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하여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사회와 경제를 위축시켜 사회적 약자가 더 심한 어려움에 부닥친다. 그래도 코로나19가 사그라지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람들의 활동과 공장 가동이 줄어 오염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어져 공기가 맑아지고 기후위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오염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일상생활은 유지할 수 있다. 오염먼지는 공기 중에 배출된 후 1주일 이내에 파괴되므로 배출량이 줄어들면 즉각적으로 그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 결국, 오염먼지는 우리 세대와 우리 지역의 문제다.
그러나 온실가스는 배출 후 바로 사라지지 않고 수백 년에서 수천 년 동안 대기 중에 남아 가열 효과가 누적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시키지 않는 한 그 영향은 점점 더 커져 전 세계로 퍼지고 다음 세대에겐 더 큰 위험을 넘겨 준다. 그러니 코로나19로 공기는 맑아질 수 있어도 기후위기를 막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필요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과잉’으로 일어난다. 버려지는 음식물과 쌓이는 쓰레기 더미에서도 아끼고 나누지 않고 성장을 향해 내달리려 한다. 성장은 엄청난 양의 자연 자원과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 오염먼지와 폐기물을 쏟아내면서 무한 증식을 하려 한다. 그렇지만 무한한 성장은 유한한 지구의 물리적 한계를 피할 수 없다. 성장이 빠를수록 한계에 부딪히는 시간도 그만큼 빠르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그만큼 크고 위험하다.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에 충격을 주고, 상처 입은 지구는 기후위기를 통해 우리 문명에 역습을 가한다. 지구가열로 지구 조절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 기후가 변덕스럽고 혹독한 상태가 될 뿐 아니라 해수면 상승, 해양 산성화, 물 부족, 식량 생산 감소, 생물 다양성 파괴, 전염병 확산 등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기후위기는 자연만을 통제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정치, 경제와 사회도 급속하고 심각한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세계화는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므로 기후위기는 동시에 어디에서나 지구 전체 문명에 충격을 가한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1.5~2도에서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 수준을 유지하면 2040년경에 1.5도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위험이 닥치는 것이다. 이 기후위기는 점진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돌발적으로 일어난다. 이후에는 위험이 지속하고 증폭되어 일상으로 회복될 수 없게 된다. 이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오염먼지와 코로나19와는 차원이 다른 파국적 위험이다.
글로벌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FN)는 우리 인간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1.7배 더 소비한다고 발표했다. 지구가 우리 욕망보다 먼저 고갈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려면 8.5배 남한 면적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식량, 자원과 에너지의 공급이 부족하거나 그 가격이 폭등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됨을 의미한다. 지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몇 나라가 식량 수출을 금지했다. 곡물 자급률 23%뿐인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에 그 어떤 나라보다도 민감하다.
정부와 큰 정당들은 기후위기에 제대로 된 결정과 해결을 하지 않고 있다. 2010년 이후 태양광 패널은 85%, 풍력은 49%, 배터리는 85% 가격이 하락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기술 혁신과 산업 전환의 결과이다. 2030년 안에 재생 에너지 생산 단가가 화석연료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10년 안에 주요 선진국들은 화력발전을 조기 퇴진시키려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는 화력발전 7기를 새로 지으려 한다. 결국 새 화력발전소는 재생 에너지보다 비용이 더 들거나 새 국제 협약에서 온실가스를 저감해야 하는 경우 가동 후 얼마 못 쓰고 중단해야 한다.
가장 큰 야당은 핵발전 확대를 주장한다. 일본 원전회사가 터키와 영국에 공사를 수주했다가 거액의 손해를 보고 철수해 휘청거리고 있다. 재생 에너지 발전이 유럽 주요 국가에서 50%를 향해 가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6%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재생에너지가 환경을 파괴하고 재생에너지를 할 땅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생존을 위한 전환의 시대에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뒤떨어진 재생에너지 후진국이 되었다.
화력과 핵발전은 기후위기와 환경 위험이 아니더라도 시장에서조차도 위험하다. 에너지 전환은 할 수 없다고 핑계를 찾을 때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절박함으로 방법을 찾을 때다. 하지만, 이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정부와 정당들은 위기를 위기로 여기지 않는다. 녹색당과 정의당이 기후위기 대응을 가장 절박하게 주장하지만 이 세상에 그 울림은 작다.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 공동체의 가장 큰 위기다. 하지만, 그 어떤 거대한 인간의 권력도 인간의 저항으로 바꿀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이 지금까지는 찬란한 문명을 세웠지만, 곧 그 찬란한 문명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문명 붕괴가 현실이라면 대전환은 의무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물을 정도로 여유로울 때는 이미 지났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아 닥쳐올 붕괴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인류는 살아 있는 지구에서 태어났고 돌봄의 공동체에서 자란다. 죽어가는 지구와 붕괴한 공동체에서 인류는 생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처럼 성장에 매달려 살다 파국에 이를 것인지, 아니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생존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시민의 정치적 의지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기후위기에서 우리 삶을 지켜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투표해야 할 때다.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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