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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물고 물리는’ 농부 아메바와 박테리아의 관계

등록 2018-08-31 17:05수정 2018-08-31 19:35

2011년 농사 습성 아메바 발견이후 연구들
아메바, 보호막으로 일부 박테리아 생존케
영양분 풍부한 곳에서 박테리아 길러 수확
아메바 농부 습성은 어디에서 생겨난 걸까
농부 만든 특정 박테리아 역할 밝혀지기도
다세포구조체를 이룬 아메바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의 자실체와 포자낭.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다세포구조체를 이룬 아메바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의 자실체와 포자낭.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원생동물 아메바는 박테리아를 잡아먹고 사는데, 게 중에는 먹잇감 박테리아를 몸 안에 지니고 다니면서 길러 잡아먹는 이른바 ‘농부 아메바’가 있다. 이런 아메바의 습성은 2011년 처음 보고돼 주목을 받았다. 이후에 몇몇 연구를 통해 농부 아메바와 박테리아들 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좀 더 자세히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농부 아메바가 면역계 작용을 피해 몸 안에 외부 생물체인 박테리아들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비결은 보호막 구실을 하는 단백질을 분비해 박테리아가 아메바 몸 안에서 생존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새로 나왔다.

박테리아 갖고 다니다 뿌리고 길러 수확

미국 베일러의대의 애덤 쿠스파 연구진은 농부 아메바들이 ‘렉틴(lecticn)’이라는 단백질들(디스코이딘, discoidin)을 분비하고, 먹잇감 박테리아들이 그것으로 자신을 감쌈으로써 면역 감시를 피해 아메바 포자낭 안에 들어가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렇게 아메바 몸 안에 머무는 박테리아는 나중에 아메바의 농사 자원이 된다.

농부 아메바는 어떻게 박테리아 농사를 지을까? 그 습성을 처음 학계에 보고한 것은 2011년 미국 라이스대학 조언 스트라스먼 교수 연구진이었다.

아메바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의 한살이. 이 아메바는 본래 박테리아를 잡아먹으며 단일 세포로 살지만 먹잇감이 떨어지면 서로 뭉쳐 덩어리를 이룬다. 다세포 덩어리는 영양이 풍부한 환경을 찾아 이동하기도 하며, 적당한 곳을 만나면 위로 뻗어 공 모양의 포자낭을 형성한다. 포자낭이 터지면 그 안에 든 포자들이 흩어지면서 자손 아메바들이 생성된다. 그림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설명참조: nationalgeographic.com
아메바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의 한살이. 이 아메바는 본래 박테리아를 잡아먹으며 단일 세포로 살지만 먹잇감이 떨어지면 서로 뭉쳐 덩어리를 이룬다. 다세포 덩어리는 영양이 풍부한 환경을 찾아 이동하기도 하며, 적당한 곳을 만나면 위로 뻗어 공 모양의 포자낭을 형성한다. 포자낭이 터지면 그 안에 든 포자들이 흩어지면서 자손 아메바들이 생성된다. 그림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설명참조: nationalgeographic.com
당시 연구진은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Dictyostelium discoideum, 줄여서 ‘딕티’)이라는 아메바 종이 본래 단세포로 살다가 먹이가 부족해지면 다세포구조체 덩어리(slug)로 뭉쳐 마치 양분이 풍부한 자리를 찾아 이동하면서 먹이 활동을 하는데, 이때에 일부 아메바 덩어리들에선 독특한 농부 습성이 나타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발견은 그해 <네이처>에 보고됐다.

연구결과를 보면, 딕티 아메바 덩어리들 중에 일부는 먹이 박테리아를 다 잡아먹지 않고 일부를 남겨 자기 몸 안에 머물게 하면서, 양분이 풍부한 자리를 찾아 이동하다가 적당한 곳에 이르면 가져온 박테리아를 뿌려 더 많은 먹이로 번식시켜 잡아먹는 습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런 습성을 지닌 일부 아메바에 ‘농부 아메바’라는 별명을 붙었다. 농부 아메바 덩어리는 그런 습성을 지니지 않은 다른 아메바 덩어리에 비해 이동거리가 짧고 자손 번식 능력도 다소 떨어지는 특성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메바는 어떻게 일부 먹이를 바로 잡아먹지 않고 놔두는지, 특히 아메바에도 외부 침입에 맞서는 면역계가 작동할 터인데 어떻게 예비 먹잇감 박테리아들이 자기 몸 안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게 하는지의 의문은 남아 있었다.

이번에 <사이언스>에 보고한 베일러의대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이런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을 주는 셈이다. 즉, 아메바가 분비하는 일종의 ‘렉틴’ 단백질들이 먹잇감 박테리아들한테 일종의 보호막 구실을 하여 박테리아들이 아메바의 공격이나 저항을 받지 않으면서 아메바 몸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식물체에도 있는 식물 렉틴 단백질을 대신 이용했을 때에 나타나는 변화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거의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타났다. 식물의 렉틴 단백질로 감싼 박테리아는 아메바 몸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연구진은 보도자료에서 “예컨대 콩 같은 식물에 있는 다른 종류의 렉틴 단백질도 역시 박테리아가 아메바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다는 점, 그럼으로써 아메바 안에 박테리아 미생물 군총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렉틴 단백질이 박테리아한테 방탄조끼 같은 구실을 할 뿐 아니라 둘 이상 유기체들이 붙어사는 일종의 ‘유사공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평범한 아메바는 어떻게 농부가 되었을까?

아메바는 어떻게 영리한 박테리아 농사꾼이 될 수 있었을까? 농부 아메바의 이야기에 새로운 등장인물을 알리는 연구결과가 2015년에 나온 바 있다. 농부 아메바 안팎에 있는 여러 박테리아들 중에는 먹잇감도 있지만 이와 달리 아메바를 농부로 만드는 박테리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세포 구조체를 이룬 아메바 종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의 자실체와 포자낭.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다세포 구조체를 이룬 아메바 종 ‘딕티오스텔리움 디스코이데움’의 자실체와 포자낭.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농부 아메바를 처음 보고한 2011년 논문의 주요 연구자들이 참여한 미국 워싱턴대학 등 연구진은 2015년 <미국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낸 논문에서, 농부 아메바의 주된 먹잇감인 클레브시엘라(Klebsiella) 박테리아와는 달리 아메바의 먹이가 아니면서도 아메바 몸에 함께 실려 옮겨 다니는 부르크홀데리아(Burkholderia) 박테리아가 보통 아메바를 농부 아메바로 변신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몇 가지 실험에서 부르크홀데리아 박테리아의 중요한 역할이 드러났다. 항생제를 써서 농부 습성을 띤 아메바 덩어리에서 이 박테리아를 없앴더니 그 아메바에서 농부 습성이 사라졌으며, 보통 아메바에 이 박테리아를 접종하니 농부 습성이 새롭게 생기는 게 관찰됐다는 것이다.

아메바가 왜 이 박테리아를 먹이로 잡아먹지 않는지는 분명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연구에서 주요 관심사로 다뤄졌다. 연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뉴스 보도에서 “부르크홀데리아 박테리아가 아메바를 감염시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일련의 과정을 교란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박테리아가 아메바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자기보호 작용을 함으로써 이 박테리아와 아메바의 공생이 가능해지고, 그러면서 먹잇감인 일부 박테리아도 아메바한테 바로 잡아먹히지 않은 채 아메바 몸 안에 들어가 생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즉, 부르크홀데리아 박테리아의 작용이 먹이 박테리아를 남겨두었다가 길러 수확하는 아메바의 농부 습성이 생겨난 토대가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농부 아메바의 존재가 처음 보고된 이래 아직 많은 연구가 이뤄진 게 아니기에, 농부 아메바와 박테리아들 간의 복잡한 관계 스토리는 앞으로 어떤 후속 연구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수정될 수도, 또는 더욱 풍부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농부 아메바와 박테리아들의 독특한 관계에 관한 연구결과들이 나오면서, 미생물 세계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얽힌 관계가 흥미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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