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스트레스 장애와 자가면역 질환 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대규모 통계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림은 프랑스 파리의 조각상.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또는 거꾸로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마음 건강과 몸 건강의 상관관계가 100만 명 넘는 인구의 건강 데이터 통계분석을 통해서 다시 확인됐다. 아이슬란드 국립대인 아이슬란드대학과 스웨덴의 카론린스카연구소 소속 연구진은 지난 30여 년(1981-2013) 동안 트라우마 관련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적 있는 스웨덴인 10만여 명과 그 형제자매 12만여 명, 그런 진단을 받은 적 없는 106만여 명의 의료와 건강 자료를 비교 분석해, “트라우마 관련 스트레스 장애는 이후의 자가면역 질환의 위험과 유의미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심한 스트레스와 면역체계 교란이 연관되어 있음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또한 관련 실험 연구도 있었지만, 이처럼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상관관계를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의학협회 학술지 <자마(JAMA)>에 최근 발표됐다.
발표 논문과
아이슬란드대학의 보도자료에서 주요한 연구결과를 보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다른 관련 스트레스 장애(적응 장애, 급성스트레스 반응 등)를 지닌 개인들이 생애 중에 갖가지 자가면역 질환들 중 하나의 진단을 받을 가능성은 평균 30-40퍼센트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어린 시절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한테서 자가면역 질환의 위험도는 좀 더 높았다. 물론 조사된 위험도는 질환 종류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연구자들이 이 연구에서 다룬 41가지의 자가면역 질환에는 류마티스 관절염, 제1형 당뇨, 전신 홍반성 루푸스, 건선, 크론병 등이 포함됐다.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각할 대 우리 면역체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졌지만 이번 연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다른 관련 스트레스 장애가 자가면역 질환 위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대규모 조사를 통해 보여준 첫 결과”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결과에서는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뒤 초기에 꾸준한 약물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서는 자가면역 질환의 위험도가 완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스트레스 장애와 후속 자가면역 질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근거로 해석된다.
연구진은 통계조사 결과가 심리적 스트레스와 몸의 염증 상태가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는
기존 실험결과들과 조응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심각한 스트레스는 면역 기능을 흐트러뜨리고 면역체계를 과민하게 활성화하는 바람에 그 결과로 몸에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여러 실험 보고들이 제시된 바 있는데, 이번 결과가 이런 실험결과들과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가면역 질환은 면역 기능에 교란이 생겨 자기 몸을 외부침입자로 오인해 공격하는 질환들로서, 원인으로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과 감염 등이 지목되어 왔으나 아직 원인이 충분히 규명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번 조사결과는 극심한 마음의 스트레스가 몸의 면역 질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반적인 연관성을 확인해준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물론 스트레스로 인한 식욕부진, 수면부족, 음주흡연 같은 요인이 면역기능에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일 수도 있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결과가 무엇이 무엇의 선행 원인이라는 인과관계를 밝혀주지는 않으며 다만 둘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 상관관계를 만들어내는 밑바탕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따로 후속 연구들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