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한다. 뇌는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억도 오래 한다. 2015년 11월18일 서울 금천구 독산3동 ‘청개구리 작은도서관’에 모인 ‘꾸러기 어린이집’ 원아들이 동화 구연을 지켜보던 중 손동작으로 율동을 따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즐기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들려주며 희열을 느낀다. 이야기에 웃고, 울고, 공감하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남을 판단하며 삶의 지혜를 얻는다. 가장 오래된 예술장르 중 하나가 왜 소설이나 연극이겠는가?
이야기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드물다. 언젠가 사석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의 김영하 작가가 이것을 ‘설동설’로 표현하는 걸 들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지동설),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야기 형식으로 쓰인 성경이라는 책 하나만으로 인류는 이집트를 탈출하기도 했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사랑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기도 했다.
더 재미있는 후일담 하나. 입담꾼이기도 한 김영하 작가와의 그날 대화가 어찌나 유쾌했던지 그즈음에 진중권 선생과 함께 <한겨레21>에 연재하던 <크로스>를 쓰면서 ‘인간이 왜 이야기에 민감한가’라는 칼럼을 통해 ‘설동설’을 언급했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설동설’이란 단어가 내 뇌에 각인됐고, 칼럼을 쓰면서 문득 떠올라 자연스레 언급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김영하, 설동설’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내 글 외에도 20여개의 신문 기사와 칼럼이 설동설을 언급하고 있었다. 어떤 신문 기사에서는 마치 권위있는 학자의 학설처럼 설동설을 인용하고 있었다. 크로스의 독자들도 ‘설동설’에 얽힌 이야기가 나만큼이나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의 뇌를 들여다보시라. ‘영혼공작소’에서 어려운 기술용어를 설명하고 과학 실험을 언급할 때에는 머리가 느리게 돌면서 신경이 곤두서지만, 오늘 칼럼의 앞부분을 읽을 때에는 한결 가볍지 않은가! 김영하 작가와의 에피소드는 쉽게 읽히지 않는가! 이 순간 여러분은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쉽게 즐기는 자신의 뇌를 발견하게 된다. 두말할 것 없이, 이야기의 힘이다.
언어는 허풍의 산물
우리는 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짓는가? 이 질문에 진화심리학자들은 그것이 성선택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들의 가설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는 원래 거짓말을 하기 위해 발달했다는 것이다. 즉 실제 사실보다 부풀리거나 왜곡해서 자신을 좀 더 근사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무용담 만들기’ 허풍 효과가 언어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시라. 우리는 왜 언어를 만들어 소통하는 걸까? 다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언어를 통한 소통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건 독버섯이다!’ ‘저기 호랑이가 와요!’라는 사실을 서로 소통하면,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맞다.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 언어는 듣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행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상대방에게 말해주는 걸까? 말하는 사람에겐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설명하기 더욱 힘든 현상은 지난 수십만년 동안 인간의 듣는 능력, 청각기관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으며, 말하는 능력, 즉 구강 구조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현저히 발달해 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청각 기관은 개만도 못하다.
이를 설명해주는 진화심리학적 주장은 언어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건 ‘우리가 언어를 통해 진실만을 소통한다’는 가정 아래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내게 유리하게 상황을 몰아가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내가 겪은 사건을 좀 더 근사하게, 내가 했던 경험을 좀 더 멋있게 포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본 걸 실제보다 내게 좀 더 유리하게 편집해 남들에게 설명한다. 실제 나보다 좀 더 근사한 나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덕분에 우리는 실제 나보다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가 훌륭한 언어사용자라면 말이다.
우리는 내 지식이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면서 조금이나마 매력적인 인간으로 드러내듯,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한다. 그 속에 과장이나 허풍은 없는지, 거짓말은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야기는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이야기 만들어야 뛰어난 리더
이야기는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뇌는 그렇게 생겨먹었다. ‘인간의 내적 동기는 대부분 스스로에게 들려줄, 동기의 틀을 결정하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심리학자들은 믿는다. 그런 이야기가 없다면, 인생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사건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사건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교훈을 얻고, 감정을 공유하며, 삶의 변화를 만든다. 뛰어난 리더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만들거나 가진 사람’이다.
인지심리학자인 로저 섕크와 로버트 에이블슨은 이야기가 지식 축적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뇌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엔 이름이나 얼굴을 저장하는 영역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이야기를 저장하는 영역’(episodic-memory region)이 측두엽에 존재한다. 이곳은 운동을 기억하는 영역(자전거를 타는 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과도 뚜렷이 구별된다.
물론 이 중에서 기억 지속 시간이 가장 긴 것은 ‘운동기억’이지만, 이야기는 이름이나 단어 같은 ‘맥락 없는 기억’들보다 훨씬 오래간다. 그래서 우리가 두 단어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야기가 덧붙여지면 기억은 쉽게 인출되며 더 오래 저장된다.
게다가 ‘이야기 기억’은 용량도 엄청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쉽게 잊히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뇌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이야기는 사람 사이의 관계, 혹은 제품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 2006년 오틀리의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더 많이 읽는 대학생일수록 사회적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은 공유하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1997년 영국 옥스퍼드대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가 했던 실험에 따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공장소에서 말하는 시간의 65%는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에 할애된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는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는 함께 나눈 일련의 기억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과 결혼의 가치를 확인한다. 스턴버그 박사는 결혼의 성공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이 어떻게 공동의 ‘이야기’라는 형태로 반복되면서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주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문학비평가 로널드 토비아스는 인간이 좋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패턴을 20개로 나누었다. 탐색, 모험, 추구, 구출, 탈출, 복수, 수수께끼, 경쟁, 약자, 유혹, 변질, 변형, 성숙, 사랑, 금지된 사랑, 희생, 발견, 비참한 과잉, 상승, 하강.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최소한 오래 살아남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20개의 근본 플롯패턴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마케터들은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매력을 더한다. 만약 제품 속 이야기가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면 비로소 그 제품은 주목받기 시작한다. 마케터들은 로널드 토비아스의 이야기 패턴을 자신들의 제품에 담기 위해 애쓴다.
뛰어난 이야기는 작품의 주인공과 정서적으로 일체감을 일으키면서, 제품에 대한 각별한 선호를 유발한다. 이러한 상태를 ‘이야기 도취’(narrative transport) 현상이라고 부른다. 200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자 멜러니 그린은 <담화 과정>(Discourse Processes)라는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독자가 이야기에 매료되는 것은 현실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것을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현실세계에 대한 함의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강한 파급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진화 과정의 소득
예를 들어, 제품을 널리 알리는 ‘입소문’이라는 현상을 생각해 보라.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강한 파급력을 갖는 이유는 이야기가 마치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우 이상한 현상 아닌가? 왜 사람들은 특정 제품을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나 있는가? 그래서 당신에게 얻어지는 효용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정말 내가 그 제품에 대한 정보를 알게 해서 내가 그 제품의 유익함을 놓칠까봐 걱정하는 것일까?
스토리텔링은 학생들의 수업에도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10월에 열린 서울 강남구 숙명여중 1학년 1반의 ‘미술작품 감상을 통한 북 스토리텔링 하기’ 수업의 모습. 한 학생이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각각 긍정적 느낌과 부정적 느낌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전혀 아니다. 입소문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걸 말하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너 아직 그 뮤지컬 안 봤니? 꼭 봐! 너무 감동적이더라”라는 뜻은 네가 그 뮤지컬을 못 볼까봐 걱정되니 놓치지 말고 보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뮤지컬을 볼 만큼 문화적으로 교양있고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삶의 질이 높다는 걸 은근히 과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하버드대 심리학과 스티븐 핑커 교수에 따르면, 오랜 옛날부터 사회에서 이야기는 정보를 습득하고 대인 관계를 맺는 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돼 왔기 때문에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성향’이 존속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이야기로 세상을 배운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게다가 사회적 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점점 알기가 어려워졌다. 구성원에 관한 정보를 확산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이야기다. “걔 어때? 요즘 걔 뭐 하니?”
우리가 이야기로 인간과 세상과 나를 배운다는 것은, 이야기가 없는 인간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야기가 없는 제품에는 매력을 못 느낀다는 뜻이다. 뇌는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모든 것을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싶어 하고, 그 안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발견한다. 설동설을 넘어, 이 우주는 거대한 이야기 덩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