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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도덕이 우선일까? 공정이 우선일까?

등록 2017-05-19 20:12수정 2017-06-05 11:10

[토요판] 최정규의 우울하지 않은 과학
(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대학입학 자격이나 수강신청 자격을 돈으로 사고파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을 우회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럴 경우 교육의 본래 의미가 변질될 것이라 믿기 때문일까?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사진은 프랑스 대학의 한 강의실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대학입학 자격이나 수강신청 자격을 돈으로 사고파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을 우회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럴 경우 교육의 본래 의미가 변질될 것이라 믿기 때문일까?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사진은 프랑스 대학의 한 강의실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새 학기 첫날, 학교는 분주하다. 방학 동안 비어 있던 교정은 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강의실을 찾아 이리저리 발길을 옮기는 학생들로 분주하다. 이번에야말로 잘 시작해 보겠다고 다짐하건만 첫출발부터 삐걱거리는 건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수업의 수강신청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수업에는 언제나 수강신청을 성공해 출석부에 이름을 올린 학생들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다. 이들은 수강신청에 실패한 후 담당 교수에게 개별적으로 수강을 허락받으려 하는 학생들인데, 이들은 ‘개별증원신청서’라는 용지를 하나씩 들고 있다. 수를 세보니 족히 30명가량 된다.

“강의실이 좁아 30명을 추가로 다 받기 어려운 것도 있고, 또 30명이 늘어나면 제가 강의하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이미 수강신청에 성공한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힘들게 되고요. 그래서 딱한 사정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이 30명 중에서 10명만 개별증원을 허락하려고 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문제는 지금 30명 중에서 10명을 어떻게 추려낼지 그 방법을 찾는 겁니다. 어떻게 10명을 선정할까요? 좋은 의견 없나요?” 물론 (늘 그렇듯이) 대답이 없다. 침묵을 깨면서 한 학생이 답을 한다.

“가위바위보로 하시죠.” 운에 맡기자는 얘기다.

“가위바위보가 좋은 방법인 이유는 뭐지요?” “공평하니까요.” 요즘 학생들에게 공정하다는 것은 언제나 제일 중요한 기준인 듯하다. “가위바위보가 공정할지 몰라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수업을 듣도록 한다는 제1원칙에는 미흡한 것 같군요. 저는 이 수업을 가장 듣고 싶어하고, 가장 필요로 하는 10명을 찾아내고 싶은데요.”

“30명을 면담하시고 판단하시면 어떨까요?” “헉, 언제 30명을 다 면담하지요? 그러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렇게 쓰는 시간도 제게는 엄청난 비용입니다. 더군다나 30명을 모두 면담했다고 합시다. 그러고 나면 누가 이 강의를 가장 필요로 하는지를 알게 될까요? 저마다 다 절박한 이유가 있을 거고, 우리는 그 이유들 중에서 어떤 게 더 절박한지를 판단할 기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그 절박한 이유라는 것이 진짜인지를 가려낼 방법도 없어요.”

“고학년을 우선적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고학년에게 더 필요한지를 확인할 길이 없지 않나요?” “경제학과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시죠.” “그러니까 그냥 가위바위보 해요, 교수님.” “30명 다 받아주시면 안 되나요?” 이쯤 들었을 때 내가 나서서 한마디를 보탠다. “경매에 부치면 어떨까요?”

“강의를 돈으로 사고팔아도 되는 겁니까?”

강의를 더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 테고, 따라서 가장 높은 액수의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그만큼 돈을 받고 개별증원을 허락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사람 순으로 10명을 추리면 그 10명이 바로 가장 절실하게 강의를 원하는 사람일 테니까. 더 나아가, 사람들이 부르는 가격은 정확히 자신이 이 강의에 부여하는 가치만큼일 것이다. 5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강의에 5만원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할 이유가 없고(그러다가 10명 안에 들게 되면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보다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게 돼 결과적으로는 손해를 입게 될 테니까), 5만원보다 더 낮은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할 이유도 없으니(그러다가 강의를 못 듣게 될 수도 있으니까), 누구나 정확히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만큼 지불하겠다고 밝힐 것이다. 거짓말로 자신의 선호를 뻥튀기해서 드러낼 가능성도 없다는 얘기다.

“경매라는 방법을 통하면 이 강의를 가장 원하는 열 사람이 이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혹시 다른 생각 있나요?”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빛. 누군가가 묻는다.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이 강의를 절실히 원하는데도 돈이 없어서 높은 금액을 지불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면 이 방법이 제대로 원했던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 경매에 참여할 만큼의 충분한 소득이 주어져야 할 것 같아요.” “그 얘기는 시장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되나요?” “이미 수강신청에 성공한 사람들도 경매에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들은 경매가 아니라 선착순으로 수강신청에 성공한 사람들일 뿐인데요?” 여러가지 얘기가 나오는 순간 갑자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화가 난 듯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교수님, 강의를 돈으로 사고팔아도 되는 겁니까?”

이 질문은 돈으로 강의를 사고팔아도 되는지, 돈으로 강의를 사도록 하면 정말 가장 필요한 사람이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는지, 혹은 그러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과연 어디까지 이러한 방법이 사용될 수 있는지(혹은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만일 시장이 희소한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라면, 모든 희소한 자원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예를 들어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들 중 누가 장기이식을 가장 필요로 하는가를 결정할 때에도? 혹은 나를 상대방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그가(혹은 그녀가) 나를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 금액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돈으로 살 수 있으나 그래선 안되는 것
대학입학 ‘거래’에 거부감 느낀다면
공정성 훼손 우려 때문일까
교육의 가치 변질된다 믿어서일까

손상되는 건 거래에 ‘부여’하는 가치
도덕적 가치 아닌 공정성 훼손이 중요
시장 자체가 문화와 삶의 방식에 영향
시장이 작동하는 조건을 평등화해야

만일 시장이 희소한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나를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 금액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도 가능한가? 사진은 티브이엔(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만일 시장이 희소한 자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나를 위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고 금액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도 가능한가? 사진은 티브이엔(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공정성 캠프’ 대 ‘도덕적 가치 캠프’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can’t buy) 것들과,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can buy but shouldn’t) 것들을 구분한다. 샌델에 따르면 전자의 전형적인 예는 우정과 같은 것이고, 후자의 전형적인 예는 신장 등 장기 같은 것들이다. 말하자면 우정은 도저히 돈으로 살 수 없고, 신장과 같은 장기는 돈으로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그래서 금지된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극단 사이에는 어디 속하는지가 다소 애매한 문제들, 예컨대 돈으로 대학에 들어간다거나 축사를 대신 써주는 서비스 등이 존재한다.

사실 우정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은 돈으로 살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에 모아진다. 왜 우리는 어떤 특정한 재화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에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가질까? 샌델에 따르면 그러한 거부감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하나는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공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돈으로 사고팔면서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가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전자를 공정성에 기초한 거부, 후자를 가치 훼손을 우려한 거부라고 부를 수 있겠다. 대학입학권(앞서 예로 든 수강신청도 마찬가지일 텐데)을 돈으로 사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가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을 우회하여 대학을 갈 수 있게 되는 건 불공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공정성 캠프에 있는 사람이다. 혹은 그렇게 거부감이 드는 이유가 돈으로 대학입학권을 사게 되면 교육의 본래 의미가 변질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면 당신은 도덕적 가치 캠프에 있는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샌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후자이다.

대학입학을 가지고 좀더 이야기해 보자. 대학교육이란 좀더 나은 직장을 갖도록 준비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고 학문적 과학적 탁월성을 증진시켜 나가는 과정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건전한 시민성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러한 권리가 돈으로 사고팔린다면 그 본래의 목적 자체가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샌델은 중요한 지적을 하나 한다. 재화나 서비스의 속성은 고정되고 불변이어서 어떤 방식으로 이전되든 그 본질은 그대로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거래하는가에 따라 그 본질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샌델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디까지 시장이 지배하도록 놓아둘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매우 중요한 경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두 가지 논점이 있다. 첫째, 우정과 사랑처럼 그 자체로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면, 공정성 훼손에 대한 우려보다는 도덕적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과연 더 중요한 것인지, 도덕적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우리를 때로는 뜻하지 않게 옥죄는 결과를 낳지는 않는지의 문제 말이다. 의료를 시장에 맡길 때 인간의 생명이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절박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설령 장기이식의 순서를 시장이 정한다고 해서 그 장기 자체가 손상되는 건 아닐 게다. 손상되는 건 거래되는 재화나 서비스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거래 행위에 부여하는 가치다. 그렇다면 신장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식되는 신장의 기능이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돈을 매개로 전달되든 아니면 고귀한 희생을 통해 전달되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볼 여지는 없는가? 의료가, 주택이, 그리고 교육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어울리는지 아닌지의 여부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배분되고 있더라도 거기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동등해지도록 만들어주는 것, 즉 공정한 방식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평등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당장 고민해야 할 바가 아닐까?

시장의 확대는 도덕성의 진보도 가져와

둘째, 시장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우려는 시장의 확대 속에서 진행된 도덕성의 진보를 무시하게 만든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시장은 나름대로 근대사회에 걸맞은 시민적 덕성을 키워왔다. 시장에 기초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공정성과 신뢰 혹은 자유와 평등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가 많이 있다. 공동체적 가치와 시장이 배양해내는 가치가 서로 어긋날 때가 있을지 몰라도, 어느 하나가 도덕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은 어떤 조건이 갖춰질 때 도덕적일 수 있고 혹은 비도덕적이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로서 시장이 작동하는 배후에 존재하는 부와 소득과 권력의 불평등의 문제에 주목하는 게 더 시급한 과제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은 단지 재화나 서비스를 배분하는 수단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시장 자체가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시장이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라는 샌델의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중요한 이야기를 던진다. 하지만 시장에서 거래되면 도덕적 가치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특정 재화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그 재화를 전달해줄 수 있는 가능성 하나를 제거해 버리는 문제는 없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시장이냐 아니냐의 질문은 과연 시장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고 누구나 동등한 자격으로 배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부언하자면, 이 글 맨 앞토막에서 얘기한 첫 수업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마쳤다. “오늘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추가로 증원신청을 하신 학생들을 모두 (돈 한 푼 받지 않고!) 증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최정규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이타적 인간의 출현>, <게임이론과 진화 다이내믹스> 등의 책을 냈다. 이타성과 상호성의 진화를 연구해왔고, 사람들의 행동 동기를 찾아내고 제도의 영향을 살펴보기 위한 행동실험도 진행하고 있다.이 연재물의 열쇳말은 행동, 제도 그리고 진화이다. 이 열쇳말을 가지고 경제학과 인문학 그리고 자연과학에서 오버랩되는 주제를 찾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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