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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전 세계 정치 체제를 바꾼다

등록 2020-10-16 06:59수정 2022-01-04 12:51

[조천호의 파란하늘]
기후변화로 예상 가능한 정치체제 4가지
위기는 권력 집중이나 완전 해체 유발해
“담대한 전환 위해 시민 정치 참여해야”
지구의 날인 지난 4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들이 코로나19 사태의 근본 원인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라며 환경문제에 범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의 날인 지난 4월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가들이 코로나19 사태의 근본 원인은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라며 환경문제에 범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긴밀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기후 위기는 자연 재난뿐만 아니라 정치경제 체제에까지 그 영향이 급속도로 파급될 수 있다. 기후위기로 일어날 물 부족, 식량 부족, 생태 파괴, 해안 침수, 감염병 유행 등이 사회 불안정, 정치 갈등, 국경 분쟁, 난민 발생, 인종 청소 등 파괴적인 충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기후위기보다 인류에게 더 제한을 가할 지배적인 조건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온 제도들은 다가오는 수십 년, 더 나아가 수백 년의 시간 규모에서 생각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또 그것을 거의 준비하지도 않았다. 결국 기후 위기가 일어나면 기존 정치 질서가 자기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는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혼란한 상황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기후 위기로 사회가 무질서해지면, 사람들은 질서를 잡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위험과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위기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권위적인 권력이 강제하는 질서에 복종할 수도 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이 욕망하는 지배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지배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른바 대중 독재가 등장한다. 대중 독재가 민주 사회보다 재앙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고 믿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기후 위기는 정부가 자원을 강제로 통제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는 등 민주 과정을 중단하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혼란 속에서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는 정치 선동은 결국 ‘안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배타적 거부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불안정한 사회는 없어져야 한다고 여길 수 있는 희생양과 적을 찾게 된다. 증오, 분리, 차별로 내달리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집단적 증오와 차별은 내부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했다. 결국 내부의 넘치는 증오를 밖으로도 투사하여 국경, 종교, 인종 등 온갖 갈등이 불거져 국가 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 이런 전례가 있었다. 1930년경 대공황의 극심한 사회 혼란기에 등장한 히틀러는 총칼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 당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가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민주적 투표를 통해 나치 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교육 수준이 가장 높았던 독일 시민들이 민주 과정을 중단시키고 전쟁으로 내모는 정치 체제를 열렬히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대공황에서 선택이 이러했다면, 그보다 더 가공할 규모일 기후위기에서는 과연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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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네 가지 미래

기후위기로 인해 예상되는 미래 정치 체제의 시나리오. 출처: ‘Climate Leviathan: A Political Theory of Our Planetary Future’ Geoff Mann and Joel Wainwright
기후위기로 인해 예상되는 미래 정치 체제의 시나리오. 출처: ‘Climate Leviathan: A Political Theory of Our Planetary Future’ Geoff Mann and Joel Wainwright

지오프 만과 조엘 웨인라이트 교수는 <기후 리바이어던(Climate Leviathan): 미래 지구의 정치 이론>(2018)이란 저서에서 기후위기로 나타날 수 있는 정치 체계를 다루었다. 미래 권력 시나리오를 경제구조(자본주의에 대한 신뢰도)와 정치구조(세계 통치 권력에 대한 지지도)의 두 요소에 따라 네 가지로 전망했다. 각각 리바이어던(Leviathan), 베헤모스(Behemoth), 마오(Mao), 엑스(X)라는 상징으로 설명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 정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구약성서 욥기에서 묘사하는 괴물인 ‘리바이어던’처럼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후 위기 시대에서 리바이어던은 국가 규모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제국 규모의 권력을 의미한다. ‘베헤모스’도 욥기에 나오는 괴물인데, 정치적 은유로 리바이어던과 반대로 중앙 권력이 해체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마오’는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를 상징하며 ‘엑스’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미지의 정치 체제다.

‘기후 리바이어던’은 자본주의와 전 세계 통치 권력을 지지한다. 리바이어던 체제는 전 세계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인류 이익을 지키는 데 효율적이라고 여긴다. 기후위기는 지구 규모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전례가 없는 전 세계 규모로 자원을 재할당하고 합의를 이끌 지도력이 필요하다. 전 지구적으로 식량과 물을 강제적으로 통제하는 통치 권력이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등장하게 된다. 만과 웨인라이트는 책 제목인 기후 리바이어던이 기후위기에서 가장 우세한 정치 체제로 보았다.

‘기후 베헤모스’는 자본주의를 지지하지만, 전 세계적인 중앙 권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기후 위기가 일어나면 부족해지는 식량과 물을 지키려고 각국은 장벽을 높여 자국 우선주의에 빠진다. 비상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 국경 봉쇄, 자원 사재기, 자국 보호 등을 포함하는 해결책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전 세계 식량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난민을 인도적으로 보호하는 데 필요한 국제협력 체계가 무너지게 된다. 우리는 기후 베헤모스 체제를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식량, 에너지와 자원 대부분을 수입해야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미적거리거나 오히려 악화시켜 베헤모스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살길을 막는 중이다.

‘기후 마오’는 비자본주의적이며 전 세계 통치 권력을 지지한다. 이는 국제 협력을 하면서도 자국 내부에서는 잘 통제되는 집단주의를 추구한다. 기후 마오가 자유로운 체제보다 기후 위기에 더 효율적으로 잘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 마오는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질서를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체제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나오미 오레스케스는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2015)에서 기후 위기에서 가장 나타날 가능성이 많은 정치 체제이므로 미리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후 엑스’는 자본이나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애로 국제 협력을 추구하고 경제 토대를 지속하려는 체제다. 우리를 파국에 빠뜨리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지 못한 가능성일 것이다. 자본주의와 기존 정치 체제를 넘어서는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유토피아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며 사람들이 그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이루려 하게 할 수 있다. 유토피아가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인류 사회가 진보할 때마다 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별에 닿을 수는 없지만, 별을 보며 항해를 한 옛 선원처럼 목적지에 다가갈 수도 있다.

이렇듯 다가올 정치 체제를 우리 머릿속 지도인 시나리오로 가늠할 수는 있지만,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기후 위기 대응은 지구의 물질적 한계를 문명의 토대이자 틀로 여기는 성찰, 전 지구적인 위험 관리, 기후 친화적인 경제 구축 등을 통한 담대한 전환(Great Transformation)으로 달성될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제도와 권력 구조를 만들어가는 ‘기후 위기 정치’가 요구된다. ‘민주적 논의와 합의, 그리고 이의 제도화’에 따라 기후 위기 정치의 내용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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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세 가지 길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방법으론 저감, 적응, 무대응 세 가지가 있다. 픽사베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방법으론 저감, 적응, 무대응 세 가지가 있다. 픽사베이

기후 위기 대응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저감), 기후 위기로 인한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변화(적응) 또는 저감하거나 적응하지 않는 경우(무대응)이다. 현재 저감과 적응이 너무나 더뎌서 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

왜 이런가? 기후위기 대응은 불평등한 지배 구조에 따라 이해관계의 충돌과 조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투표권,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 형식적인 정치 참여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은 자기 결정 능력을 상실하고 주어진 정치 체제의 힘에 짓눌린다. 결국 기후 위기 대응은 소수 권력층의 결정에 따르게 된다.

‘잘 살려면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현실을 운운하는 지배자들에게 현실은 단지 현재의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자기 음모의 공간일 뿐이다.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이익을 소수가 대부분 차지하는데도 위험을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해 위험을 ‘외주화’한다. 이러한 조직화된 무책임은 의사결정을 하는 권력자들이 기후위험에 처하게 될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에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2019년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당신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 모두를 실패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민들은 정치가를 포위해 들어가 압박해야 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자각은 성찰하는 시민들의 참여와 사회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기후 위기를 사회 공론의 장에서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깨어 있고 조직화된 시민들의 목소리와 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윤리적 소비 수준을 넘어서는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어도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은 만들 수 없다. 개인이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는 것은 중요하지만 투표가 더 중요하다. 정치는 개인이 윤리적 자제력을 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집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규제 문제이고 학교 채식을 위한 그 지역 제철 식자재 공급은 정책 선택이며 재생 에너지 확대는 핵발전 업계의 로비를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윤리 증폭기 역할을 통해 개인이 할 수 없는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하라”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관점으로 보면 정치는 두려운 미래와 희망찬 미래 사이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2016)에서 나오미 클라인은 공포감이야말로 기후 위기로 세계가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참혹한 현실에 직면해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공포감에 휩싸이면 달아날 힘이 생기고 높은 곳으로 뛰어 오를 힘이 생기며, 때로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두려운 미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힘이 될 수 있다. 이것으로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내야 한다.

미래 기후는 자연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기후 위기로 인한 파멸이 우리 운명이 될 수 없다. 정치란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고, 지금은 더욱 그래야 할 때다.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

<참고 문헌>

나오미 오레스케스, 에릭 M. 콘웨이, 2015,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 갈라파고스.

나오미 클라인, 2016,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자본주의 대 기후, 열린 책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20, 2050 거주불능 지구, 추수밭.

Geoff Mann and Joel Wainwright, 2018, Climate Leviathan: A Political Theory of Our Planetary Future by London, Verso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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