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명이 사는 영국 항구도시 글래스고에선 올여름부터 숙박경쟁이 벌어졌다. 다음달 열리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Conference of Parties) 때문이다. 당사국총회는 연례행사이나,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환경 파괴에 책임을 묻는 코로나가 기후위기 대응체도 중단시킨 셈이다. 덕분에 관심도는 역대급이다. 위기의식과 과제가 더 막중해진 까닭이다. 197개 당사국의 정상급 인사(130여개국 정상 포함)와 각 나라 기후활동가, 기업인들이 글래스고로 향한다. 숙박경쟁 이전부터, 각국 정부, 기업, 이익집단들이 26차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제각기 이익을 유엔에 관철하고자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기후변화팀을 별도 운영해온 <한겨레>는 2년 가까이 중단되었던 국외취재를 재개하며, 그 첫 기수를 글래스고로 잡았다. 전지구적 위기 앞에서 국력과 산업화 정도, 그 밖의 숱한 각국 사정에 따라 기후대응의 목표도, 전략도 상이하다. 다만 동일한 것은, 2030년의 지구가 사실상 이번 글래스고에서 결정되리란 점이다. <한겨레>는 26차 총회를 중심으로 쓰이는 인류의 기후변화 전쟁사를 현지에서 기록해 전하고자 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는 197개 국가로 구성되어 지구의 미래를 결정해간다. 하지만 기후재앙은 국적, 지위, 인종, 나이를 가리지 않기에, 전 세계 기업인, 전문가, 기후활동가, 일반시민 등이 결집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미래세대의 상징이자 기후운동의 아이콘이 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처럼 말이다. 국적을 제외한다면, 다수의 ‘툰베리’와 산업계, 그 사이 어느 지점의 정부 대결로 COP는 압축할 만하다. 그들의 요구는 마치 다른 언어처럼 상이하다. 한국에선 이미 이달 2030 엔디시(2018년 탄소배출량 대비 40% 감축)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확정 과정에서 각계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국내 산업계는 그간 대한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대표단을 꾸려 기후변화 당사국회의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번 COP26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인 포스코도 불참한다. 현대자동차는 실무자 1~2명이 들르는 정도다. <한겨레>가 이들에게 각기 COP26에 바라는 바를 문의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가 확정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국제 사회에 발표할 텐데, 기업의 입장을 반영해달라고 계속 요청 중”이라고 답했다. 대한상의 쪽은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산업계 대표단을 구성하지 못했다. 백신 접종이 많이 되긴 했지만 (세계적 행사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안 가는 걸로 됐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는 최근 확정된 ‘2030 엔디시’를 크게 비판해왔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도 비용부담이 가장 큰 방안으로 결정됐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 엔디시나 시나리오 모두 국제사회에선 되레 부족하다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어, 산업계로선 난처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청년세대의 권리 주장은 더 명료해지고 있다. 지난해 총회를 거르는 동안 탄소중립이 한국사회 중심으로 떠오르고, 미래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청년세대의 목소리도 훨씬 거세졌다. 다음달 6일 글래스고에서는 전세계 청소년·청년들이 함께 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이 ‘액션의 날’로 이름 붙이고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10일엔 만민공동회 식의 시민발언이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 ‘청소년이 바꾸는 지구’의 노민주(19) 활동가는 “(이번 COP에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약자들을 보호할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기를 바란다”며 “본인의 미래를 지킬 기회도 주어진 적이 없는데 함께 (피해를) 책임지고 감당해야 한다는 건 잔인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제로웨이스트에 관심 많은 대학생 권수진(21)씨는 “코로나가 장기화되며 일회용품 사용이 쓰레기 발생을 가속화시킨 것 같다”며 “국가정책과 기업의 친환경 사업이 실제 환경에 끼친 효과를 돌아보고 보다 발전된 정책들이 약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윤현정 활동가(18)는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탄소예산(배출 가능한 탄소량)에 입각해 목표를 설정하고, 2030년까지 전 세계 화석연료 발전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킨다는 합의도 이뤄져야 한다. 이런 기준을 지키지 못한 나라에게 페널티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수차례 COP에 참여했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기후위기를 만든 것은 어른들인데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미래세대의 발언을 반영하는 헌장 등이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50탄소중립위원회'제2차 전체회의가 열린 18일 오후, 행사장인 서울 용산구 노들섬 전시관 앞에서 대학생 기후행동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하며 행진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11월1~2일 글래스고에서 정상간 협상 등에 참여한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 국회기후변화포럼의 유의동(국민의힘)·이소영(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글래스고행 비행기에 오른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도 검토 중이다. 국내 석탄화력발전소가 가장 많이 밀집해 ‘전환’ 과제가 중요한 양승조 충청남도지사와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국제노총 행사 참여를 위해 간다. 정부의 메시지도 비교적 분명하다. 2030 엔디시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향후 COP도 유치하며 기후대응 선진국으로서 발돋움해보려는 의도에서다.
COP의 가장 큰 한계는 구속력의 부재다. 트럼프가 파리협정을 탈퇴하며 최악의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각국이 갖는 압박감의 무게는 결코 적지 않다. 바이든의 당선 뒤 업무 행정명령이 파리협정 재가입인 까닭이다. 기후재앙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와중, 그 일환으로서의 코로나 창궐을 겪는 인류가 2년 만에 이제 글래스고에서 만나는 셈이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1992년 협약 체결 이후 30년이 다 되어가도록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데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전 세계 기후운동단체들은 COP26 회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아니라, 세계 지도자들의 무책임과 실패에 대한 항의와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고자 글래스고를 향하고 있다. 정부관료와 각국의 지도자, 그리고 기업의 리더들에게 기후위기 해결을 맡길 수 없다. COP26의 회의장이 아니라 바로 회의장 밖에서 벌어지는 전 세계 시민들의 행동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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