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에서 1등상을 받은 인공지능 디지털 아트 ‘스페이스오페라극장’. Jason M. Allen 트위터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미술작품이 공모전에서 1위에 입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열린 미국 콜로라도주박람회 미술전에서 게임 디자이너인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이 제출한 작품 ‘스페이스오페라극장’이 신인 디지털 아티스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 그림은 한 줄의 문구를 그래픽으로 변환해주는 인공 지능 프로그램 미드저니(Midjourney)로 제작했다.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고액에 거래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공식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작품이 상을 받는 것은 부정행위라는 비난이 일자, 앨런은 자신의 작품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걸 분명히 밝혔으며 자신은 작품의 출처에 대해 누구도 속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대회에 작가 이름을 ‘미드저니를 이용한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 via Midjourney)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어떤 규칙도 어기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콜로라도 주정부의 올가 로백 대변인도 앨런이 작품을 제출할 때 미드저니를 이용한 사실을 적절하게 밝혔다고 말했다. 앨런이 제출한 디지털아트 부문의 규칙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을 창작 또는 프리젠테이션 과정의 일부로 사용하는 예술 행위”는 허용된다. 대변인은 “심사위원들은 미드저니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그 사실을 알았더라도 앨런에게 최우수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미드저니에 ‘로봇은 무엇을 꿈꾸는가’(what do robots dream of)란 지시문구(프롬프트)를 입력해서 나온 그림들. 이코노미스트(2022.6.11.)에서 인용
앨런이 박람회에 인공지능 그림을 낸 것은 새로운 유형의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가 만든 작품이 예술가가 직접 그린 작품과 비교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서였다고 한다.
현재 베타 버전으로 나온 미드저니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디스코드란 채팅 서버에 초대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가 채팅방에서 몇개의 단어를 입력하자 미드저니는 몇초 후부터 그림을 만들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가 무슨 단어를 입력하든 미드저니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며 “마치 딴 세상의 악마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100여개의 그림 중 3개를 골라 인쇄한 뒤 콜로라도주박람회 ‘디지털 아트’ 부문에 제출했다. 그는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를 입력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논란은 그가 상을 받은 뒤 디스코드 채팅창에 게시한 수상작 사진이 트위터에 공유되면서 시작됐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우리는 예술의 죽음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고 있다”는 댓글을 달았다. “너무 끔찍하다.” “인공지능 그림이 얼마나 유익한지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등의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앨런 쪽을 옹호하는 이들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은 포토샵 같은 디지털 이미지 조작 도구를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품질 좋은 이미지를 얻으려면 편집 프로그램을 잘 다룰 둘 알아야 하듯, 원하는 그림을 얻기 위해선 정확한 문구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기계가 아닌 인간 고유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앨런은 ‘시엔엔’ 인터뷰에서 대회에 제출한 작품 3개를 얻기 위해 80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원하는 그림을 얻게 해주는 지시문구를 거래하는 온라인플랫폼 ‘프롬프트베이스’ 화면. 다양한 형상의 유인원 아바타를 만들어주는 문구가 1.99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인공지능 예술 소프트웨어는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최근 그 기술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미드저니를 포함해 달리2(DALL-E 2),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등 새로 등장한 인공지능 도구들은 단어 몇개만 입력해도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그림을 만들도록 유도하는 정확한 지시문구(프롬프트)를 찾아내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 됐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란 신종 직업이 등장할 정도로 프롬프트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달리2에 입력할 지시문구를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 프롬프트베이스(PromptBase)가 문을 열었다. 한 건당 1.99~5달러다. 거래가 성사되면 프롬프트베이스가 거래액의 20%를 수수료로 떼간다. 애플과 구글이 애플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에서 결제가 이뤄질 경우 일정액을 수수료로 떼가는 것과 비슷하다.
인공지능, 더 멀게는 기계가 개입한 예술을 둘러싼 논쟁은 사실 오래됐다.
처음 카메라가 발명됐을 당시 화가들은 이를 인간 예술성의 타락으로 여겼다. 예컨대 19세기 프랑스 시인 겸 미술 평론가 샤를 보들레르는 사진 기술을 “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고 비난했다. 20세기에는 디지털 편집도구와 컴퓨터 기반 디자인 프로그램들이 비슷한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이미지 도구들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점차 세상의 중심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각기 나름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면서 예술의 개념을 확장하고 새로운 시장을 열어갔다. 논란에 휩싸여 있는 인공지능 그림 도구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