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2017년 6월29일(현지시각) 워싱턴디시 에너지부에서 '미국 에너지 분야의 미래'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6월1일 공식 발표한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에 대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인간이 기후변화를 일으켰다는 데 대한 동의율이 극히 낮은 미국의 공화당 지지층한테 기후변화를 믿는 보수주의자가 기후위기를 설명하는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자 기후인식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인간 유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보수층도 정보를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받으면 인식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연구여서 주목된다.
2020년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73%는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62%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인간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2010년 지구온난화를 믿는다는 비율이 57%였던 데 비하면 기후인식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인식 변화는 주로 민주당 지지층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또다른 연구에서는 대통령과 국회가 지구온난화의 우선 순위를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높거나’ ‘매우 높은’ 순위에 둬야 한다고 답변한 민주당 지지자는 83%에 이른 반면 공화당 지지층은 22%에 그쳤다. 기후변화 심리학에서는 보수층의 경우 ‘확증편향’(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만을 근거로 신념을 강화하는 경향) 때문에 인식 변화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예일대와 신시내티대 공동연구팀은 미국 보수층이 잘 설계된 정보를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받을 경우 인식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 최근호에 발표했다.(DOI :
10.1038/s41558-021-01070-1)
연구팀이 현장 연구에 사용한 동영상들. New Climate Voices 누리집(www.newclimatevoices.org) 갈무리
연구팀은 민주당(파란색)과 공화당(빨간색) 두 정당에 대한 지지가 팽팽한 ‘보랏빛’ 지역인 미주리-02와 조지아-07 선거구에서 한달 동안 기후변화의 현실과 위험에 관한 동영상을 배포하는 광고 캠페인 현장 실험을 했다.
캠페인은 ‘
새로운 기후 목소리’라는 제목의 동영상들로 구성됐다. 한 동영상에는 공군 퇴역장군이 기후변화가 국가안보를 위협해 미군에 위험요소라는 연설이 담겼다. 또다른 영상은 기후과학자이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캐서린 헤이호이가 그의 신앙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일맥상통함을 설명하고 있다. 전 공화당 의원인 밥 잉글리스가 그의 보수적 가치가 어떻게 기후변화에 관한 정치적 활동의 추진력을 자극하는지를 역설하는 영상도 있다.
연구팀은 사람들한테 페이스북, 유튜브, 기타 온라인 광고 등을 통해 동영상을 전달해 자주 보도록 유도했다. 실험 뒤 해당 지역 주민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기후인식에 변화가 있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한 동의율이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87%에서 93%로 6%포인트 높아지고, 공화당 지지층은 33%에서 40%로 7%포인트 높아졌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의 경우에는 차이가 더욱 커서 민주당은 86%에서 89%로 3%포인트 높아진 데 비해 공화당 지지층은 20%에서 33%로 무려 13%포인트가 높아졌다. ‘개인에 대한 피해’ 인식도 민주당 지지층은 5%포인트 늘어난 데 비해 공화당 지지층은 12%포인트가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지구온난화가 인간 활동 때문이다”는 인식(민주당 9%포인트, 공화당 10%포인트 증가), ‘지구온난화 문제의 중요성’ 인지(민주당 3%포인트, 공화당 11%포인트 증가), ‘미래세대의 피해’에 대한 인식(민주당 2%포인트, 공화당 16%포인트 증가) 등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오히려 어느 당에도 지지를 표지하지 않은 무당층의 경우 모든 항목에서 인식 변화가 거의 없었다.
미국 캘리포이나에 위치한 여론조사기관 ‘시체인지인스티튜트’의 필립 에리트는 같은 저널에 실린 리뷰논문 ‘뉴스앤뷰스’에서 “연구팀의 실험 결과는 올바른 전략이 올바른 방식으로 사용되는 한 양극화하고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사안에서도 보수층의 신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에서) 소통 전략만큼이나 캠페인의 품질과 정보가 중요하다”고 밝혔다.(DOI :
10.1038/s41558-021-01071-0)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