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근 기초과학연구원 강상관계물질연구단 부연구단장(맨 왼쪽)이 과학기자들에게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에 관한 <네이처> 리뷰논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제공
그래핀은 탄소가 2차원으로 배열된 물질이다. 같은 물질이라도 차원(디멘션)이 달라지면 새로운 성질이 나타난다. 물과 얼음이 그렇고, 흑연과 다이아몬드와 그래핀이 그렇다. 자석도 마찬가지여서 2차원 자석을 만들면 성질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돼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의 박제근 부연구단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은 1일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이 70년이 넘도록 이론적으로만 예측돼온 2차원 물질의 스핀 특성을 실험적으로 관찰하게 해줄 열쇠라는 리뷰논문을 국제 과학저널 <네이처>의 ‘퍼스펙티브’ 코너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퍼스펙티브(Perspective)는 세계 과학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면서 파급 효과가 곧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선정해, 그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연구자에게 연구 분야에 대한 총평을 듣는 자리이다. 반데르발스 물질은 분자가 이온 결합이나 공유 결합이 아닌, 정전기적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반데르발스 힘으로 결합된 고체를 말한다. 또 스핀은 전자의 운동방향을 의미하는데, 물질의 자성은 스핀의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스핀이 모두 한 방향으로 정렬되면 강자성체(외부에서 자기장을 걸어주면 자화하고 자기장이 사라져도 자화가 남아 있는 물질로 철 등),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정렬되면 반강자성체(자석에 붙지 않는 물질들)가 된다. 하지만 자화된 철이 실온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성이 사라지는 ‘자성 상전이’ 현상이 일어나는 등 자성을 지닌 물질을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더욱이 그래핀같은 2차원으로 자성을 띤 물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박제근 부연구단장은 10여년 동안의 연구 끝에 2016년 원자 한 층 두께에 자성을 구현할 수 있는 ‘삼황화린니켈’(NiPS₃)라는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을 발견했다. 삼황화린니켈은 전이금속인 니켈(Ni)과 인(P), 주기율표상 산소와 같은 족인 황(S) 등 3개의 원자를 결합한 2차원 물질이다. 논문은 <나노 레터스>에 실렸다. 또 연구팀은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로 2차원 물질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구축된 이론적 모델 가운데 하나(이징모델)를 실험적으로 검증한 결과를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보고했다.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은 2차원 물질의 물성을 설명하는 3가지 모델을 실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물리학자들은 3차원 물질과 다른 2차원 물질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징모델, 엑스와이(XY) 모델, 하이젠베르크모델 등 3가지 모델을 세웠다. 각각의 모델에 대해 노벨상이 수여될 정도로 학술적으로 중요하지만 실험적으로 모델이 검증된 경우는 드물다.
박제근 부연구단장은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은 ‘두께 없는 2차원 자석’을 구현해 다른 2차원 물질과의 조합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2차원 자성 반데르발스 물질은 3가지 모델 모두를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강상관계물질연구단(단장 노태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은 현재 2차원 엑스와이 모델을 검증한 연구 성과를 국제 학술지에 논문으로 투고해 심사중에 있으며, 하이젠베르크 모델에 대한 연구도 진행중이다. 강상관계 물질이란 전자들의 운동이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물질들을 말한다. 강상관계 물질에서는 일반적인 도체나 반도체에서 나타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높은 온도에서 저항이 0이 되는 고온초전도 현상이나 자발적으로 비자성체가 영구자석이 되는 자화유도 현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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