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온실가스를 다른 유용한 물질로 바꿔주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픽사베이
우리가 쓰는 화학제품들은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물질들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돼 지구온난화를 야기한다. 이 온실가스를 유용한 다른 화학물질로 바꿀 수 있다면, 온실가스도 줄이고 새 자원도 얻는 1석2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 기술은 최근 세계경제포럼이 과학전문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 함께 선정한 `2020년 10대 신흥 기술'에서 가장 많은 항목을 차지했다. 광촉매 기술을 비롯한 4가지 기술이 꼽혔다. 전문가 선정단은 전 세계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들이 올해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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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화학 : 광촉매로 만드는 순환경제 사이클
이산화탄소를 연료로 전환하는 광촉매 연구를 하고 있는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연구원들. 로렌스버클리랩 제공
선정단은 우선 햇빛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다른 화학 물질로 바꾸는 기술에 주목했다. 이 기술은 두 가지 경로로 탄소 배출량을 줄여준다. 하나는 이산화탄소를 제품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햇빛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태양광 활성화 촉매(광촉매) 기술의 발전으로 실용화 시기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게 이 기술을 선정한 이유다.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를 이루고 있는 탄소와 산소 간의 강한 이중결합을 해체하는 광촉매를 개발했다. 이는 배출된 가스에서 유용한 화합물을 생산하는 이른바 `탄소정제공장'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첫 단계다. 탄소정제공장이란 원유를 정제해 각종 석유제품을 만들어내는 정유공장처럼 이산화탄소에서 의약품, 비료, 세제, 섬유 같은 다양한 제품의 합성 원료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이란 뜻이다.
광촉매로는 일반적으로 반도체를 쓴다. 이를 통해 탄소 변환을 하려면 고에너지의 자외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외선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햇빛에서 자외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5%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인체에 해롭다는 점이다. 두가지 문제점을 해결한 자외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광촉매 기술의 주된 목표다. 선정단은 이산화티타늄 같은 기존 촉매의 재구성 등을 통해 이 목표에 상당히 다가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인공광합성합동센터, 네덜란드의 선라이즈 컨소시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등이 연구를 이끌어가고 있다. 선정단은 이 기술이 폐기물 없는 순환경제 구축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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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비행기 : 5년내 운항거리 800km 이하 상용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하는 항공부문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료 효율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전기 비행기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기모터를 쓰면 탄소 배출 저감 말고도 여러 효과가 있다. 연료비는 90%, 유지보수비는 50%, 소음은 70%까지 줄일 수 있다. 보잉과 함께 세계 항공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유럽의 에어버스를 비롯해 4~5개 업체들이 전기비행기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개인용, 기업용 또는 통근용 전기비행기의 시험비행을 하는 단계다. 미국 유수의 국내 항공사 케이프에어(Cape Air)는 벌써 9인승 전기비행기를 구매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이 회사는 친환경이라는 명분과 비용 절감이라는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다는 걸 구입 이유로 들었다.
전기비행기의 단점은 운항거리가 짧은 것이다. 가장 성능이 좋은 배터리도 기존 비행기가 쓰는 항공유에 비해 단위 중량당 낼 수 있는 힘이 훨씬 약하다. 현재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킬로그램당 250와트시로 항공유(킬로그램당 1만2천와트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선정단은 그러나 운항거리 800km 이하인 항로에서는 2025년까지 전기항공기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항공편의 거의 절반이 이 운항거리 범위 안에 있다. 2017~2019년 3년간 전기항공기 개발 스타트업에 투자된 돈은 2억5천만달러, 현재 진행중인 전기항공기 개발 프로젝트는 약 170개에 이른다. 에어버스는 2030년까지 100인승 여객기를 내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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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시멘트 : 10년내 탄소제로 시멘트공장 실현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추진하는 노르웨이 시멘트제조업체 노르셈의 공장.
탄소 배출량을 줄인 저탄소 시멘트도 유망기술로 꼽혔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가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나온다. 시멘트가 주재료인 콘크리트는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재료 가운데 하나다. 현재 한 해 생산되는 시멘트는 40억톤에 이른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시멘트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는 점이다. 30년 후에는 한 해 50억톤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재 다양한 저탄소 시멘트 제조법이 연구중이며 일부는 이미 실제 현장에서 사용중이다. 미국 뉴저지주의 스타트업 솔리디아는 럿거스대가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탄소 배출량을 30% 줄였다. 이 제조법의 핵심은 석회석을 덜 쓰고 점토를 더 많이 쓰는 것이다. 가열온도도 낮췄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다트머스의 카본큐어란 회사는 다른 산업공정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광물화 처리 과정을 거쳐 콘크리트에 저장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회사는 시멘트 대신 제철 공정의 부산물인 슬래그를 쓴다. 노르웨이의 시멘트제조업체 노르셈(Norcem)은 공장 중 한 곳을 세계 최초의 탄소 무배출 시멘트공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 공장에선 이미 화석연료 대신 폐기물을 연료로 쓰고 있다. 여기에 탄소 포집과 저장 기술을 이용해 2030년까지 탄소 제로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공기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박테리아를 콘크리트에 넣거나, 광합성 미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로 저탄소 콘크리트를 제조하는 기술이 연구중이다. 선정단은 이런 기술들이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모두 대체할 수는 없지만 일부 구조물에선 콘크리트 대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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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수소 : 재생에너지와 전해조 효율이 성공의 관건
네덜란드에서 개발한 수소 드론.TU Delft 제공
수소를 연소시키면 부산물로 물이 나온다. 수소가 청정에너지로 꼽히는 이유다. 그러나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쓰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런 수소를 `회색 수소'라고 부른다.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격리하면 회색 수소보다는 한 단계 더 친환경적인 수소를 사용하게 된다. 이를 ‘블루 수소’라고 한다.
진정한 청정에너지라 할 `녹색 수소'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수소는 물 전기분해를 통해 생산한다. 전기분해를 하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전기를 만드는 데는 화석연료가 들어간다. 온실가스 에너지로 청정 에너지를 만드는 모순이 발생한다.
선정단은 최근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력망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여분의 재생에너지 전기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전기를 이용하면 `녹색 수소'를 구현할 수 있다. 전해조 효율이 좋아지고 있는 것도 `녹색 수소'에 청신호다. 선정단은 기업들이 10년 안에 기존 수소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녹색 수소'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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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컴퓨팅, 양자 센서, 게놈 합성은 어떻게 우리 생활을 바꿀까
물질의 아주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내는 양자 센서를 이용하면 모퉁이 너머에서 다가오는 차를 실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다. MIT테크놀로지리뷰 제공
선정단은 일상 생활과 산업을 변화시키는 신기술 세 가지에도 주목했다. 먼저 가상 및 증강 현실 기술과 클라우드를 결합해 사물을 입체적으로 연결하는 공간 컴퓨팅이 있다.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를 융합해주는 기술이다. 공간 컴퓨팅은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라이다(LIDAR, 빛 감지 및 거리 측정 장치), 비디오 등의 기술로 어떤 사물의 `디지털 아바타'를 만든 뒤 이를 방이나 건물, 도시 디지털 지도와 결합한다. 이 지도와 데이터 센서, 디지털 아바타를 합쳐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실제 세계와 연결된 디지털 세계가 만들어진다. 예컨대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 처리를 위해 구급 의료진을 아파트로 급파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공간 컴퓨팅 시스템을 이용하면 환자의 의료 기록이 실시간 업데이트돼 의료진의 모바일 기기로 전송되고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경로를 안내해준다. 교차로에선 구급차가 지나가는 때에 맞춰 신호등을 자동 조절해 길을 열어준다. 구급차가 도착하면 건물 입구 문도 자동으로 열린다. 환자를 들것에 싣고 갈 때와 같은 방법으로 다시 가장 빠른 겨로로 병원 응급실로 돌아와 수술을 준비할 수 있다.
양자 센서도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기술로 꼽혔다. 물질의 아주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양자 센서를 이용하면 모퉁이 뒤에서 다가오는 차를 미리 감지해낼 수 있다. 또 수중 항해 시스템, 지진이나 화산 활동 조기경보 시스템, 뇌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휴대용 스캐너 등도 가능해진다. 선정단은 양자 센서가 3~5년 안에 의료, 방위 산업 분야에서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선정단이 마지막으로 주목한 것은 단순한 유전자편집을 넘어 유전자 전체를 합성하는 합성생물학 기술이다. 코로나19 초기에 스위스 과학자들은 중국 과학자들이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웹사이트에 공개한 염기 서열 데이터를 이용해 완전체 바이러스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덕분에 바이러스 실물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바이러스를 연구할 수 있게 됐다. 선정단은 게놈 합성 기술이 앞으로 의약품이나 신물질 개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2020년대말까지 수십억개의 뉴클레오티드(DNA, RNA 같은 핵산을 이루는 기본 단위)로 이뤄진 게놈 합성까지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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