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에 흔한 트랜스포존(점핑유전자)
역할 없는 ‘정크유전자’로 알려졌으나
제거하자 수정란 발달 2세포기서 멈춰
미연구진, 쥐 수정란 실험 결과 발표
‘2세포기 유전자 끄고 단계 진전’ 역할
역할 없는 ‘정크유전자’로 알려졌으나
제거하자 수정란 발달 2세포기서 멈춰
미연구진, 쥐 수정란 실험 결과 발표
‘2세포기 유전자 끄고 단계 진전’ 역할
2세포기의 배아. 두 세포에 발현된 라인1 트랜스포존(점핑 유전자)의 RNA 분포를 형광 물질을 통해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제공
하지만 2012년 이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해에 발표된 정크 디엔에이에 관한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ENCODE)에서 정크 디엔에이 영역에도 유전자 발현 조절 인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제시됐고 그 이후로 정크 디엔에이의 기능을 밝히려는 여러 연구가 이어져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정크 디엔에이의 다수를 차지하며 ‘기생자’, ‘무임승차자’ 등으로도 불렸던 이른바 ‘점핑 유전자’, 즉 트랜스포존(용어설명)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배아의 발생 단계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대학(UCSF) 등 소속 연구진(책임연구자 미구엘 라말로-산토스)은 기능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채 인간 게놈의 17%나 차지하는 ‘라인-1(LINE-1, 또는 L1)’ 트랜스포존이 수정란의 세포분열 초기 단계에서 없어선 안 될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최근 생물학저널 <셀>에 낸 논문에서 밝혔다. 이 트랜스포존을 제거하면 수정란은 2세포 단계에 계속 머무르며 더 이상의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 것으로 쥐의 수정란과 배아 실험 결과에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트랜스포존이 생명의 발생 단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하게 관여한다는 것은 뜻밖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트랜스포존이 유전체 내에서 이곳저곳에 자신의 복제물을 옮기면서 때로는 정상 유전자의 염기서열 구간 안에 끼어들어 그 유전자의 기능을 망치는 일도 있어 위험한 인자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용어설명
연구진은 라인1 트랜스포존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규명하기 위해 배아줄기세포의 핵 안에 있는 라인-1 트랜스포존의 아르엔에이를 모두 제거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그랬더니 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이 변하면서 2세포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 패턴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어 연구진은 쥐의 수정란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마찬가지로, 라인1 트랜스포존의 아르엔에이와 짝으로 결합해 함께 분해되는 아르엔에이 조각들을 넣어 세포핵 안의 라인1 트랜스포존 아르엔에이 분자를 모두 없앴다(디엔에이에는 라인1 트랜스포존이 수천 개나 복제되어 흩어져 있기 때문에 모두 제거하기 힘들기에, 발현된 아르엔에이를 제거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라인1 트랜스포존 없는 수정란은 2세포기로 분열하고서 계속 그 단계에 머물렀으며 더 이상 4세포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다. 라인1 트랜스포존이 2세포기 이후로 배아 발달 과정을 이끄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였다.
연구진은 다른 실험들을 통해, 라인1 트랜스포존의 아르엔에이가 2세포기 상태를 지배하는 유전자(Dux)의 활성을 끄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하는 유전자 조절 단백질들(뉴클레올린, 카프1)이 제기능을 하도록 돕는 데 관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렇게 보면, 라인1 트랜스포존이 없다면 2세포기를 넘어 배아가 발달하기는 어렵게 된다.
라인1 트랜스포존은 인간 게놈에서 여기저기에 수천 개나 복제되어 존재해 전체 게놈의 17%나 차지할 정도로 매우 흔한데, 그저 자리를 차지해 게놈의 몸집만 키우는 게 아니라 뜻밖에도 생명 탄생의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것이다.
연구진은 수천 개나 되는 복제 염기서열 구조가 오히려 배아에게는 안전성을 보증하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라인1이 게놈에서 수천 개나 반복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변이가 생겨 라인1의 기능이 망가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하나의 복제본 서열이 잘못돼도 다른 수천 개 복제 서열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보도자료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 관해서는 그동안 아주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그 유전자는 전체 게놈의 2% 미만이지만, 반면에 [단백질을 생성하지 않는] 트랜스포존은 전체 게놈에서 거의 50%를 차지한다”면서 “발생과 질병에서 이런 요소들이 행하는 기능을 찾아나가는 일은 앞으로도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초록 (우리말 번역)
트랜스포존(이동성유전인자)은 포유류 유전체(게놈)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일반적으로 ‘기생자’ 또는 '정크 디엔에이'로 얘기된다. 그중에서 '라인1(LINE1)' 레트로트랜스포존은 가장 흔하게 존재하는데, 세포에 해로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역설적이게도 초기 발생 단계에서 다량 발현된다. 우리 연구진은 라인1이 마우스의 배아줄기세포와 착상전 배아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고 보고한다. 배아줄기세포에서 라인1은 [유전자 조절 단백질인] 뉴클레올린(Nucleolin)과 카프1/트림28(Kap1/Trim28)을 동원하여 2세포기 배아에 특이적인 전사 프로그램 주요 활성인자인 둑스(Dux) 유전자를 억제하는 세포핵 내 아르엔에이 발판구조물(scaffold)의 역할을 한다. 이와 동시에 라인1 아르엔에이는 뉴클레올린과 카프1이 리보솜DNA(rDNA)에 결합하는 것을 매개하여 리보솜RNA(rRNA, 리보솜을 구성하는 RNA)의 합성과 배아줄기세포의 자기재생을 촉진한다. 배아에서 라인1 아르엔에이는 둑스 유전자 침묵시키기, rRNA 합성하기, 2세포기에서 벗어나기를 위해 필요하다. 그 결과로, 전사와 발달 잠재능, 그리고 배아줄기세포 자기갱신을 조절하는 데에서 라인1 RNA와 뉴클레올린, 카프1과 세포핵 주변 염색질 간에 핵심적인 파트너십이 나타난다.
[Cell(2018),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18)30655-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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