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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소나무숲 만들려다, 20년 만에 다시 ‘검은 숲’ 돼버렸다

등록 2022-06-16 00:26수정 2022-06-18 20:21

[한겨레21]
울진 옥촉산과 강릉 옥계면 산불 복원지역 둘러보니
20년 공든 숲 무너지고 가만히 놔둔 곳은 피해 적어
2019년 강원도 산불 당시 큰 피해를 본 강릉시 옥계면 도직리 현장. 모두베기한 뒤 나무를 심은 인공조림지 사이로 불에 탄 소나무가 서 있는 지역과 활발하게 활엽수가 자라는 곳이 대비된다. 모두베기하고서 산사태가 발생하자 사방공사를 벌이는 모습(왼쪽 아래)도 볼 수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19년 강원도 산불 당시 큰 피해를 본 강릉시 옥계면 도직리 현장. 모두베기한 뒤 나무를 심은 인공조림지 사이로 불에 탄 소나무가 서 있는 지역과 활발하게 활엽수가 자라는 곳이 대비된다. 모두베기하고서 산사태가 발생하자 사방공사를 벌이는 모습(왼쪽 아래)도 볼 수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2년 3월 경상북도 울진에선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산불이 일어났다.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거대한 산림이 불에 탔다. 계속되는 동해안 대형 산불의 원인, 산불 피해지 복구 방안을 두고 사회적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한겨레21>은 6월4~5일 서울환경연합 간부들과 최진우 전문위원, 홍석환 부산대 교수 등과 함께 울진의 산불 피해지, 강원도 강릉의 산불 피해 복원지를 둘러봤다. 

슈바르츠발트.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의 거대한 산과 숲 지역을 말한다. 숲이 워낙 울창해 검은빛을 띤다고 독일어로 ‘검은 숲’이란 이름이 붙었다. 넓이는 6009㎢로 서울의 10배에 가깝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도 서울 넓이의 3분의 1가량인 210㎢의 거대한 ‘검은 숲’이 생겼다. 2022년 3월5~14일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 강릉, 동해, 영월에서 일어난 산불이 휩쓴 지역이다. 특히 울진과 삼척에서 일어난 산불은 역사상 최장으로 무려 10일(213시간) 동안 탔다.

 나무줄기와 가지, 땅이 모두 검게 변해

6월4일 이번 산불의 피해지 가운데 하나인 울진군 북면 나곡리의 옥촉산을 찾아갔다. 산 들머리에선 불탄 소나무 줄기와 잘려 내던져진 통나무가 검은빛을, 불에 그을린 채 가지에 붙어 있는 소나무 잎이 어두운 붉은빛을 냈다. 산등성이로 조금 더 올라가자 앙상한 나무줄기와 가지, 땅바닥이 온통 ‘검은빛’으로 바뀌었다.

옥촉산 등성이에선 산불 가운데 땅바닥이 타는 지표화(땅겉불)와 나무줄기가 타는 수간화(나무줄기불), 나무 윗가지까지 타는 수관화(나무머리불)가 모두 일어났다. 나뭇잎 등 퇴적물이 타는 지중화(땅속불)만 일어나지 않았다. 산불이 얼마나 거셌는지 알 수 있다. 대체로 지표화가 수간화로 번졌고, 송진을 타고 수관화까지 심하게 일어났다. 수관화로 솔잎이 모두 재가 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나무줄기와 가지, 땅이 모두 검게 변했다.

이 숲은 산림청의 ‘2021년 산불 예방 숲 가꾸기’ 사업지 가운데 하나였다. 숲에 나무가 너무 빽빽해 불이 쉽게 옮겨붙는다고 숲을 솎아베기(간벌)한 것이다. 그래서 잘린 나무 밑동이 까맣게 그을렸고, 잘린 나무가 여기저기 숯처럼 흩어져 있었다.

취재에 동행한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산불을 막는다고 소나무뿐 아니라 소나무 사이 참나무까지 모두 솎아베기했다. 산불을 예방한다면서 불을 막는 참나무 등 활엽수까지 모두 베어 불이 잘 붙는 소나무 사이에서 불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 말대로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인 산기슭은 비교적 덜 탔다. 소나무 단순림인 산등성이 숲이 완전히 타버린 것과 비교됐다.

이 ‘검은 숲’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곳곳에 푸릇푸릇 올라온 어린 활엽수였다. 불에 강한 나무로 알려진 굴참나무를 포함해 싸리나무, 진달래, 청미래덩굴 등이 검은 숲을 점점이 푸르게 만들었다. 이 숲의 주인이던 소나무의 어린나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린 활엽수는 대부분 ‘숲가꾸기’(솎아베기)로 잘린 활엽수의 밑동에서 뻗어나와 있었다. ‘강인한 생명력’이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3㎞를 가니 전망대인 ‘도화동산’이 나왔다. 도화동산 들머리엔 기념비가 서 있다. 2000년 4월 역사상 최대의 동해안 산불을 울진군 민·관·군이 합심해서 여기 나곡리에서 잡았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22년 만인 3월 일어난 역사상 두 번째 큰 동해안 산불은 이 기념비가 서 있는 도화동산까지 휩쓸었다. 산불은 도화동산 전망대에서 아래쪽 공원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과 주변 사철나무까지 모두 태웠다. 불탄 나무계단은 교체 공사 중이었다.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의 옥촉산 산불 현장. 나무가 빽빽해 불이 쉽게 옮겨붙는다고 숲을 솎아베기(간벌)했지만, 산불이 난 숲에는 잘린 활엽수의 밑동에만 푸른 잎이 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의 옥촉산 산불 현장. 나무가 빽빽해 불이 쉽게 옮겨붙는다고 숲을 솎아베기(간벌)했지만, 산불이 난 숲에는 잘린 활엽수의 밑동에만 푸른 잎이 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인공조림 안 해 활엽수 자란 곳은 덜 타

도화동산 전망대에서 보니 산불은 저 멀리 서쪽과 남쪽 산을 모두 태웠다. 서남쪽 산은 앞서 본 ‘검은 숲’(모두 탄 숲)과 ‘붉은 숲’(덜 탄 숲)이 뒤섞여 있었다. 서쪽 봉우리 하나는 앙상한 소나무 줄기만 남긴 채 완전히 ‘검은 숲’이 돼 있었다. 앞서 가본 옥촉산의 산등성이와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검은 숲’엔 가로로 선명한 등고선 같은 것이 보였다.

홍석환 교수는 “2000년 일어난 동해안 산불 때 줄 맞춰 인공조림한 흔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예산을 들여 대규모 소나무숲을 조성했고, 20여 년 만에 다시 산불로 모두 재가 돼버렸다. 20년 공든 숲이 무너졌다.

바로 그 옆으로는 산불 피해를 적게 입어 ‘붉은 숲’(덜 탄 숲)과 ‘푸른 숲’(안 탄 숲)이 뒤섞인 숲이 눈에 띄었다. 홍 교수는 “이 숲은 가팔라서 소나무 인공조림을 못한 것 같다. 비교적 수분이 많고 햇빛이 적은 골짜기에 참나무가 잘 자란다. 참나무로 인해 소나무도 덜 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울진군에선 3월 산불로 1만4140㏊(헥타르)의 숲이 탔다. 단일 시·군에서는 역사상 최대 규모다. 산불 복구 예산도 3009억원으로 가장 많다. 국유지 등을 빼고 군청에서 담당하는 피해지가 9831㏊다. 이 가운데 민가 주변과 2차 피해 우려 지역 등 750㏊에선 연말까지 긴급 벌채(베기)를 한다. 긴급 벌채에만 357억원이 투입된다. 750㏊를 제외한 9081㏊에 대해선 연말까지 피해 조사와 복구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울진군청의 한 관계자는 “소나무가 산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그래서 자연 복원이나 내화수림(불막이 숲) 조성도 필요하다. 그런데 피해지의 90% 이상이 사유지여서 산주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산주들은 송이가 나는 소나무숲을 선호한다. 산림을 조성할 때 산불 방지 외에 다른 목적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지의 산림 복원 방식은 큰 논란거리다. 환경운동연합과 일부 전문가는 그동안 산림청의 인공복원(조림)이 대형 산불을 부추겨왔다고 비판한다. 반면 산림청과 지방정부는 자연복원이나 불막이 숲 조성은 필요하지만, 산림 전체를 자연복원하거나 불막이 숲으로만 만들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릉 산불 뒤 나무 베고 도로 내고 사방댐 건설

이어 2019년 강원도 산불 당시 큰 피해를 본 강릉시 옥계면 도직리의 산불 현장을 찾아갔다. 아직도 산불 당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풍경이었다. 골짜기 어귀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돌로 사방(흙막이) 공사를 한 계곡이었다. 계곡 양쪽으로 제방만 쌓은 게 아니라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댐을 쌓았다. 홍수 때 산골짜기에서 쏟아지는 흙과 모래, 돌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런 사방댐은 골짜기 500여m를 걸어 들어가는 동안 10개 이상 나타났다. 사방댐은 돌댐, 콘크리트댐, 콘크리트댐+철 구조물, 돌망태댐 등 다양한 형태였다. 돌망태댐은 5개가 연속으로 설치됐다. 산불 전 아름다웠을 계곡은 무분별한 사방댐 건설로 계곡임을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홍석환 교수는 “2019년 산불 뒤 많은 피해지에서 모두베기하고 어린 소나무를 새로 심었다. 또 작업 도로(나중의 임도)를 내고 중장비가 골짜기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피해지의 토양이 다 뒤집혀 비가 오면 쉽게 산사태가 난다. 그러면 산사태를 막는다고 계곡에 온통 사방 공사를 한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정부가 산불 피해 복구 사업으로 벌이는 모두베기 뒤 심기, 임도(숲길) 내기, 사방 공사는 생태계에 큰 악영향을 준다. 토양이 불안정해지고 건조해지며, 지표에 쌓였던 유기물(거름)도 대부분 유실된다. 비 온 뒤 산사태는 이 불안정한 토양을 쓸어내린다. 또 사방 공사는 댐과 제방을 통해 종횡으로 하천 생태계를 단절시킨다.

좀더 올라가자 작은 골짜기에 산사태로 쏟아져내린 흙과 돌, 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특히 나무는 온전하지 않고 대부분 잘렸다. 줄기를 자른 것이 많았고 뿌리와 밑동도 있었다. 모두베기 뒤 산에 쌓아놓은 나무가 쓸려온 것 같았다. 홍석환 교수는 “산불이 난 지역에서 나무를 베면 흙과 물을 잡아주지 못해 산사태가 난다”고 말했다.

그 위로는 키가 0.5m 정도 되는 어린 소나무가 심긴 거대한 산불 피해지가 펼쳐져 있었다. 소나무 인공복원지 곳곳에는 어린 소나무 주변으로 물푸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음나무, 싸리나무 등이 함께 자랐다. 특히 한 물푸레나무는 지름 10㎝ 이상의 큰 나무였는데, 숲가꾸기(솎아베기) 과정에서 잘린 상태였다. 그런데 잘린 밑동에서 나온 가지가 어린 소나무보다 더 높이 자랐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조경학 박사)은 “소나무 인공조림지에선 인공으로 심은 것만 좋은 나무이고 나머지는 잡목이라며 모두 벤다. 그러나 탄소를 흡수하고 물을 저장하고 땅을 잡아주고 목재를 제공하는 것은 자생 나무나 심은 나무나 같다. 심지어 자생 활엽수는 소나무로 인한 산불 확산도 막는다”고 말했다.

계곡 위 산기슭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2019년 동해안 산불에 탄 소나무들이 죽은 채 서 있었고, 그 아래로 1~2m 정도의 어린 활엽수 숲이 형성돼 있었다. 그 아래 어린 소나무 인공조림지와 비교하면 활엽수가 2배 이상 컸고, 밀도나 다양성이 몇 배나 더 돼 보였다.

 인공조림과 자연복원 균형 이뤄야

홍석환 교수는 “산불로 소나무가 타면 잎과 잔가지가 먼저 떨어져 지표에서 거름이 돼 땅이 비옥해진다. 그리고 선 소나무는 자생하는 활엽수가 잘 자랄 수 있게 땅을 잡아준다. 불탄 소나무가 쓰러지는 데 10년 정도 걸린다. 어린 소나무 자라는 데 방해된다고 불탄 소나무와 자생 활엽수를 자르니 숲이 더 황폐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릉시청 산림과의 배연우 주무관은 “과거 산불 때는 피해지에 70% 이상 소나무를 심었다. 이것이 산불 원인 중 하나다. 이번엔 자연복원과 내화수림을 포함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복원만 할 수는 없다. 산주들 의견에 따라 경제림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4월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울진 산불의 총피해액이 2261억원이며, 피해 복구 예산으로 417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5월 2차 추가경정예산에선 산불 대응 563억원을 더했다. 남상현 산림청장은 “동해안 대형 산불의 주요 원인은 소나무라기보다 3~4월에 부는 양간지풍(양양~고성 사이 센바람)이다. 소나무는 동해안의 토양과 기후에 맞고 산주들도 원한다. 산주들 의견을 반영하겠지만, 울진 산불 피해지 복원은 인공과 자연을 반반 정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울진·강릉=글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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