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코오롱생명과학
▶ `강아지인 줄 알고 키웠는데 알고 보니 고양이였다.‘ 이와 비슷하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인 ‘인보사’의 주성분이 지난 15년 동안 알고 있던 형질전환 연골세포가 아니라 그 연골세포를 만들 때 실험실에서 썼던 다른 세포였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들을수록 난해한 ’인보사 사태‘의 쟁점들을 정리해보았다.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신약 ‘인보사 케이주’의 성과가 사실상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였다. 골관절염 치료제의 주성분으로 쓰인 ‘형질전환(유전자 변형) 연골세포’가 이제 와 확인해보니 인체에 쓰기 어려운 실험용 세포로 밝혀진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004년 치료제 세포를 확립한 지 15년 만에 밝혀진 일이다. 이런 사실은 3월 말 인보사 개발사인 코오롱생명과학이 미국에서 3상 임상시험을 준비하던 중 뒤늦게 확인됐고,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제조와 판매 중지 조처를 내리고 세포가 뒤바뀐 경위에 대한 본격 조사에 나섰다.
파장은 여기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 임상시험 때부터 따져 지난 11년 동안 치료제 투약은 3800여 건에 달하고 미국의 1, 2상 임상시험에서도 114건의 투약이 이뤄졌다. 심각한 부작용 보고가 없었다 해도 환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인보사의 감독기관인 식약처와 임상시험에 참여한 의료계 등으로 불똥이 튈 여지도 있다. 엄격하다는 신약 개발과 승인 과정에서 어떻게 15년 동안 치료제 주성분이 뒤바뀐 채로 사용될 수 있었을까?
미국 식품의약국 검증에서 걸려
2017년 7월12일 식약처는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로 개발된 신약 ‘인보사 케이주’의 시판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신약으로는 29번째, 국내 유전자치료제로는 최초였다. 골관절염의 유전자치료제로는 세계 최초라는 찬사도 따라붙었다.
‘유전자치료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중증 골관절염 환자의 관절강에다 주사하는 치료제의 주성분이 유전자 변형을 통해 제작된 형질전환 연골세포이기 때문이다. 인보사는 2개의 주사액으로 구성된다. 하나(1액)는 ‘육손이’로 불리는 다지증 환자에서 떼어낸 손가락 관절 안 연골세포를 확립해 만들고, 다른 하나(2액)는 주변의 다른 연골세포들이 빨리 증식하도록 성장촉진물질(TGF-β1 단백질)을 생성하는 형질전환 연골세포로 만들었다. 보통의 연골세포와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3대1로 섞어 주사해, 연골 재생과 통증 완화 효과를 내겠다는 게 인보사의 개발 목표였다.
하지만, 인보사는 2006년부터 시작한 국내 1~3상 임상시험에서 연골을 재생하는 효과를 뚜렷하게 보이지 못했다. 통증 완화 효과만 나타났다. 이 때문에 유전자치료제의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일었으며, 식약처는 통증 완화 효과만을 인정해 인보사 시판을 허가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해외 진출을 위해 미국에서도 임상시험에 공을 들여왔다. 최근에는 1, 2상을 마치고 1200여 명 환자를 대상으로 한 마지막 3상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코오롱생명과학 쪽의 설명에 따르면, 그러던 중에 형질전환 연골세포들의 세포 특성을 추가로 확인해달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요구를 받고서, 전에 해보지 않은 검사법(STR 검사)을 시행했고 그 결과에서 뒤늦게 자신들이 만든 치료용 세포가 뜻밖에도 실험실에서 쓰던 다른 세포(293세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293세포는 본래 숨진 태아의 신장에서 유래한 세포로, 증식력이 왕성해 단백질이나 유전자 실험에 자주 쓰이지만, 인체에 치료제로 쓸 수 없는 세포다.
코오롱생명과학은 3월22일 이런 사실을 국내 식약처에 알렸고, 식약처도 293세포임을 확인하고서 4월15일 인보사의 제조와 판매 중단 조처를 내렸다. 식약처는 신고된 연골세포가 293세포로 뒤바뀐 경위를 현재 조사하고 있다. 대학병원의 한 의사는 “잘못된 세포가 치료제로 승인받고 실제 환자 치료에 쓰였다는 점에서 충격과 여파는 황우석 교수 연구진 논문조작 사건 때보다 훨씬 더 클 듯하다. 폭발력이 큰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우연한 실수인가 알고도 숨겼나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이렇다. 인보사의 치료제 주성분이 승인된 형질전환 연골세포가 아니라 실험실에서 쓰던 293세포라는 것이다. 세포는 어떻게 뒤바뀐 것일까?
먼저 코오롱생명과학 쪽의 해명이다. 코오롱 쪽은 293세포가 ‘실험 실수’로 섞여 들어갔다고 말한다. 293세포가 실수로 섞여 들어가고 다시 치료용 연골세포로 오인돼 세포은행에 보존되는 바람에 이후에 증식, 배양돼 의약품으로 제조되는 세포들이 모두 293세포가 됐다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형질전환 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만들려면 보통의 연골세포에다 성장촉진 물질(TGF-β1)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끼워 넣어야 한다. 유전자는 어떻게 집어넣을 수 있을까. 생물학 실험실에서 널리 알려진 방법은, 세포를 감염해 자기 유전자를 세포에 전달하는 바이러스를 ‘유전자 운반체’로 이용하는 것이다. 성장촉진 유전자를 탑재한 바이러스를 제작한 다음에, 이 바이러스를 보통 연골세포에 감염시키면, 그 유전자는 연골세포의 유전자 안에 삽입되고, 이로써 형질전환 연골세포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바이러스는 또 어떻게 만들까. 이 대목에서 293세포가 등장한다. 분자생물학 실험실에서 쓸모가 많은 ‘지피2-293세포’(GP2-293)를 이용하면 유전자 변형에 쓸 바이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험실에서는 293세포를 이용해 유전자 변형에 쓸 바이러스들을 만들어내고, 걸러낸 바이러스들을 이용해 형질전환 연골세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 과정에서 코오롱생명과학 쪽이 바이러스만을 정제해 쓰지 않고, 293세포와 연골세포 등을 섞는 방식으로 유전자 변형 실험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변형 실험이 다 끝난 뒤 형질전환 연골세포만을 걸러내려 했으나, 여기에 293세포들이 따라 들어왔고 이런 혼입 실수를 알아채지 못한 연구진이 성장촉진 물질을 잘 발현하는 세포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293세포를 연골세포로 오인했다는 게 회사 쪽의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형질전환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293세포, 연골세포를 섞었는데 걸러내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2004년 당시 검사법에서는 293세포에만 있는 특정 유전자들이 나오지 않아 293세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연한 실수라고 하기에는 여러 의문이 남는다. 무엇보다 293세포와 연골세포를 섞는 실험 자체가 혼입의 위험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293세포임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김병수 성공회대 교수(건강과대안 운영위원)는 “293세포를 걸러내는 게 어렵지 않은 과정인데 혼입이 일어났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고, 세포 특성 검사에 여러 방법이 있는데도 15년 동안 오인했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 유전자치료제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처음부터 형질전환 연골세포가 실제로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가공하지 않은 원자료를 공개하지 못한다면 조작 가능성을 의심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약 개발 같은 길고도 체계적인 연구 과정에서 실수가 겹쳐 일어났다는 설명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상일 경상대 의대 교수(류마티스학회 기초연구이사)는 “형질전환 실험에 쓸 바이러스를 엄격히 정제해야 한다. 관심을 기울이면 어렵지 않은 과정인데 실수가 있었다는 게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포은행에 보존해온 세포의 특성을 다시 검증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으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형질전환 세포를 의약품으로 제조할 때, 코오롱생명과학 쪽은
종양원성(세포가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닌 형질전환 세포에다 상당한 방사선량을 쪼여 세포 증식력을 거의 사멸 직전까지 억제한 다음에 써왔는데 이때 사용한 방사선량은 계속 증가해왔다. 백한주 가천의대 교수(류마티스학회 정책이사)는 “2010년 논문에선 15그레이(Gy, 방사선량 단위)를 썼다고 했는데 최근엔 59그레이까지 방사선량을 늘렸다고 한다. 아마도 세포의 증식 특성이 변했기 때문인 듯한데 특성이 변하는 세포의 정체를 의심해야 했는데 검사 없이 계속 오인했다는 점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17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뒤바뀐 세포' 사태를 '제2의 황우석 사태'로 규정하고 인보사의 시판을 허가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석연찮은 인보사 심의 과정
2017년 식약처는 인보사 시판 허가를 내주기 이전에 몇 차례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승인 직전에 열린 그해 4월과 6월의 회의 과정도 ‘인보사 사태’의 또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 당시 회의록은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인터넷 자료실에서 볼 수 있다. 회의록을 보면, 그해 4월4일 회의에선 연골 재생이라는 구조 개선 효과 없이 증상 완화만을 위해 유전자치료제의 위험을 지닌 값비싼 의약품(1회 주사 600만~700만 원)을 승인하는 건 적절한지를 묻는 이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날 회의에선 인보사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2달여 만인 6월14일 회의에서는 인보사가 의약품 조건을 충족한다는 결론으로 뒤바뀌었다.
인보사 심의의 결론이 두 달 만에 바뀐 이유와 배경은 향후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문제가 터지고 나서 결과론적으로 돌아보며 드는 생각이지만, 왜 심의위 의결이 두 달 만에 정반대로 바뀌었는지는 의아한 상황이라 다시 되짚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인보사 사태로 인한 파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인보사 치료제를 쓴 환자들의 안전성 문제이다. 인보사 투약은 대략 38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코오롱생명과학 쪽은 “치료용 세포가 뒤바뀌는 실수가 있었지만 임상시험과 시판 제품에서 큰 부작용이 없었으며, 치료용 세포를 의약품으로 제조할 때 상당한 방사선량을 쪼여 세포를 사멸 직전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293세포 자체가 본래 왕성한 증식 특성을 지닌 세포인 데다 인체 치료제로 쓴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관절염 치료제의 영향은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날 수 있기에, 식약처는 향후 15년 동안 인보사를 투약한 모든 환자에 대해 장기 추적관찰을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류마티스학회는 “관계 부처뿐 아니라 학계 전문가, 연구자, 환자들이 참여하는 공개 기구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계획과 더불어 시민단체들의 형사 고발도 이어지고 있어 인보사 사태의 파장은 더욱 크고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덕현 변호사(제일합동법률사무소)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아직 진행 중인데 국민 안전과 건강을 해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환자 손해배상 소송과 함께 감독기관인 식약처가 유전자치료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허가를 내준 책임을 따지기 위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의 화려한 등장과 갑작스러운 몰락은 국내 바이오업계에도 상당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바이오업계의 한 기업 임원은 “현재로선 사실관계가 불분명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아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다만 이번 사태로 인해 갖가지 불필요한 규제들이 또 다시 생겨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식약처는 인보사 개발사인 미국 코오롱티슈진 현지실사 등을 거쳐 최종 조사결과와 향후 조처 계획을 5월 말쯤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