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닥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떠났다가 시베리아 혹한과 대설에 60만 대군 대부분을 잃었다. 영국 언론은 이를 가리켜 ‘동장군’(제너럴 프로스트)의 승리라고 불렀다. 나폴레옹 군대를 패퇴시킨 건 러시아 차르 군대가 아니라 시베리아의 차가운 기단이라고 빗댄 말이다. 겨울철 한반도를 뒤덮는 한파도 이 시베리아의 한기단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기습하는 ‘동장군’에는 ‘웨이브 트레인 한파’와 ‘블로킹 한파’ 두 유형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파는 동아시아 겨울 몬순(계절풍)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시베리아 고기압이 강화되면 하루 이틀 뒤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겨울철 동아시아 지역에는 한달에 평균 2회 정도 한파가 발생한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최근 국내 연구진의 연구 결과 한반도에서는 북대서양에서 기원하는 ‘웨이브 트레인’과 북태평양에서 기원하는 ‘블로킹’이 독립적으로 한파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웨이브 트레인은 대류권 상층에 마치 열차에 연결된 여러 객차처럼 고기압과 저기압이 번갈아가며 고위도 유라시아 대륙에서 동아시아 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유라시아 대륙 상공에 대규모 대기 불안정(상층 요란)이 웨이브 트레인으로 발달해 남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동아시아 동쪽 해안 지역에 기압골을 만들면 대기 하층에 북서풍이 분다. 이 북서풍에 의해 지면의 기압이 상승하면 시베리아고기압이 강화되고, 강화된 시베리아고기압은 또다시 상층에서 웨이브 트레인이 발달하도록 작용한다. 이런 순환을 통해 강화된 시베리아고기압의 차가운 공기가 한반도에 한파로 닥치는 것이다.
웨이브 트레인은 열차처럼 계속 움직이기에 동장군은 비교적 짧은 기간 머물다 물러간다. 겨울철의 전형적인 날씨 패턴을 일컫는 삼한사온은 여기서 유래했다. 지난 10~12일 한반도를 꽁꽁 얼린 한파는 웨이브 트레인에 의한 한파로 분석된다. 12일까지 사흘 동안 머물던 한파가 하루 사이에 물러가고 13일 낮부터 영상기온을 보였다. 상층 고기압과 저기압이 번갈아 지나갈 때마다 추운 날과 따뜻한 날이 반복되는 것이다.
반면 북극해 근처의 고위도에 형성된 저지고기압(블로킹)이 정체하거나 천천히 서진하면서 시베리아고기압을 강화시켜 한반도에서 한파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블로킹이란 상층의 고기압(또는 저기압)이 정체해 상층에서 동서 방향의 바람이 약해지고 남북 바람이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상층 대기에서 고위도는 기압이 낮고 저위도는 기압이 높아 중위도에서는 등압선과 평행하게 편서풍이 부는데, 고위도 기압이 높아지거나 저위도 기압이 낮아지면 남북류가 강화돼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일기시스템이 2주일 이상 길게 영향을 받는다. 블로킹에 의한 한파가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달 넘게 지속되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초부터 20일 넘게 추위가 계속됐던 한파는 블로킹에 의한 한파로 분류된다.
서울대 허창회 교수와 전남대 박태원 교수 공동연구팀이 한국기상학회가 발간하는 <대기>에 지난해 3월 발표한 논문을 보면, 1979년부터 2005년까지 26년 겨울(11월~3월) 동안 발생한 한파 262회 가운데 웨이브 트레인 유형은 130건, 블로킹 유형은 85건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한파’ 발생일을 시베리아 남부 지역에서 지면 고기압 중심의 해면기압이 1030헥토파스칼 이상이면서 중국 동북부 또는 한반도에서 평균 지면온도가 겨울철 일평균 지면온도 표준편차의 1.5배 이상 되는 날로 정의했다.
블로킹 한파는 북극진동(AO·북극 지역의 차가운 공기가 주기적으로 남하하는 현상)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북극진동 지수가 강한 음의 값일 때 한반도에 닥치는 블로킹 한파는 강력한 경우가 많다. 반면 웨이브 트레인 한파는 북극진동지수와 상관이 거의 없다. 지수가 양의 값일 때나 음의 값일 때나 큰 차이가 없다. 서울대 연구팀이 2009년 겨울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블로킹 유형의 한파가 12월26일부터 23일 동안 지속됐는데, 북극진동지수가 -4.7의 강한 음의 값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한파가 닥쳤을 때도 북극진동지수가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강한 음의 값을 나타냈다. 2010년 말~2011년 초 39일간의 혹한, 2014년 12월 한달 내내 이어진 한파 등도 모두 블로킹 한파의 사례로 꼽힌다. 허창회 교수는 “1990년대 말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에서 한파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오히려 2009년 이후 한파가 없는 해가 거의 없다. 특히 북극 소용돌이에 갇혀 있던 영하 60도 이하의 추위가 중위도까지 확장하는 경우가 발생해 강한 한파가 닥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반도의 한파는 8일 전쯤 대서양 성층권에서 시그널이 보이는 웨이브 트레인과 북극해 성층권에서 시그널이 보이는 블로킹 등 두 유형으로 나눠 발생 징후를 예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한파 예측을 위한 또다른 요소로 최근 주목을 받는 것이 ‘매든줄리언진동’(MJO)이다. 아프리카 동쪽에서 강한 대류성 구름대가 주기적으로 발달해 동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한번 생성돼 태평양까지 이동해 소멸하는 데 30~90일 걸리며 이동속도는 초속 5m 정도이다. 우리나라 여름철 기상현상인 장마, 집중호우, 태풍 등과 연동돼 있지만, 최근 한파와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허진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연구원(박사과정)은 “매든줄리언진동이 인도양 지역에 머무는 시기에 겨울철 동아시아 지역의 한파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밝혀졌다. 북극진동과 매든줄리언진동은 서로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북극진동지수가 음의 값이고 매든줄리언진동이 인도양에 머물 때 한반도에 강력한 한파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09년의 혹한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지난주의 강한 한파도 매든줄리언진동에 의해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매든줄리언진동은 인도 대륙과 동남아시아 사이에 머물고 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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