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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과학과 윤리 사이…새해 생명윤리법 개정 공론화

등록 2018-01-01 09:46수정 2018-01-01 10:19

[미래&과학]
“제도가 과학 속도 못맞춰” 지적에
지난해 의견수렴 거치며 쟁점 윤곽

유전자치료 연구대상 제한 완화
기초연구 자율·책임성 강화 초점
최대논란은 ‘연구용 배아’ 허용 범위
종교계 “연구용 배아 생성 안돼” 발끈
4월 공청회…공론기구 제도화 주목
유전자 치료제가 잇따라 등장하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같은 첨단 기법의 기초연구 성과가 이어지면서, 이에 맞추어 생명윤리법의 관련 조항들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아 연구의 허용 범위를 둘러싸고 생명윤리 논쟁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갈등과 논란을 줄일 공론화의 해법이 주목된다.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이에 맞추어 생명윤리법도 제정과 개정을 거듭해왔다. 사진은 생명윤리법의 제정과 개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생명과학계의 성과들로, 왼쪽부터 새끼를 낳은 복제양 돌리의 모습, 복제배아를 만들기 위해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장면, 그리고 유전자치료에 자주 쓰이는 면역세포의 모습.  연합뉴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이에 맞추어 생명윤리법도 제정과 개정을 거듭해왔다. 사진은 생명윤리법의 제정과 개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생명과학계의 성과들로, 왼쪽부터 새끼를 낳은 복제양 돌리의 모습, 복제배아를 만들기 위해 난자에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장면, 그리고 유전자치료에 자주 쓰이는 면역세포의 모습. 연합뉴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유전자치료가 심각한 난치병을 치료하는 데에 버팀줄이 되리라 믿습니다.” 지난달 19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이 유전자 변이로 시력을 잃는 희귀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 신약을 승인하면서 한 말이다. 새해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체세포 유전자치료의 임상시험이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코오롱생명과학의 신약 ‘인보사’가 유전자치료술을 이용한 골관절염 치료제로 시판 승인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유전자치료제 개발이 잦아지고 유전자가위와 같은 새로운 유전체공학 기법의 기초연구 결과들이 이어지지만 현행 법률이 이런 연구개발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생명윤리법 개정 논의도 빨라지고 있다. 1997년 복제양 돌리 탄생 발표 이후 오랜 사회적 논쟁을 거쳐 제정돼 2005년 1월 시행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의 개정 논의가 새해에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자치료 연구제한 풀고 연구자율 확대”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생명윤리법 개정을 요구하는 생명과학계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생명윤리법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법 개정을 논의하는 민관협의체(2기)를 출범시켜 쟁점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지난해 운영한 민관협의체 1기 때 개정 방향을 다룬 데 이어 2기 협의체에서는 구체적인 쟁점을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생명과학계와 생명윤리계 인사들이 참여한 2기 민관협의체에선 잔여 배아의 연구 범위와 유전자치료 연구의 대상 질병 제한을 어떻게 개선할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치료술의 개발을 위한 연구용 배아 생성과 비동결 난자의 사용을 허용할지 등의 문제를 다룬다.

과기정통부는 이와 별도로 생명과학 분야 5개 학회를 대상으로 법 개정 요구를 수렴해 지난달 7일 토론회에서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개정 요구는 첫째 유전자치료 연구의 대상 질환을 지정해 제한하는 현행 방식(포지티브 방식)을 고쳐 ‘예외적 금지’만을 두며(네거티브 방식), 둘째 임상연구와 달리 기초연구에서 연구 규제를 대폭 풀고, 셋째 중앙집권식 통제를 개선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관윤리위원회(IRB)의 자율성을 확대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동안의 논의를 보면, 이 가운데 체세포 유전자치료의 연구 대상 질환을 제한하는 현행 조항을 고치자는 데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유전자치료 시행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철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유전자치료 시행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상시적으로 추적 관리할 ‘신중한 경계’ 체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경춘 과기정통부 생명기술과장도 토론회에서 “기초연구의 자율성은 확대하면서 사후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규제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생명윤리법 제정·개정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연구용 배아 어디까지’ 윤리논쟁 커질듯

기초연구의 자율성을 확대하되 이에 걸맞은 책임성과 전문성은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 생명윤리와 관련되는 연구를 시작할 때 연구자는 자신이 속한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기관윤리위원회(IRB)에서 심의를 받는데, 기관윤리위원회들이 내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전문적인 심사를 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박소라 인하대 의대 교수(생리학)는 “과학자사회가 스스로 모니터링하고 교육·훈련하고 연구를 개방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며 “생명윤리 쟁점이 큰 연구를 다룰 국가 통합 윤리위원회를 운영할 필요도 있고 윤리위원회 논의 내용을 외부에 개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관윤리위원회를 지역별로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가장 큰 쟁점은 ‘연구용 배아’다. 현행법에선 배아 연구 범위를 난임 치료나 희귀난치병 치료 등으로 제한하며, 일정한 보존기간이 지난 동결 잔여 배아만을 연구용으로 쓰도록 하는데, 최근 연구 추세에 맞추어 이런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과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생명과학계의 의견 자료에는, 기초연구를 위해 정자·난자도 연구 대상에 포함하고 자발적으로 기증받은 비동결 배아와 실험실에서 생성한 배아도 연구용으로 쓸 수 있게 허용해달라는 요구도 포함돼 있다.

유승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의학기술의 임상 적용을 위해 연구용 배아 생성과 연구를 (연구개발의) 주요국 수준으로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만 고의적으로 배아를 연구 이외의 목적으로 부정하게 사용하는 경우에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강한 페널티 조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배아 대상의 유전자치료 연구에 회의적인 반론도 있다. 전방욱 강릉원주대 교수(생물학,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는 “유전질환이 유전자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특정 유전자가 하나의 질환에만 관여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배아에 유전자치료를 직접 시행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며 “체세포 유전자치료의 제한은 풀어야 하겠지만 안전성과 윤리 쟁점을 모두 지니는 배아의 유전자 실험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갈등 줄이는 쟁점 공론화 과정 주목

특히 배아 연구의 쟁점은 종교계의 생명관과 맞물릴 때 생명윤리 논란으로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정재우 가톨릭대학교 교수(생명대학원장)는 “연구용 배아를 생성한다는 것은 보호와 양육을 필요로 하는 약한 처지의 인간존재를 연구 도구로 쓰기 위해 만든다는 뜻이며 이는 용인될 수 없다”며 “이런 쟁점은 공론화와 다수결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민감한 윤리 쟁점을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론화를 통해 다뤄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현철 교수는 “연구용 배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와 같은 문제는 갈등이 큰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며 “시민참여형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생명윤리 쟁점을 그때그때 다룰 공론화 기구를 제도화하자는 방안도 제시된다. 복지부가 1기 민관협의체 활동을 마무리하며 지난해 11월 연 공청회에선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 공론화 기능을 부여하자는 안이 중요하게 논의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동의하기 쉬운 부분부터 법 개정으로 처리하고 복잡한 쟁점은 논의를 지속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며 “공론화는 필요하지만 어떻게 공론화할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2기 민관협의체 활동을 정리하는 공청회를 4월께 열고, 이어 공론장의 제도화를 다룰 분과를 6월께 구성할 계획이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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