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에서의 채식 급식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진정에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다만 인권위는 교육당국이 채식 식단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을 정비하고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달 14일 채식주의자인 초·중·고교 학생, 학부모 등 6명이 채식급식시민연대의 지원을 받아 교육부 장관 등을 상대로 낸 진정을 기각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해 6월14일 채식을 택한 학생들이 일률적인 급식 식단으로 인해 양심의 자유, 자기결정권, 건강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는다며 진정을 제기한 바 있다.
인권위는 급식 식단 구성은 학교장의 재량에 달린 것이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 채식 선택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기각 이유로 들었다. 인권위는 “피해자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채식 급식을 선택할 수 있는 식단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법률에서 학교장이 채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위임하지 않고 있어, 식단을 작성하는 것은 학교장 재량 사항”이라고 밝혔다. 또 “교육 급식, 그린(Green) 급식의 날, 채식의 날 등 피진정인들이 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완전한 채식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향후 급식 체계 개선을 위한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인권위는 진정을 기각하면서도 학생의 채식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유엔(UN) 아동권리협약에서 정한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에 입각해 볼 때 아동은 신념과 신체적 특성에 적합한 음식을 선택하는 동시에 영양학적으로 고려된 식단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또 “교정시설, 군대에서 (채식 급식과) 관련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점 등을 보면 현실적으로 학교 급식에서 채식 식단을 보장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진정인들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한 결정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채식을 하는 초등학교 5학년생 학부모인 진정인 황윤씨는 “채식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편의점 햇반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도시락을 싸들고 와야 하는 것이 인권위가 말한 자유냐”고 반문했다. 채식을 하는 중학교 1학년생 학부모 임도훈씨는 “기념일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채식의 날’ 운영 같은 것은 무의미하다”며 “단지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도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채식급식시민연대는 인권위의 기각 결정에 “실망스럽다”면서도 “별도 의견표명을 통해 교육부와 교육청에 향후 채식 식단 보장을 위한 규정 정비와 지원을 권고한 점은 환영할 만하다”고 밝혔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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