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초기에 수소와 헬륨 정도만 존재했을 정도로 단순했지만, 이후 별·행성 그리고 생명체, 사람과 문명에 이르기까지 다양성과 복잡성을 향하여 일관되게 뻗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인류가 유례없는 위업을 달성하고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 시점에 이대로는 문명이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런가?
약 138억년 전 일어난 빅뱅에서ᅠ시간, 공간, 그리고 가장 단순한 입자가 출현했다. 우주가 팽창하여 공간이 식으면서 입자 밀도에 차이가 나는 지점이 생겨났다. 밀도가 큰 지역에서 입자들이 중력에 이끌려 한 곳으로 뭉치면서 별과 행성이 탄생했다.
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과 별들 간 충돌을 통해 다양한 화학 원소가 만들어졌다. 물리학의 세계에서 화학이 출현한 것이다. 약 46억년 전 태양이 만들어지고 그 뒤 약 1억년 지나 행성이 만들어졌다. 이때 지구는 별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원소로 구성되었고 태양과의 거리가 적당하여 물이 존재할 수 있었다. 물질이 순환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지구과학의 세상이 열렸다.
지구가 만들어진 뒤 약 10억년이 지나 단세포 박테리아가 나타났다. 변하는 지구환경에서 생물학이 시작된 것이다. 약 20억년 전에 다세포 생명체가 출현했고 약 6억년부터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로 진화했다. 이를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고 표현했다.
약 600만년 전 침팬지에서 분리된 호미닌 종에서 진화한 현생 인류는 20만년 전에 등장했다. 인류는 자연의 연결 관계와 규칙을 찾아냈다. 언어를 통하여 이 학습을 퍼뜨리고 누적시킬 수 있었다. 약 1만년 전 농업이 가능한 기후로 변하게 되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게 되고 집단 학습이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전문적인 직업, 위계, 문자, 건축물과 국가가 등장하여 문명이 탄생하였다. 이로써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사회과학의 시대가 열렸다.
250년 전부터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사회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 인구가 7억6000만명에서 78억명으로 약 10배 늘어났다. 엄청난 인구, 복잡한 도시, 그리고 이를 연결하여 거대하고 단일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우주에서 새롭고 좀더 복잡한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시스템 안에서는 늘 변화가 일어나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에너지인 자유 에너지는 구배(기울기)나 변이, 곧 차이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복잡계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구배에서 나타난다. 생명체도 무작위로 일어난 변이로 인해 다양하고 복잡하게 진화하였다. 이때 자연조건이 어떤 개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선택하였다. 설계자가 없어도 새로운 복잡계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 요소들이 가진 속성이 아니라 새로운 속성이 나타나며 이를 창발성(emergent)이라고 한다. 물은 산소와 수소가 합쳐져 만들어지지만, 물의 속성은 산소와 수소의 속성으로는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주는 전체적으로 무질서를 향해간다. ‘무질서도’란 그 상태가 존재할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비례한다. 공간이 커진다는 것은 물건을 놓을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지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경우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우주 팽창은 무질서의 척도인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며 이를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한다. 우주 안의 모든 질서는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른다. 그렇다 해도 어느 한 곳에서 질서가 만들어지면, 그 주변에서 그보다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내어 열역학 제2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ᅠ
셰송은 열역학 제2법칙의 파괴적 압력에 저항하며 생명체를 유지해주는 자유 에너지 흐름의 밀도를 계산하였다. 생명체는 별보다 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질량에 더 큰 에너지를 사용한다. 생명체가 복잡성을 유지하는 힘은 천문학적 규모의 복잡성을 유지하는 힘과는 다르다. 천문학적 규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력이 생명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생명체는 중력보다 훨씬 큰 힘인 전자기력과 핵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이런 힘들은 원자가 어떻게 모여 더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낼지를 결정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시스템은 최대한 빨리 무질서한 최종 상태에 이르는 경로를 찾으려 한다. 생명체가 별보다 더 빨리 소멸하는데 이는 생명체가 별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더 복잡한 시스템은 더 큰 에너지를 통제해야 하고 그만큼 더 빨리 파괴되기 쉽다.
에너지 밀도 추정 비교표. 출처 : Eric Chaisson, Comic Evolution: The Rise of Complexity in Nature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1), p139. ‘시간의 지도’(데이비드 크리스천 저)에서 재인용.
우리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열역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과거에 비해 사회가 뜨거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온도에서는 분자 속도의 범위가 제한된다. 분자를 재배열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적어 엔트로피가 작다. 반면 온도가 높으면 분자의 평균 속도가 크므로 개별 분자가 속도를 바꿀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이로 인해 분자가 재배열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 엔트로피가 크다. 사회 온도가 낮으면 적은 에너지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낮을 때와 같은 정도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사회가 붕괴한다.
원시 인간은 하루 동안 2000㎉ 정도를 먹으면 살 수 있었다. 농업과 함께 가축을 이용하게 되면서 한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은 하루에 1만2000㎉에 이르렀고 산업 혁명으로 석탄을 사용하면서 6만㎉로 늘어났다. 오늘날에는 한 사람이 하루에 원시 상태에서보다 20배나 더 많은 40만㎉에 이르는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인구는 78억명이 아니라 무려 1500억명을 넘는 것과 같다.
식물은 햇빛을 이용하여 매년 100억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수화물로 전환하여 모든 생명을 키워낸다. 반면 인간은 과거 수억년 동안 저장된 햇빛 에너지인 화석연료를 태워 매년 400억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일으켜 생명을 멸종시킨다.
이렇듯 오늘날 문명은 더 많은 인구와 더 복잡한 체계에서 더 많은 엔트로피(무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문명은 충격에 약해져 혼란이 사회 전반에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 이미 자연 재난, 감염병과 금융 위기 등의 충격이 전 세계 위기로 비화하기도 하였다. 결국 ‘어떤 위험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문명은 자연 안에서 만들어졌으므로 자연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우주와 자연은 인간만 번창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우주가 만들어지고 자연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성의 결과물일 뿐이다. 생명체가 지난 35억년 동안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 인간처럼 어느 한 개체만이 복잡성을 확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 함께 다양성을 향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이 대형 마트보다 그리고 해양 생태계가 양식장보다 훨씬 풍요롭고 더 지속할 수 있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지구 온도뿐만이 아니라 사회 온도도 낮춰야 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동일한 시스템에서 온도가 높을수록 에너지원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유용한 일’의 최대치가 작아진다. 곧 온도가 높아지면 에너지 효율이 낮아져 낭비되는 에너지가 많아진다.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훨씬 많은 연료를 태워야 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목표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고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문명은 자연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자연과의 거래이어야 한다. 더 복잡해질수록 더 무너지기 쉬워지는 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명을 성공적으로 건설했다 해도 이 물리법칙에 개입할 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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