분야의 공부를 직접 해가면서 소송을 했습니다. 중대한 공익이 걸린 일임에도 어떤 경제적 후원도 없이 스스로를 소모하는 방식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도 힘든 점입니다.”

―탈핵 소송에 대한 법원의 태도는 어떤가요?

“우리나라 법원은 국책사업에 대한 정부 결정이나 사업자의 경제적 손실을 국민의 안전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희가 진행한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이 대표적입니다. 1심부터 대법원까지 건설허가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럼 건설허가를 취소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미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는 등의 이유로 취소를 안합니다. 당연히 이겼어야 할 소송을 진 거라서 정말 충격이 컸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탈핵 소송을 계속 맡으시는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탈핵 소송은 돈이 안 되고, 너무 어렵고, 이기기도 힘들어요. 그러니 하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런데 원전 문제는 내버려두기엔 너무 중요해요. 원전 문제에 대해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있는 한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할까요? 그런 사명감으로 지금까지 버텨 왔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원전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습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가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기존 원전 부지에 보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제정되면 헌법소원을 낼 겁니다. 정부는 임시 저장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원전 부지마다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저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전 건설에도 동의한 적이 없는데, 거기다가 고준위 방폐장(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짓는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연장 과정에서 위법성이 발견되면 무효소송도 해야 할 텐데 저희가 그걸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원전 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면서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전 확대를 급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전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습니다.

“‘안전 무시’의 징후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어요. 어제(7일)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가 열렸는데, 원자료 격납건물에 무려 140개의 공극(빈 공간)이 발견돼 5년째 가동 정지 상태인 한빛 4호기에 대해 안전하다는 평가 보고서가 제출됐습니다.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낸 겁니다. 격납건물에 공극이 많으면 사고시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생겨 방사능이 외부로 방출될 수 있는데 안전성이 확인됐다고 평가를 한 거죠. 신한울 1호기도 후쿠시마 사고 같은 수소 폭발을 막기 위한 장치인 수소제거기 안전성 문제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산업부가 시운전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왜 그랬겠어요? 대통령이 안전은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한 데다가, 원전 확대 방침에 맞춰 원전 가동률을 빨리 높여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이라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줄줄이 이뤄질 노후 원전 수명연장 과정에서도 안전성 심사가 허술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에서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창원/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에서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창원/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원전을 미래 먹거리로 여기는 듯합니다. 원전이 유망한 산업이 될 수 있을까요?

“원전은 세계적으로 사양산업임이 명백합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신규 가동에 들어간 원전은 30기, 영구 폐쇄된 원전은 41기입니다. 신규가동 30기 중 선진국에서 가동에 들어간 것은 단 1기뿐입니다. 그마저도 한국에서 가동된 것입니다. 나머지는 중국 17기, 러시아 6기 등입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규제와 건설비용 상승으로 인해 경제성이 낮아져 건설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반면 재생에너지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2030년이 되면 태양광의 발전비용이 가장 낮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고리 5·6호기가 2024년 가동을 시작하면 2084년까지 가동됩니다. 더 싼 재생에너지가 있는데 위험하고 사용후핵연료 문제까지 있는 원전을 가동할 이유가 있을까요?”

―재생에너지는 간헐성 탓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가더라도 기저발전원으로 원전을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원전은 유연하게 출력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수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할 때 거기에 맞춰 원전의 출력을 낮추지 않으면 수요 공급 불일치로 정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함께 늘리자는 건 구조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야 하니 원전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사실은 기후위기 때문에 원전이 더 위험해졌어요. 기후변화로 인해 대형 산불과 강력한 태풍의 빈도가 늘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데, 그런 기후재난 때문에 원전이나 송전선로에 문제가 생겨 사고나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실제 2020년엔 태풍으로 원전 6기에서 외부 전원 공급이 끊기고 원전 2기의 터빈발전기가 멈추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감사원도 2018년 실시한 원전 안전관리실태 감사에서, 고리 원전의 침수예방대책이 미흡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원전은 탄소중립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원전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개별 원전 부지별 밀집도와 규모, 원전 규모 대비 30km 반경 인구수에서도 세계 1위입니다. 그만큼 사고 위험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한전의 보고서에도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고 같은 사고가 나면 고리 원전의 총 손해 비용이 2492조원, 4개 원전지역 평균 피해 액수는 142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애플이나 테슬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국제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의 제품은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RE100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2021년 기준 전력소비량 상위 30개 기업이 필요로 한 전력량이 102.9테라와트시(TWh)인데,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09테라와트시밖에 안 됩니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이 부족한 상황인 거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크게 늘려야 하는데,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해 원전을 확대하다 보면 기업들이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원전이 친환경 발전원이라는 주장도 줄기차게 나오고 있습니다.

“원전은 가장 반환경적인 에너지원입니다. 평상시에도 기체와 액체 형태의 방사성 물질을 배출합니다. 정부는 기준치 미만이라 괜찮다고 하지만 누적적 영향을 고려하면 안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원전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는 주변 어장을 훼손합니다. 무엇보다 사고가 나면 전 지구적 방사능 오염을 일으킵니다. 체르노빌 원전의 경우, 사고가 난 지 36년이 지났는데도 반경 30km 이내는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제한구역입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독성 물질입니다.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이 천연우라늄 수준으로 떨어지는 데 약 30만년이 걸립니다.”

―유럽연합(EU)이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면서 국내에서도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유럽연합이 내건 조건을 살펴봐야 해요. 2050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 등) 처분장 운영 계획을 수립하고, 2025년부터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을 가동하고 있는 나라는 없고, 부지가 확보된 곳은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뿐입니다. 사고 저항성 핵연료는 사고시 위험성을 저감하기 위한 핵연료로 미국에서도 초기 실험 단계이고 상용화 여부가 불확실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킨다고 해도 유럽연합이 내세운 조건을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청년기후행동의 활동가들이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반기후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년기후행동은 이날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최우선에 놓고 탈석탄·탈원전·탈내연 및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100% 국가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청년기후행동의 활동가들이 지난 5월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반기후 정책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년기후행동은 이날 국가 차원에서 기후위기 극복을 최우선에 놓고 탈석탄·탈원전·탈내연 및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100% 국가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에 탈원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구호만 요란했지 성과는 미미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신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고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 자체는 평가해줄 만합니다. 독일도 그런 방식으로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탈원전을 완성하기로 한 거거든요. 문제는 입법을 통해 강제력을 부여하지 않은 겁니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과 제도 개선이 없었다는 거죠. 입법화가 안 되어 있으니 정권이 바뀌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정책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거고요. 탈원전의 필요성과 대안,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에 대한 시민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홍보도 너무 부족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신한울 3·4호기 건설이나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등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은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이 있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이 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한 것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을 밀어붙여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검찰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며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을 기소했습니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도 수행하셨는데 검찰 수사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수사가 이루어지고 기소가 된 건데, 애초 국회에서 요청한 것은 안전성, 주민 수용성, 경제성을 두루 따져 폐로 결정이 적절했는지 살펴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원은 경제성만 평가했습니다.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안전성을 개선하는 데 돈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그 비용을 평가에서 배제한 거죠. 감사원이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에 제출한 날에 국민의힘이 고발장을 접수하고,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전지검을 방문한 지 1주일 만에 대전지검이 산업부와 한수원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한 것도 석연치 않습니다. 정치적인 감사, 정치적인 고발, 정치적인 수사로 충분히 의심 받을 만합니다.”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원전 동맹’이 매우 강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탈핵 소송을 하면서 체감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원전 동맹은 원자력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사업자인 한수원에 대해 안전 규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전 사업자, 원자력학계, 원전 건설을 하는 대형 건설사들, 많은 정치인들과 언론까지 탈원전을 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똘똘 뭉쳐서 가짜뉴스와 왜곡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원전에 대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전문가가 있으면 매장당하는 분위기입니다. 언론에 친원전 기사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원전 업계가 뿌린 돈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그걸 알면서도 친원전 여론이 높다고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정말 어이가 없죠.”

―우리나라에서 탈원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 뭐라고 보는지요?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점, 사고 위험과 사용후핵연료 문제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에너지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고 대안이 있다는 점에 대해 너무 교육과 홍보가 부족합니다.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원전을 옹호하거나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기사와 칼럼이 원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나 에너지 전환 관련 기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오랫동안 원전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만 유포되고, 원전의 문제점은 은폐돼온 거죠.”

―얼마 전 헌재에 낸 ‘아기 기후소송’의 대리인을 맡았습니다. 청구인이 아기라는 것이 특이합니다. 소송의 취지가 뭔가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건 결국 그만큼의 자원과 에너지를 쓴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2017년에 태어난 아이는 1950년에 태어난 사람에 비해 배출할 수 있는 탄소가 8분의 1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할 경우, 2020년에 태어난 아이는 60년 전에 태어난 사람보다 평생 극한 폭염에 4배 더 많이 노출됩니다. 더 많은 가뭄과 홍수, 농작물 감소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기성세대는 탄소 배출에 따른 혜택을 최대한 누리는 반면, 아기들은 나중에 자랐을 때 자신들이 배출하지 않은 온실가스로 인한 피해를 더 많이 겪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기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뒤에 하려고 하면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을 겁니다. 아기들이 직접 당사자가 되어 기후소송을 해야 할 이유입니다.”

태아 1명을 포함한 5살 이하 아기 40명 등 어린이 62명은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규정한 2030년 국가 온실감스 감축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가 너무 낮아 미래 세대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지난달 13일 헌법소원을 냈다.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아기 기후소송’이다.

―미래 세대의 기후소송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세대 간 정의’ 실현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한번 지으면 60년가량 가동되는 원전 문제도 ‘세대 간 정의’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전 문제에는 세 가지 측면의 차별이 있어요. 지역 간 차별, 세대 간 차별, 계층 간 차별이죠. 이런 점에서 원전과 기후위기는 구조가 거의 비슷해요. 예를 들면 기성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어린이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 세대가 전기를 쓰려고 원전을 지으면 거기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 부담은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하니까요. 탄소 배출은 선진국이 훨씬 많이 했는데,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나라에 집중된다는 점, 원전이 주로 소외된 지역에 들어선다는 점도 그렇고요. 그러고 보니 광범위한 피해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네요.”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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