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용 카레이싱 게임 그란투리스모 경기 장면. 소니 동영상 갈무리
체스와 바둑, 포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스타크래프트)에 이어 카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벽을 넘어섰다.
게임기기 플레이스테이션 제작업체 일본의 소니는 자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드라이버 ‘GT소피(Sophy)’가 플레이스테이션용 모터스포츠 게임 ‘그란 투리스모(GT)’ 경기에서 인간 챔피언에 승리를 거뒀다고 10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표지논문으로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인간 챔피언과의 레이싱 게임에서 이긴 사진을 실은 과학저널 ‘네이처’(2월10일) 표지.
소니에 따르면 시행착오를 통해 실력을 쌓아가는 딥러닝(심층강화학습) 방식으로 기술을 습득한 인공지능 소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싱 게이머들과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4명의 인간 드라이버와 4개의 소피가 맞붙은 집단 레이싱에서는 소피가 6번의 경기 중 5번을 1위로 들어왔고, 인간 드라이버 3명과 맞붙은 일대일 대결에선 소피가 모두 이겼다.
소니는 인공지능은 단 몇시간 훈련 후에 트랙 완주 기술을 터득했고, 이틀만에 훈련 데이터 세트에 있는 레이서의 95%를 물리쳤다고 밝혔다. 이어 4만5000시간 훈련 후에는 3개의 그란 투리스모 트랙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줬다.
카레이싱 게임은 바둑이나 체스와는 달리 게임하는 동안 끊임없이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 특히 그란 투리스모는 단순한 트랙 경주가 아니라 공기 저항, 타이어 마찰 같은 실제 자동차 경주장 환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따라서 스타크래프트 같은 액션게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과감한 판단과 순발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주목된다.
인공지능 소피의 카레이싱 장면(왼쪽)과 주행 궤적(오른쪽 파란색 선). 네이처
미 스탠퍼드대 크리스티안 거디스(Christian Gerdes) 교수는 ‘네이처’에 “일대일 경쟁에서 기술적으로 인간을 앞섰다는 것은 획기적인 성과”라며 “소피를 개발하는 데 사용한 기술이 자율주행차용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논평했다.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의 브루노 카스크 다 실바 교수(인공지능)는 ‘와이어드’에 “이번 성과는 자율주행차용 인공지능 시스템에 중요한 진전”이라며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알고리즘의 안전성, 신뢰성을 보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곧장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소피와 대결을 펼친 에밀리 존스는 ‘네이처’에 “인공지능이 타는 라인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며 “예컨대 제1 회전구간에서 내가 인공지능보다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인공지능이 나보다 더 빨리 빠져나가 다음 구간에서 나를 앞섰다”고 말했다. 그란 투리스모 제작자이자 실제 카레이서이기도 한 야마우치 가즈노리는 ‘와이어드’에 “소피는 사람이 생각하지 못했던 레이싱 라인을 사용한다”며 “운전 기술에 관한 교과서가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