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와넬라균의 표면에 우라늄 나노와이어가 형성 돼 있다. 이를 확대하면(왼쪽 위) 나노와이어들이 망사처럼 얽혀 있는 것이 보인다. 광주과학기술원 제공
허호길(48) 광주과학기술원(지스트) 환경공학과 교수는 2007년 가을 조교와 함께 전남 해남군 우항리의 공룡발자국 퇴적층을 찾았다. 자갈 몇 개를 가져다 갈아 그 속에서 ‘슈와넬라’라는 박테리아(세균)를 찾아냈다. 허 교수 연구팀은 19일 이 슈와넬라균이 방사성 물질을 나노와이어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내 방사능에 오염된 흙이나 물을 쉽게 정화하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 나노물질 제조하는 만능재주꾼 슈와넬라균은 땅 위나 물속, 깊은 지하 등 어디서나 사는 흔한 미생물이다. 허 교수가 공룡 퇴적층을 찾은 것은 “순전히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슈와넬라균은 평소에는 대장균처럼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뿜지만, 산소가 없으면 대신 금속을 흡수해 에너지를 생산한다.
연구팀은 처음에 산소 대신 비소(As)를 줬다. 슈와넬라균이 중금속을 먹어치울 것 같아서다. 슈와넬라균을 비소이온 용액에 담그자 예상한 대로 비소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대신 ‘배설물’로 황화비소를 내보냈다. 이 황화비소를 말려 자외선을 쬐었더니 전류가 흘렀다. 또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20~10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의 나노튜브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반도체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연구논문은 2008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리고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도 소개됐다.
이번에는 먹이로 비소 대신 우라늄을 줬다. 이미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팀은 슈와넬라균을 방사성 오염수에 넣으면 우라늄 6가 이온(안정한 우라늄보다 최외각 궤도의 전자가 6개 부족한 이온)을 물에 녹지 않는 우라늄 4가의 나노분말(파티클)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낸 상태였다. 하지만 지름 2~3㎚의 미세한 나노파티클은 일반 필터로 걸러낼 수가 없어 오염 제거에는 쓸모가 없어 보였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신기하게도 슈와넬라균은 일차적으로 우라늄 6가 이온을 나노와이어(단면 지름이 1㎚ 정도의 극미세선)로 만든 뒤 시간이 지나면 이 나노와이어가 우라늄 4가의 나노파티클로 변했다. 슈와넬라균 연구의 대가로 논문에 공동연구자로 들어가 있는 미국 국립북서태평양연구소(PNNL)의 짐 프레드릭슨 박사조차 처음에는 믿지 않았을 정도다. 허 교수는 “결과가 중요한 공학적 접근이 아닌 과정을 중시하는 기초과학적 시각으로 들여다보니 다른 팀들이 지나쳤던 것을 찾아낸 것”이라며 “나노와이어는 길기 때문에 천 등으로 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논문은 영국왕립화학회가 발간하는 화학분야 학술지 <케미컬 커뮤니케이션> 17일치(현지시각) 온라인판에 실렸다.
그러나 슈와넬라균을 실제 오염 현장에 적용하려면 몇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가장 큰 약점은 슈와넬라균이 방사선에 약하다는 것이다. 박테리아를 많이 배양해서 넣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노와이어를 형성하는 유전자를 찾아내 방사능에 강한 박테리아(라디오듀런스)와 합성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슈와넬라균 변형체 중 어떤 것이 나노와이어에서 나노파티클로 변환하는 시간이 긴지를 알아내는 것도 연구과제다.
■ 전기 생산·석유 재생 능력도 슈와넬라균은 전기생산 미생물로도 주목받고 있다. 슈와넬라균을 이용한 미생물연료전지를 처음 구현한 것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의 김병홍 전 책임연구원이다. 1998년 김 박사는 젖산을 먹이로 주어 전기를 생산했다. 이후 슈와넬라균 연구는 또다른 연료전지용 미생물인 ‘지오박터균’ 연구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장인섭 광주과기원 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슈와넬라균을 이용한 미생물연료전지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석유를 재생하는 기술에 적용하려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은 최근 광합성을 하는 시네코코쿠스균과 탄화수소를 생산하는 슈와넬라균을 이용해 공기중 이산화탄소를 화석연료로 바꾸는 실험을 <생물화학저널>에 보고했다. 광합성 박테리아가 이산화탄소와 태양광을 이용해 설탕(당)을 만들면 이 당을 이용해 슈와넬라균이 화석연료의 주성분인 탄화수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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