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가 열리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2일(현지시각) 청소년 환경운동가들과 이들의 부모, 기후 변화 취약 지역 원주민들이 '기후 배신행위 끝내라'라는 글귀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파리기후협정 체결 후 5년이 넘도록 마무리하지 못한 숙제를 이번엔 끝낼 수 있을까?
영국 글래스고에서 진행 중인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중국, 러시아 등 주요국 지도자의 불참과 소극적 자세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강화 등 의미 있는 성과는 난망하다는 평가에 따라 다른 주요 의제인 파리협정 이행규칙 완성 여부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됐다.
법률에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2015년 COP에서 도출된 파리협정도 제대로 이행되려면 이행규칙이 있어야 한다. 파리협정에는 감축, 적응, 재원, 기술 등 9개 분야 17가지 이행규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파리협정에 따라 올해부터 본격 출발한 새 기후체제는 16가지 이행규칙만 가지고 달려가고 있다. 협정 제6조 이행을 위한 규칙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파리협정 제6조는 당사국들이 서로 협력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감축한 실적을 주고받아 자국의 감축목표(NDC) 달성에 활용하는 메커니즘을 설립하도록 했다. 교토의정서와 마찬가지로 온실가스 감축이 감축 비용이 적게 드는 곳에서부터 이뤄지게 해 전체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감축을 달성하자는 취지다.
협정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감축분 거래는 ‘시장’을 전제한 것이어서 제6조 이행규칙은 흔히 ‘탄소시장 이행규칙’으로 불린다. 환경부는 회의 개막에 앞서 언론에 “이번 당사국총회에서 논의되는 90여개 의제 중 국제탄소시장에 대한 이행규칙(Paris Rulebook)을 완성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탄소시장 이행규칙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는 한국에 특히 중요한 문제다. 새 엔디시에서 2018년 배출량 대비 40%인 2030년 감축량(2억9100만톤)의 12%(3510만톤)를 해외에서 확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에서 확보할 수 있는 양과 그것에 소요될 비용은 탄소시장 이행규칙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15년 파리협정을 타결한 국제사회는 2018년을 마감시한으로 정해놓고 이행규칙 마련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8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COP24에서 이행규칙을 담은 이른바 ‘카토비체 패키지’에 합의했다. 하지만 탄소시장 이행규칙은 이 꾸러미에 포함되지 못했다. 거래금액 일부를 개도국 지원 자금으로 공제하는 문제, 온실가스 감축 실적의 이중계산 방지 방안, 중국과 브라질 등이 교토의정서의 기존 청정개발체제(CDM)를 통해 확보한 배출권(CER)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 등의 쟁점에서 당사국들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탄소시장 이행규칙 완성은 2019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COP25에서도 최대 의제가 됐지만 마찬가지 합의에는 실패했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교토의정서에 따라 발급된 기존 배출권의 처리 방안과 탄소시장을 통한 거래에 대한 수수료 부과 등을 둘러싼 이견들이 막판까지 걸림돌이 됐다.
탄소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온실가스 감축 실적은 구매자에게는 그 실적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과 같다. 배출권 구매자는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량 한도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도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직접 감축이 가능하더라도 감축 비용보다 배출권 구매 비용이 덜 들 경우 배출권 구매에 나설 수 있다.
국제배출권거래협회(IETA)는 지난달 발표한 ‘탄소중립에 도달하기 위한 (파리기후협정) 6조 탄소시장의 잠재적 역할’ 보고서에서 “탄소시장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이 비용 효율적으로 이뤄지면 2050년까지 세계적으로 21조달러의 감축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는 장밋빛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탄소시장이 세밀하고 엄격한 규칙 아래 작동하지 않으면 각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대신 감축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만들어 낸 나라와 이 감축 실적을 배출권으로 구매하는 나라 사이에서 온실가스 감축량이 이중으로 계산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다. 또한 기존 감축 계획에 따른 감축량이 배출권으로 둔갑할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개발도상국이 이미 석탄발전소 대신 풍력발전소를 짓기로 한 상태에서 선진국이 풍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해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나누는 경우가 그런 예다. 이 경우 온실가스 감축량은 개도국이 애초 계획했던 것과 같지만 선진국도 감축량을 일부 확보해 온실가스를 더 배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탄소시장이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는 셈이다.
환경단체 “배출-흡입 ‘상쇄’ 방안 배제해야”
정상들은 대부분 떠나고 정부대표단이 남은 1주일여 COP26 회의에서 탄소시장 이행규칙이 완성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환경부는 “올해부터 파리협정의 이행 기간이 개시됨에 따라 당사국들은 세부 이행규칙 완성에 대한 시급성을 인지하고 협상에 임할 것이나 협상 막바지까지 치열한 격론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탄소시장 이행규칙의 신속한 마무리보다는 철저하고 완벽한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허술한 구멍을 남긴 채 타협한 규칙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직접 감축한 실적이 아니라 배출한 온실가스를 조림 사업 등의 탄소 흡수로 ‘상쇄’(Offsetting)하는 방식은 아예 배제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지난달 26일 모든 화석연료 프로젝트의 중단 선언과 함께 상쇄를 탄소시장에 넣으려는 계획을 거부하라고 이번 COP26에 주되게 요구했다. 그린피스는 “상쇄는 온실가스가 대기로 배출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그 배출량이 배출자의 장부에 기록되는 것을 막는 회계 기법일 뿐”이라며 “정직하게 말하면 상쇄는 작동하지 않고 실제 감축 행동을 지연시킬 뿐인 위험한 사기”라고 주장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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