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 세계 161번째 가동정지
해체승인·제염·복원에 15년 넘을듯
폐연료봉 빼내야 철거 작업 시작
고리원전 2024년 포화 외부반출해야
2035년 핵폐기물처분장 가동 불확실
영구처분장 주민투표 뒤 부지선정
“경주처럼 뒤바뀐 절차” 비판받아
해체승인·제염·복원에 15년 넘을듯
폐연료봉 빼내야 철거 작업 시작
고리원전 2024년 포화 외부반출해야
2035년 핵폐기물처분장 가동 불확실
영구처분장 주민투표 뒤 부지선정
“경주처럼 뒤바뀐 절차” 비판받아
40년 동안 가동해온 고리원전 1호기가 18일 자정을 기해 멈춘다. 세계에서 가동정지에 들어가는 161번째 원전이다. 세계 원자력계는 2000년대 중반 재처리와 고속로 등 제4세대 원전으로 원자력 르네상스를 열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술의 한계와 후쿠시마원전사고로 인해 세계 원전 건설은 급감하고 있다. 그동안 지어진 611개 원전 가운데 2030년대까지 수명이 만료돼 해체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원전은 499기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원전 8기가 수명을 다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고리1호기는 ‘원전 해체의 시대’ 돌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고리1호기 해체에는 15년 남짓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고리1호기에서 반출한 사용후핵연료(핵쓰레기)를 저장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핵폐기장) 확보가 관건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핵폐기장 부지를 선정하고 2035년부터 중간저장시설을 가동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부지 선정 절차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있어 원전 해체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가동정지 첫단추는 47시간 전에 시작
고리1호기는 19일 0시에 공식적으로 영구정지된다. 하지만 원전은 전등 끄듯이 스위치를 내린다고 바로 멈추는 건 아니다. 가동정지를 위한 첫번째 조처는 47시간 전인 17일 새벽 1시에 이뤄졌다. 발전소장의 명령을 받은 발전팀장이 감발을 시작했다. 발전기는 출력이 서서히 낮춰져 오후 6시께 완전히 정지됐다. 1시간 쯤 뒤에 원자로 안 핵연료봉의 핵분열을 멈추기 위한 제어봉이 순차적으로 삽입되기 시작했다. 300도까지 올라가 있던 원자로의 냉각재가 식기 시작해 93도 안팎의 상온상태가 되는 시간이 19일 0시쯤 된다. 원전이 공식적으로 멈추는 시각은 이 시점이다.
원전 해체는 영구정지와 동시에 시작해 해체 승인, 사용후핵연료 반출, 방사성계통·구조물 철거, 부지 복원 등의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하지만 엄밀하게는 고리1호기 원전 해체는 2년 전에 시작됐다.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15년 6월 영구정지 시점 2년 전에 제출하게 돼 있는 수명연장(계속운전) 신청을 하지 않아 사실상 고리1호기 영구정지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원자로 정지에 따른 원전 운영변경 허가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제출해 지난 9일 승인을 받았다.
실제적인 원전 해체의 첫 관문은 해체 승인이다. 운영자는 해체계획서를 작성해 주민의견을 수렴한 뒤 원안위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수원은 이 지점까지는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9일 원전이 정지되면 3주에 걸쳐 격납건물 안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꺼내 임시저장 수조에 보관한다. 기존에 있던 연료봉과 함께 최소한 5년의 냉각기간이 지난 뒤 이들 폐연료봉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이후에 본격적인 제염(방사성물질 오염 제거) 작업과 철거가 이뤄진다.
“바보야, 문제는 핵폐기장이야”
문제는 폐연료봉 반출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모두 4개 원전이 있는 고리원전본부에는 모두 5903다발의 폐연료봉을 보관중인데 포화율이 73.3%에 이른다. 고리 2~4호기의 설계수명 시점은 2023~2025년에 순차적으로 도래한다. 현재 상태라면 고리4호기 수명이 다하기도 전인 2024년 보관용량 8904다발이 모두 차버린다. 만약 고리1호기 해체를 위해 폐연료봉을 2~4호기 임시저장 시설로 옮기면 2~4호기를 더 일찍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인접한 신고리 1~4호기는 행정구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올해 1월부터 새울원전본부로 ‘딴살림’을 차려 폐연료봉을 그곳으로 옮길 수도 없다. 그곳 저장소도 넉넉지 않다. 가령 수명이 60년인 신고리 4호기의 임시저장 수조에는 20년치 폐연료봉만 저장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은 2028년에야 부지가 선정되고 2035년 중간저장시설 운영에 들어간다. 그때까지 원전본부별로 건식저장 시설을 건설해 보관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중이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원활하게 추진될지도 불확실하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경우에도 사용후핵연료공론화를 거쳤음에도 외국의 추진 절차와 달리 정밀 부지조사 전 주민의사를 확인하도록 해 시민·환경단체들은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 등 영구처분장 건설 단계에 들어간 국가들은 정밀한 부지조사를 통해 안전한 터를 확보한 뒤 시간을 충분히 두고 주민을 설득하는 방식을 거쳤다. 환경단체들은 정밀 부지조사 전에 주민의사부터 묻는 현행 일정은 부지 선정 뒤에도 끊임없는 논란을 부르고 있는 경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 원전 해체시장 블루오션” 글쎄요?
폐연료봉을 빼낸 뒤에 이뤄지는 제염은 원자로 격납시설 안의 원자로압력용기 등 원전 시설에 묻어 있는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걸레로 닦아내듯 하는 기계적인 세정·세척과 세제 빨래와 같은 화학적·전기화학적 공정 등이 필요하다. 제염이 끝나면 절단이나 철거 작업을 하고 폐기물을 용기에 포장해 보관한다. 방사능이 높은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하기에 원격 해체기술도 필요하다. 한수원은 원전을 해체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70~80가지로, 대부분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상용화 기술이지만 17개 기술은 새로 개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은 “2021년까지는 100% 기술을 확보해 공학적 검증까지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를 체계화해 산업체에 이관하고 고리1호기 해체에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최영기 한수원 원전사후관리처 해체사업팀장은 “그동안 세계 원전사업계에서 원전 해체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기존 산업 기술로도 원전을 해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게 관련 분야의 평가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가동정지된 원전 160기 가운데 해체가 끝난 원전은 19기다. 11기는 원형로이고 상업용 원전은 8기뿐이다. 현재 가동중인 원전은 449기로, 1960~1980년대에 건설한 원전들의 수명이 만료되는 2020년대 이후 해체에 들어가는 원전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원전 해체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늘어 2040년대까지 250여조원, 2050년 이후 180여조원 등 440여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각에서 원전 해체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는 이유다. 하지만 착시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에 해체할 원전이 꾸준하게 나오지 않고 이따금 단속적으로 나오는 데다 해체 실행까지 10~15년이라는 장시간이 필요하고 각국내 정세와 수명연장 정책이 유동적이어서 안정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리/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19일 0시를 기해 영구정지에 들어가는 고리원전 1호기.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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