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이 연구원의 향후 기술 개발 계획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제공
“앞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연구원들은 물론이고 주변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들도 인공지능(AI)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명준(65)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한겨레’와 만나 “우리나라가 국가 지능화를 통해 인공지능을 가장 잘 다루는 나라가 되는 것을 돕기 위해 연구원이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연구원을 ‘미래사회를 만들어가는 국가 지능화 종합 연구기관’이라고 소개하며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인 인공지능 기반 지능화 혁명의 선구자 구실을 하는 게 연구원의 소임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연구원의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 전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인류애’를 강조했다. “산업 발전 시대의 핵심 가치가 ‘성장’이었다면, 앞으로 실현해 나갈 국가 지능화의 핵심 가치는 ‘인류애’가 돼야 한다고 본다. 산업 발전뿐만 아니라 삶의 질 향상, 공동체의 행복, 생명과 안전 우선 등 사람 중심의 가치가 확대돼야 한다.” 그는 “따라서 각 기술이 개발되는 대로 흘러가게 두면 안되고, 기술 발전이 온전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연구원서 잔뼈가 굵었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학사)와 카이스트 대학원(전산학 석사)을 거쳐 프랑스 낭시제1대학교 대학원(전산학 박사)을 졸업한 뒤 연구원에서 통신망 대중화 문을 연 전전자교환기(TDX) 개발, 한국형 중형 컴퓨터 ‘타이컴’, 세계 최초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이동전화 시스템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지난해 4월 원장으로 취임했고, 올 1월부터는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원장 취임 뒤 평생 기술 개발자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원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구원들에게 ‘새로운 개념 창출’과 ‘국제화’를 주문한다. 새로운 개념은 각자 남의 것을 베끼거나 개선하는 수준 말고 ‘나만의 과제’를 만들라는 것이다. 국제화는 국제적으로 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라는 주문이다. 김 원장은 “뜯어보며 배우고 따라가는 역공학(리버스 엔지니어링) 방식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선구자)가 되도록 연구원들을 돌려세워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개발 중심으로 짜인 인력과 조직을 새로운 개념의 과제 발굴과 개발한 기술의 상용화 과정도 중시되도록 재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도전 과제로 ‘역할과 책임(R&R) 재정립’과 ‘기술발전지도 2035’를 제안했다. “연구원의 역할과 책임은 ‘미래 지능정보화 기술 개발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국가 혁신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술발전지도 2035’는 15년 후인 2035년까지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고 그에 따라 어떤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할 것인지를 예측해, 그에 맞춰 기술 개발 방향을 잡자는 것이다.
“앞으로 15년 사이에 디지털 개인비서, 생활지원 로봇, 커넥티드 자율이동, 환경인지 자율생산공장, 인공지능 가정교사, 인공지능 허브병원, 자율형 도시, 인공지능 군 참모, 감정 치유, 제2의 몸-엑소 스킨 등이 등장해 국가와 개인의 일상을 바꿀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시도는 아이비엠(IBM)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서는 이른바 ‘리서치’ 조직과 인력을 통해 공을 들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낯선 시도여서 주목된다.
김 원장은 “인공지능 전문가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있으면 연구원을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인공지능은 생태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전문가를 영입할 수 없다. 연구원에는 석·박사급 인공지능 전문가만도 400명이나 있고, 인공지능 아카데미를 통해 계속 양성하고 있다. 기업이 연구원과 손잡는 순간 인공지능 생태계로 편입되면서 전문가 영입이 쉬워진다.”
대전/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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