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한방체액조절연구센터에서 이호섭 센터장(가운데)이 연구원들과 쥐의 심장에 한방제제 채취액을 주입하는 실험을 준비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방체액조절연구센터 제공
한방 이뇨제 ‘오령산’ 이용해 신장 기전등 규명
한의학 원리 밝혀 한-양방 협력 가능성도 살펴
한의학 원리 밝혀 한-양방 협력 가능성도 살펴
선도연구센터 ‘외길 20년’
③한방체액조절연구센터
과일은 90% 이상이 물이다. 우리 몸도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0% 정도가 물(체액)로 이뤄져 있다. 일정한 수준의 체액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몸의 항상성, 특히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현대의학은 체액 조절에 문제가 생겨 발병한 질환을 치유하기 위해 혈관이완제나 이뇨제 등을 처방한다. 한방에서는 오령산 등 여러 약재를 섞은 ‘복방’으로 치료한다. 치료 효과는 똑같다. 양방과 한방의 처방이 몸속에서 일으키는 현상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눈발이 흩뿌리는 지난 24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안 한방체액조절연구센터는 여느 연구실과 다를 바 없이 각종 생물실험 도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종 센서가 연결된 가느다란 유리관 안에서는 실험쥐의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한약의 추출물들을 시험관에 흘려보내 쥐의 심장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컴퓨터에 기록했다. 이호섭(55) 연구센터장(원광대 한방생리과 교수)은 “서양의학이나 한의학 모두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목표는 똑같다”며 “한의학의 처방이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서양의학 분석방법으로 규명해 하나의 언어체계로 해석을 하고 궁극적으로 한방과 양방의 협력이 가능한지를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방체액조절연구센터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002년부터 의·치·한의대 및 약대 안의 기초의과학 연구집단을 육성하기 위해 연간 7억원씩 9년을 지원하는 32개 ‘기초의과학연구분야’(MRC) 선도연구센터 가운데 하나다.
우리 몸의 체액 조절은 주로 심장과 신장(콩팥)이 담당한다. 서양의학에서는 각각의 장기가 서로 다른 구실을 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1950년대 개의 심장에 풍선을 넣어 혈액량을 부풀리는 듯한 효과를 내자 오줌이 많이 나오는 실험을 통해 심장과 신장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의과학자들은 심장에서 내분비물질인 ‘심방이뇨호르몬’(ANP)이 분비되고 이것이 신장에서 이뇨작용을 하는 작동원리를 규명했다. 생리학의 대가로 연구센터에 합류한 조경우(70) 전 전북대 의대 교수는 “심장에서 혈압을 조절하는 기능과 신장에서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은 서로 연관돼 있다”며 “한의학적 관점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서양의학과 어느 점이 다른지를 살피다 보면 서로 보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양의학에서는 아직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근본적 치료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의학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두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한방제제가 심혈관 및 호르몬계에 작용해 체액을 조절하는 기전을 밝히는 것이고, 나머지는 신장에서의 기전을 규명하는 것이다. 신장 기전 연구에는 택사 등 5가지 한약재를 섞어 만든 대표적 한방 이뇨제인 ‘오령산’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강대길(51) 원광대 한의학전문대학원 한약자원개발학과 교수는 “체액은 세포 안에 있는 것과 혈관 안에 있는 것, 장기와 장기 사이에 있는 간질액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전체 체액량을 결정하는 것은 신장”이라며 “한약의 각각의 성분들이 세포 차원에서부터 개체 전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세포학적·조직학적 연구를 통해 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의학은 연구 성과 평가기준의 하나인 과학논문 인용색인(SCI) 논문을 발표하기가 쉽지 않다. 심사를 맡아줄 전문가가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구팀의 논문은 세계 최대 과학 관련 학술논문 출판사인 엘스비어가 발행하는 <혈관약리학>에서 최다 인용 상위 10위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호섭 센터장은 “한약제제는 몇개에서 몇십개의 단위 약재를 섞어 만든 것임에도 그동안 연구비 지원기간이 짧아 연구가 단편적으로 이뤄지는 한계가 있었다”며 “선도연구센터 지원으로 집단연구·장기연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끝>
익산/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한방체액조절연구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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