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충북 괴산군 괴산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 디지털배움터 버스에서 어르신들이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사용법을 체험해보고 있다.
2020년을 “떠밀려서 보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코로나19 대유행이란 감염병 재난 상황을 갑작스럽게 맞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낸 시간이 많았다는 뜻일 게다. 자영업자 중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로 몰린 경우도 많다.
반면 디지털 기술 활용 측면에선 역설적인 상황도 많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디지털 격차를 부각시켜 디지털 기술의 따뜻한 활용에 대한 수요를 키웠다. 힘들고 우울해진 삶을 디지털 기술로 따뜻하게 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효과도 컸다. 지난 한 해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디지털’ 지면을 운용하고 휴먼테크놀로지어워드(HTA) 행사를 진행하며 주목했던 디지털 기술의 따뜻한 활용 모습들을 정리해봤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 돌봄이 어려워지면서 소외계층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돌봄 수요가 커졌다. 특히 올해는 셋톱박스 등 가정에 보급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안녕하신지’를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AI) 스피커를 활용해 우울감을 해소하고 돌발상황에도 대비하는 적극적인 디지털 돌봄 시도가 많았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이 보건복지부·지방자치단체 등과 손잡고 보급한 ‘행복 커뮤니터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NUGU)’를 어르신 디지털 돌봄 서비스로 맞춤화한 것인데, 어르신들의 안전과 정서를 지켜주는 안전망 구실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리아 살려줘” “아리아 에스오에스”라고 외치면 긴급상황으로 판단해 아이시티케어센터와 에이디티(ADT)캡스(야간)에 알람을 보내는 기능이 어르신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다. 서비스 개시 1년만에 이 기능으로 이뤄진 긴급구조 요청이 328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23건은 호흡 곤란과 낙상 등으로 119 구급대원이 출동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동안 재래시장(전통시장) 상인들은 온라인쇼핑몰을 적대시했다. 온라인 주문 서비스가 시장을 찾는 손님 발길을 줄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반복되고 기간도 길어지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상생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재래시장의 숨은 손맛과 식재료를 온라인 주문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들이 발길이 줄면서 힘들어진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새로운 판로 구실을 해주고 있다.
‘네이버 동네시장 장보기’가 대표적이다. 전국 주요 재래시장에서 판매되는 신선 식재료와 숨은 손맛의 반찬과 간식거리 등을 온라인 주문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동네 재래시장을 이용할 때는 2시간 이내에 배달해준다. 11월 기준으로 이 서비스로 이용 가능한 재래시장이 전국적으로 50곳을 넘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군자(오른쪽) 할머니가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 이용법을 배우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 제공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 평가를 받고 있지만, 디지털 격차와 디지털 문맹 탓에 디지털 기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공유하지 못하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침체된 경기 회복을 위해 ‘한국형 디지털 뉴딜’ 전략을 펴면서 ‘디지털 포용’ 정책을 추진해 호응을 얻고 있다.
디지털 포용은 디지털 소외계층을 줄여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디지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 활용 역량 강화 교육(디지털배움터 운영)을 실시해, 디지털 문맹을 벗는 것은 물론 경제·사회적 자립에 나설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국 1300여곳에서 ‘디지털배움터’를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 어르신 등을 대상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활용해 각종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충북 괴산·영동·옥천 등 시골 지역에선 강사와 서포터즈들이 버스를 타고 마을을 찾아다니며 교육하는 ‘이동 디지털배움터’(에듀버스)도 운영한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물품을 주문하고, 기차·버스표와 공연 티켓을 예약하며, 영상통화와 동영상 서비스 및 에스엔에스(SNS) 등을 이용해볼 수 있게 하는 등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체험하고 실습해볼 수 있게 한다. 교육 이수자가 벌써 10만명에 육박한다.
디지털배움터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 길이 막힌 어르신들의 ‘집콕’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강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동영상 시청, 영상통화, 노래 듣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 많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500억원대로 잡았던 디지털배움터 운영 예산을 내년에는 800억원대로 높였다.
네이버 온라인쇼핑몰 동네시장 장보기 화면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재택근무, 원격수업, 화상회의, 웨비나(온라인 세미나) 등 처음 가보거나 익숙하지 않은 길이 많이 생겼다. 대부분 원해서가 아니라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다리 구실을 하고 뒷받침을 해주는 덕에 이런 상황들이 ‘사지’가 아닌 새로운 길이 되고 있다. 불편해하고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대다수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모습이다. 이미 출근하고 모이는 대면 방식이 아닌, 디지털 기술 기반의 비대면 방식을 먼저 떠올리고 익숙해하는 경우도 많다.
덩달아 비대면 경제·사회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과 서비스 산업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업무용으로 일부 사용되던 ‘줌’과 ‘잔디’ 등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해졌다. 정부도 비대면 지원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들을 포스트 코로나(코로나 이후) 시대 국가경쟁력을 높일 새 유망 기술·서비스로 꼽아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을 앞세워 기술 개발과 이용 확산을 돕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대면 만남의 기회와 시간이 줄었다. 만나서 밥 먹고 술이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반면 디지털 기술 덕에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따라 대면 만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지역 공동체적 연대는 더 커지는 흐름도 있다. 중고물품 거래 서비스 당근마켓이 국내 최대 지역생활 커뮤니티로 자리잡은 게 대표적이다. 중고물품 거래를 매개로 동네 주민·소상공인·지방자치단체를 연결해 상거래를 하고 생활정보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서비스인데,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 주민 간 연대를 강화시키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용자들의 행태를 보면 ‘저런 물건을 왜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다. 이용자들은 ‘이용해 보면 안다’고 대꾸한다. 어쩌면 중고물품 거래는 ‘핑계’이자 ‘형식’이고, 진짜 속내와 내용은 이용하는 사람들만 안다고 할 수 있다. 중고물품 재활용 효과도 크다. 지난 9월 기준 당근마켓에서 거래가 성사된 누적 거래량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계산하면, 서울 남산 숲 식수 효과의 1400배에 해당하는 19만1782t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엘지유플러스가 포스코에너지와 손잡고 대학생봉사단을 모아 인천시 서구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비대면 일대일 교육을 해주는 공동 사회공헌 활동 화면. 엘지유플러스 제공
기업과 개인이 디지털 기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구현모 케이티(KT) 사장은 연구개발본부 소속 디지털 기술 개발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이 개발하는 기술을 사람들이 이런 따뜻한 용도로 활용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달라. 기술 개발 목적과 별개로 이런 용도로 써도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기술의 따뜻한 활용 모습을 상상하며 개발에 나서달라는 주문이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카카오의 비전 가운데 하나로 “이용자들이 디지털 기술을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꼽았다.
기업 사회공헌 활동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엘지유플러스(LGU+)는 포스코에너지와 손잡고, 대학생봉사단이 인천시 서구지역 취약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비대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에너지가 운영하는 대학생봉사단 48명은 엘지유플러스가 제공하는 교육 콘텐츠 ‘U+초등나라’ 서비스와 스마트패드를 활용해 아동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교육을 한다.
엘지유플러스는 “기존 오프라인 방식에선 사진과 언론 보도 등으로 홍보 효과를 냈다면, 비대면 방식에선 정성을 들여 상대를 감동시켜 입소문이 퍼질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공헌도 서로 모자란 부분을 가진 기업끼리 손잡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따로 또 같이’ 형태로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는 흐름이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겸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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