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완연한 강원도 산골의 계곡에서 얼음장이 녹아 물방울을 떨구고 있다. 국내 연구팀이 액체가 응고하는 시점의 온도 곧 액상선 온도를 처음 측정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물질은 고유의 온도에서 상이 변한다. 액체 상태의 물질이 굳는 과정에서 가지는 온도를 응고 온도라 하고, 고체 상태의 물질이 녹는 과정에서 가지는 온도를 용융 온도라 한다. 또 액체 상태의 물질이 응고하기 시작하는 시점의 온도를 액상선 온도, 고체 상태의 물질이 용융하기 시작하는 온도를 고상선 온도라 한다. 물질이 불순물 없이 순수하다면 상변화 때 온도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네 가지 상변화 온도는 동일하다. 고체가 액체로,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동안 만큼은 온도의 변화 없이 같은 온도가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 모든 물질에는 불순물이 포함돼 있어 네 가지 상변화 온도 값에 차이가 생긴다. 이 가운데 온도가 변해도 시작점 만큼은 불변이기에 액상선 온도는 변하지 않는 유일한 값이다. 이에 따라 국제온도표준은 특정 물질의 액상선 온도를 가장 이상적인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가령 국제온도표준(ITS-90)은 영하 259.3467도에서 961.78도의 범위에 대해 상변화 온도를 이용해 온도를 정의하는데, 231.928도는 주석의 응고 온도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액상선 온도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이 기준온도가 실제 주석의 액상선 온도와 일치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현재의 기준온도는 물질의 응고 및 용융 온도로 액상선 온도를 근사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구해왔다.
국내 연구팀이 액상선 온도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액체 금속이 고체로 응고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액상선 온도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열유체표준센터의 정욱철 책임연구원은 24일 “독자적인 온도제어 원천기술을 통해 이상적인 표준온도인 액상선 온도를 측정해 현재 국제온도표준에서 기준온도로 사용하는 응고 온도에 큰 오차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연구 논문은 측정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메트롤로지아> 최신호에 실렸다.
정욱철 책임연구원이 압력제어식 온도제어장치를 사용해 주석의 액상선 온도를 측정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일반적으로 액상선 온도는 응고 시작 때의 과냉각이나 용융 종료 때의 급격한 온도 상승으로 인해 연속적인 응고나 용융 같은 통상적 상변화 과정을 통해서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정 연구원은 주기적인 열 펄스를 가해 물질이 상변화하는 속도를 조절하고 이를 통해 물질의 용융 종료 순간(=응고 시작 순간)으로 되짚어 가는 방식으로 온도를 결정했다. 연구 결과 지금까지 231.928도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된 기준온도인 주석의 응고 온도보다 주석의 액상선 온도가 0.00095도 더 높았으며, 액상선 온도와 함께 결정된 주석의 고상선 온도는 액상선 온도보다는 낮았으나 기존 응고 온도 대비 0.00049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온도표준의 불확도를 상회한다.
정 연구원은 “지금까지 밝혀내지 못했던 미량 불순물 분포가 물질 상변화 온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검증했다는 점과 향후 국제온도표준의 개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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