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양 일대를 휩쓴 산불이 완전히 꺼진 2005년 4월 6일 오전 헬기에서 내려다본 낙산사 경내가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아래 칠층석탑 앞은 원통보전이 있던 자리고, 석탑 뒤 소방대원들이 서 있는 곳이 동종이 재만 남고 탄 자리며, 맨 오른쪽의 의상교육관 왼쪽으로 종무소, 범종각 등이 탄 잿더미가 보인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금으로부터 에누리 없이 14년 전인 2005년 4월 4일 인근 야산에서 발생해 잡힌 줄 알았던 불이 다음날 되살아나 낙산사에 옮겨붙으면서 사찰 건물 대부분이 전소했다. 당시 꺼진 불을 되살린 것은 ‘양간지풍’이라 불리는 국지풍으로 분석됐다.
4~5일 강원 영동에 화재를 일으킨 바람 역시 양간지풍으로 지목된다. 5일 아침 미시령의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28.9m에 이르렀다. 이 지역에서 기상청이 관측한 최고 높은 풍속(극값)인 1968년 4월 5일 강릉의 초속 30.9m에 버금가는 강풍으로, 약한 태풍에 맞먹는 풍속이다. 기상청은 순간풍속이 초속 26m(산지 30m)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면 강풍 경보를 발령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33m 이상이면 태풍으로 분류한다.
양간지풍은 우리나라 남쪽에는 고기압이, 북쪽에는 저기압이 위치하는 ‘남고북저형’ 기압배치가 이뤄졌을 때 남서풍이 강하게 불면서 영동지방에 가속된 바람이 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 부는 바람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양양과 강릉 사이라는 뜻으로 ‘양강지풍’이라고도 한다.
1994년 한국환경과학회 가을학술발표회에 제출된 논문을 보면, 양강지풍에 대해 “강한 서풍이 대관령을 넘어오면서 강제 상승과 하강을 하게 돼 공기의 흐름이 매우 불안정하게 됨에 따라 수리점프(Hydrolic Jump) 현상 또는 강한 리웨이브(Lee Waves) 현상이 나타나 악기류(Air Turbulence)를 유도하게 되어 표층 풍속이 강화되고, 또한 강릉과 양양지역의 산의 계곡을 따라 공기가 빠르게 흐르게 되어 양강지풍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수리점프 현상은 물뜀 현상이라고도 하는데, 폭포에서 물이 떨어져 거꾸로 튀어오르듯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상승기류 현상을 가리킨다. 리웨이브는 산악의 풍하(lee)에서 발생하는 대기의 파동을 말하며 에어 터뷸런스는 기류의 흐름이 불규칙한 난기류를 뜻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남서풍이 영서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을 때 산 정상부근에 더운 공기가 있어 상층은 따듯하고 하층은 차가운 역전층이 형성돼 있을 경우 바람이 역전층을 뚫고 올라가지 못하고 역전층과 산맥 사이에서 압축돼 가속하기 시작하는데, 이 가속된 바람이 산 경사면을 타고 영동지방으로 불어오는 것이 양간지풍이다.
양간지풍은 일종의 ‘푄 현상’이다. 푄(Fohn)은 스위스 남쪽 지방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을 뜻하는 말로, 매우 고온건조해 주민들이 외출을 삼가고 불 사용을 자제했다. 바람이 높은 산을 넘을 때 올라갈 때 온도가 떨어지는 비율(습윤단열감률)과 산을 넘어 내려올 때 온도가 올라가는 비율(건조단열감률)이 달라 애초 바람의 온도보다 산을 넘어 내려온 바람의 온도가 높다. 또 산을 넘으며 응축돼 비로 내리면서 산을 넘은 바람은 건조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푄 현상’은 ‘높새바람’이다. 영동지방에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한랭다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에서 불어도는 북동풍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 푄 현상을 일으켜 강원 영서지방에 고온건조한 바람이 부는 경우가 많다. 옛말로 북쪽을 ‘높’, 동쪽을 ‘새’라 하여, 높새는 ‘북동’을 가리켜 높새바람은 북동풍을 가리킨다. 고문헌에는 한자로 ‘녹색풍’(綠塞風)으로 기록돼 있다. 기상청은 대체로 3월 21일부터 8월 10일까지 기간에 연평균 28회 정도 나타난다고 밝혔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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