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치명적이던 천연두를 퇴치하는 우두 접종을 실험한 에드워드 제너의 시도는 인류 최초의 백신이다. 위키디미어 코먼스
인류의 전염병 투쟁사에서 영국의 기여는 두드러진다. 1798년 에드워드 제너가 당시 치명적이던 천연두에 우두 접종이 효과가 있다는 실험 논문을 왕립학회에 발표한 게 오늘날 백신의 출발점이다. 1854년 존 스노가 런던 브로드가의 콜레라 사망자 분포를 분석해 콜레라가 오염된 식수로 인한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근대 역학의 탄생 순간이다.
19세기 중엽 런던에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 콜레라 전염병 사태 때 런던 브로드가 사망자를 분석해 콜레라가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것을 밝혀낸 의사 존 스노의 기여는 근대 역학의 출발점이 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공중보건 선진국 영국의 코로나19 대응은 격세지감이다.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각)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더이상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의심사례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기침·발열 증세가 있어도 심각하지 않으면 병원을 찾지 말고 7일간 자가격리하라는 대책을 발표했다. 봉쇄와 격리, 공격적 검사 대신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집단 면역’을 키운다는 지연 전략이다. 이튿날 영국 정부의 수석과학보좌관 패트릭 밸런스는 방송에 출연해 “국민 60~70%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집단 면역이 형성된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코로나19에 감염돼도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감기처럼 가벼운 증상을 앓고 쉽게 회복되는데 이 과정에서 집단 면역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19세기 중엽 런던에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 콜레라 전염병 사태 때 런던 브로드가의 콜레라 사망자 지도. 짙은 부분이 사망자들이 집중된 지역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집단 면역은 구성원 대부분이 면역을 지닌 상태로, 감염원 전파가 느려지거나 차단된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 소수 있어도 감염 확률이 낮은 것은 대다수 접종자들의 집단 면역 덕분이다. 백신을 통한 집단 면역은 접종률 95% 이상일 때 형성된다. 감기나 백신이 아닌 인구 60% 감염을 통한 코로나19의 집단 면역은 사회적 자살행위다. 코로나19의 치사율 1%라고 가정해도 영국인 39만명이 숨진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영국 의료시설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이고 대부분의 환자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집과 거리에서 사망할 수 있는 규모다.
영국의 코로나19 일자별 사망자 추이. 월도메타(worldometer) 제공
쏟아진 비난에 결국 영국 정부는 지난 16일 강제 검진과 봉쇄 등 강경책으로 급선회했다. 존슨 총리는 이어 지난 18일 영국 전역의 학교에 대해 일제 휴교령을 발령했다. 휴교 일정 종료 뒤의 개학일정은 언급하지 않은 무기휴교다. 영국 정부의 휴교령은 존슨 총리의 지난 12일 발언으로 인해 주목받고 있다. 존슨 총리는 12일 휴교령 정책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휴교로 인한 이점보다 폐해가 더 크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당시 “휴교가 효과를 보려면 적어도 13주 이상 이어져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참고로 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영국의 확진자 추이. 월도메타(worldometer ) 제공.
정부 고위당국자가 잇따라 지연 전략과 ‘집단 면역’을 언급한 뒤 영국의 코로나19 확진과 사망 사례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집계에 따르면, 18일 기준 영국의 코로나19 총 확진자는 2626명이고 사망자는 104명이다. 17일 407명의 확진자, 16명의 사망자가 추가된 데 이어 18일에는 676명의 신규 확진자와 33명의 사망자가 추가 발생했다. 공중보건 선진국 영국의 명성이 무색한 상황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