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안양 나눔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지난 4∼7월 한 학기 동안 모은 병뚜껑과 병뚜껑 고리를 앞에 두고 모여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2층 교실 복도 한쪽 바닥에 갖가지 색깔을 띤 플라스틱 병뚜껑과 병뚜껑 고리가 와르르 쏟아졌다. 한 초등학교의 전교생 300여명이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한 학기 동안 꼬박 모은 것들이다.
“빨간 고리는 빨간 고리끼리, 파란 고리는 파란 고리끼리 분류해서 소포에 담아주세요!”
지난 10일 오전 찾아간 경기도 안양시 나눔초등학교. 5학년1반 담임 문수지(32) 교사의 지도에 5학년 학생 48명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백개의 플라스틱 병뚜껑 사이에서 이물질을 걸러내고, 병뚜껑 고리를 빨강, 하늘, 파랑, 분홍색으로 나눠 모았다. 약 30여분 뒤, 병뚜껑은 종이상자 4개, 병뚜껑 고리는 소포 11개를 가득 채웠다.
같은 시각, 3층 컴퓨터실에선 5학년2반 담임 오은아(39) 교사의 안내를 받고 5~6명의 학생들이 웹서핑을 통해 코카콜라, 롯데칠성, 제주삼다수, 쿠팡의 이름을 입력했다. 이날 병뚜껑과 고리는 학생들이 직접 검색해 찾은 각 기업 국내 본사 주소로 발송됐다. 빨간 고리는 코카콜라, 분홍 고리는 아워홈(지리산수), 하늘색 고리는 롯데칠성(아이시스), 파란 고리는 쿠팡(탐사수) 등 각기 제조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동봉한 편지에는 “재활용이 쉬운 일체형 병뚜껑 고리를 만들어주세요”, “병뚜껑 고리를 따기 쉽게 바꿔주세요” 같은 요청 사항을 적었다. 안양시청에도 ‘병뚜껑을 업사이클링(새활용)할 수 있는 거점 센터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눔초 5학년 학생들이 병뚜껑 고리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날의 수거 작업은 지난 봄부터 기다려 온 일이었다. 이제 막 새 학기, 새로운 친구들과 적응을 마친 지난 4월7일부터 이 학교 학생들은 ‘병뚜껑 고리를 부탁해’ 활동을 했고, 1학기가 끝나는 7월16일까지 학교에서 나오는 병뚜껑 등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았다. 5학년 학생들이 환경 관련 수업을 들으며 모은 아이디어로 한 학기 동안 전교생이 각 층 복도에 설치된 전용 수거함에 병뚜껑과 고리를 모았고, 학기를 마치면서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묻기로 했다. 지난 4월 이 활동을 <한겨레> 기후변화팀에 직접 메일을 보내 소개한 심민호(11)군은 “미래에는 플라스틱 때문에 이산화탄소 발생이 늘고 환경오염이 심해져서 힘들어질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고 참여 동기를 말했다. 방학식에 하려던 행사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2학기가 시작된 이 날에야 마무리됐다.
학생들은 직접 플라스틱병 몸체에서 병뚜껑 고리를 분리해서 모아보니, 분리배출의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지윤(11)양은 “처음에는 음료수를 마시고 휙휙 버렸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제대로 버리는 게 되게 번거로운 걸 알았다”고 말했다. 임예원(11)양은 “가위 같은 도구로 고리를 끊거나 직접 손으로 뗀 적도 있는데 귀찮고 좀 힘들었다”고 말했다.
기업이 애초에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분리배출이 수월한 제품이 출시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묵묵하게 병뚜껑 고리를 분류하던 조현준(11)군도 “기업들이 분리배출의 고충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눔초 학생들이 지난 4∼7월 한 학기 동안 모은 병뚜껑.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나눔초 학생들의 이런 친환경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에도 코카콜라와 스파클 등 음료 판매 기업에 라벨이 없는 음료수를 출시해달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들 회사로부터 “라벨을 없애도록 노력하겠다”는 회신을 받고 무라벨 상품들이 속속 출시되자 학생들에겐 효능감이 생겼다.
문수지 교사는 “작년에 기업들이 답장을 보내고 무라벨 음료 상품을 출시하는 걸 보고 아이들이 신기해했다. 또 다른 것도 해보자고 해서 이번 프로젝트도 추진하게 됐다”며 “5학년 학생들이 먼저 병뚜껑 고리가 재활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찾아냈고 다른 학년과 타 학교에도 홍보했다”고 덧붙였다.
나눔초 학생들이 지난 4∼7월 한 학기 동안 모은 병뚜껑 고리를 모아 종이박스에 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병뚜껑과 병뚜껑 고리는 플라스틱병 몸체와 재질이 달라 재활용을 번거롭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특히 병뚜껑 고리는 가위로 끊지 않는 이상 쉽게 분리되지 않아 재활용 용이성을 해친다. 이 때문에 환경부에서도 일체형 병뚜껑 고리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담당자는 <한겨레>에 “병뚜껑 고리는 플라스틱 재질이 다르거나 철이 섞여 있어 재활용을 저해하기 쉽다”며 “분리가 원활하도록 일체형으로 하도록 유도한다”며 “(다만) 병뚜껑의 경우 재활용 과정에서 병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대로 닫아서 버리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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