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팀이 값싼 다결정 금속 포일(왼쪽)을 무접촉 열처리 기술로 고가의 단결정 구리 포일(오른쪽)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다결정 금속 포일은 고르지 못한 표면인 데 비해 단결정 금속 포일은 크게 확대해도 하나의 결정으로 고른 것을 알 수 있다. IBS 제공
국내 연구팀이 고가의 ‘단결정 금속 포일’을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제조기술을 개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단장 로드니 루오프 울산과학기술원 특훈교수)은 18일 “값싼 다결정 금속 포일을 ‘무접촉 열처리’ 기술로 간단하게 고가의 단결정 금속 포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신형준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와 유원종 성균관대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논문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18일(현지시각)치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단결정은 재료 전체에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빼곡히 배열된 상태를 말한다. 이와 달리 여러 방향의 단결정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으면 다결정이라 한다. 단결정은 전기전도도나 열전도도 등 물성이 좋은 반면 제조하기가 어려워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예로 태양전지판을 단결정으로 만들면 효율을 25%까지 높일 수 있지만 단가가 1와트당 0.75달러에 이르러, 효율 20.4%인 다결정 전지판의 1와트당 0.62달러보다 비싸 시장 경쟁력에서 밀린다. 다결정 구리 포일(알루미늄 포일처럼 얇게 펴진 구리)은 1㎠당 38원인 데 비해 단결정 구리 포일은 1㎠당 18만원에 이른다.
이는 단결정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단결정을 금속 용융액 안에 작은 단결정 알갱이를 씨앗 삼아 넣었다 뺐다 하는 과정을 반복해 씨앗 주변에 다른 입자들이 규칙적으로 달라붙게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이를 ‘벌크 결정 성장법’이라 하는데, 우선 재료를 물에 녹여 증발시켜 아주 작은 알갱이를 구하고, 지름 1㎜ 이하의 작은 알갱이(씨앗)를 낚싯줄에 매달아 단결정 재료가 가득 녹아 있는 포화용액에 넣는다. 포화용액이 증발해 미처 녹지 못한 입자가 이 씨앗 알갱이에 차곡차곡 달라붙어 단결정으로 자란다. 증발과 냉각 속도를 조절하기 어려울 뿐더러 1~3㎝의 단결정을 만드는 데도 보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연구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접촉 열처리’라는 단순한 방법을 단결정 제조에 적용했다. 다결정 금속 포일을 메주처럼 공중에 매달아 놓고 금속 포일이 녹을 정도로 고온을 가하면 포일 스스로 단결정 금속 포일로 변했다. 논문 제1저자인 진성환 연구원은 “다결정 금속 포일의 여러 결정 가운데 가장 표면에너지가 낮은 결정이 빠르게 성장해 이웃한 다른 결정을 흡수하며 결국 하나의 커다란 단결정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표면에너지가 낮다는 것은 내부 원자들이 촘촘하게 배열됐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해보니 표면에너지를 낮춰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이루는 방향으로 결정이 회전하고 또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단결정의 성장은 수소나 아르곤으로만 이뤄진 공간 안에서 효율적이었다. 진 연구원은 “수소가 존재하면 금속 포일 안에 공공(원자가 빠져 있는 상태)의 온도가 증가해 성장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무접촉 열처리 방식으로 최대 32㎠의 대면적 단결정 금속 포일을 제작하는 데 기존 제조방식에 비해 비용을 1000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 또 연구팀이 제작한 단결정 구리 포일은 재료로 쓰인 다결정 금속 포일에 비해 전기 저항이 약 7% 가량 낮았다. 이런 특성으로 단결정 금속은 고성능 소재 제작에 유리하다. 단결정을 휴대전화 부품으로 사용하면 잡음으로 인한 혼선을 줄일 수 있고, 자동차 내부의 모든 전기시스템을 단결정으로 바꾸면 에너지를 10% 이상 절약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연구팀은 무접촉 열처리 방식을 다양한 금속에 적용해, 구리뿐만 아니라 니켈, 코발트, 백금 등도 단결정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제작한 단결정 구리 포일과 단결정 구리-니켈 합금 포일을 기판으로 사용해 단결정 그래핀을 성장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논문 공동교신저자인 로드니 루오프 단장은 “실리콘 단결정 성장 기술의 발견이 현재 반도체의 역사를 연 것처럼 단결정 금속 포일 제조 방법이 다양한 분야에 응용돼 세상을 바꿔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