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맨>은 영국 비밀 첩보부대로 이름 붙은 ‘킹스맨’ 대원의 활약을 그렸다. 영화 속의 악당인 밸런타인은 인간들끼리 증오하고 서로 죽이도록 하는 휴대폰 유심칩을 만들어, 인류를 없앨 계획을 세웠다. 사진 속 인물은 킹스맨의 주인공 중 한명인 최정예 첩보요원 해리.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신이 나를 ‘슈퍼 히어로’로 만들어준다며 원하는 초능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한 가지, 사람의 마음을 내 맘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하겠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세상을 얻는 것이니.
타인의 마음을 조정하려는 욕망은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때론 선물로 환심을 사거나 달콤한 말로 아부를 하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술을 먹여 무방비 상태를 만들기도 하고, 최면술 같은 방법을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조종하려면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뇌를 컨트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시 말해, 뇌가 어떻게 선택하는가를 이해하는 건 곧 타인의 마음을 조종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뇌를 내가 원하는 대로 컨트롤하면 되니까.
화난 소를 멈추게 한 전기장치
유튜브에 들어가 예일대학교 호세 델가도의 투우 실험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오래전에 찍은 동영상 하나가 올라온다. 스페인 코르도바에 있는 한 투우장에서 진행된 이 실험 영상은 1965년에 진행한 실험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담고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투우장에는 매우 난폭하고 극도의 공격성을 보이는 소가 있다. 투우사들이 붉은 천을 흔들며 그들을 흥분시키는 투우 경기가 곧 벌어질 상황이다. 그런데 잠시 후 전혀 투우사 같지 않아 보이는 한 신사가 투우장에 조용히 들어선다.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 하나가 들려 있다. 그는 사나운 소 앞에 서서 소를 조금씩 흥분시킨다.
그런데, 앞발로 땅을 거칠게 비비면서 날카로운 뿔을 앞세워 신사를 향해 돌진하려던 소가 이내 돌진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된다. 다시 돌진을 하려다가 멈추는 동작을 소는 몇 번이나 반복한다. 소가 신사를 향해 돌진하려 할 때마다 신사는 상자 안의 작은 단추를 눌렀고, 그럴 때마다 소는 신사에게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 돌진을 멈춰서는 것이었다.
이 놀라운 실험의 주인공인 호세 델가도 교수는 동물의 뇌에 전극을 삽입하고 전류를 가해 행동을 조종하는 연구의 대가다. 1960년대부터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삽입해 그들의 공격 행동을 조종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번에는 황소에게까지 같은 기술을 적용해본 것이다.
델가도 교수는 이번 투우장 실험에서 공격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선조체에 전극을 삽입해 전류를 가하는 방식으로 소의 난폭성을 극적으로 줄였다. 이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투우장에 들어가 사나운 소 앞에 서서 전극 실험을 시연해 보인 것이다.
그는 대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식으로 원숭이들의 위계질서를 인위적으로 교란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무리에서 서열 1위인 수놈의 미상핵에 전극을 삽입해서 적절한 충격을 가했더니 공격적인 성향이 많이 준 것이다. 공격 성향은 원래 시상하부가 담당하는데 움직임을 관장하는 미상핵이 시상하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상핵을 자극하니 공격 성향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그 후로 서열 2위였던 원숭이가 반란을 일으켜 우두머리가 되었고 서열 1위였던 원숭이는 아래 서열로 밀려났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우두머리였던 원숭이의 뇌에 다시 전기 자극을 가해 공격성을 회복하게 했더니, 다시 예전처럼 난폭해지면서 새 우두머리를 몰아내는 형국을 관찰할 수 있었다. 델가도 교수는 대뇌에 전기 자극을 이용해 동물의 마음을 조종한 최초의 과학자로 기록될 것이다. 뇌공학 기술을 통해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줄에 연결해 마음대로 조종하는 ‘인형극 연출가’처럼 말이다.
과학계 내에서 델가도 연구에 대한 평가는 논쟁적이다. 델가도의 연구는 ‘동물의 뇌에서 공격 성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컨트롤해보는 것보다 더 강력한 증거는 없으니까 말이다. 섬세하게 조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공격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예일대학교의 호세 델가도 교수는 1965년 스페인 코르도바의 한 투우장에서 소를 상대로 한 실험을 진행했다. 투우 소의 머릿속에 전기 장치를 넣은 뒤 소를 화가 나게 만들었다. 소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순간에 손에 들고 있던 버튼을 조작하자, 소는 공격을 멈췄다. 예일대 도서관 자료
미 CIA의 마음조종 프로젝트
그러나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가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이 기술을 사용한다면, 마음조종 기술만큼 위험한 기술도 없을 것이다.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설정처럼 만약 핸드폰에서 나오는 전파가 인간 뇌를 자극해 우리의 의사결정을 조종할 수 있다면 세상은 무시무시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델가도 교수는 왜 위험천만의 마음조종 기술을 연구하는 것일까? 델가도 교수가 마음조종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정신질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마음 조종하기: 정신적으로 문명화된 세상을 향하여>(1969)에서 마음조종 기술이 자기 통제가 안 되거나 망상이나 환상, 강박 등으로 고통받는 정신질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뇌의 작동 기제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조종이 정신질환자들에게 자행되는 무분별한 수술, 뇌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부작용을 낳는 약물치료 등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델가도 교수가 지목한 위험 사례의 대표적인 예가 ‘전두엽 절제술’이다. 안토니우 모니스가 개발한 전두엽 절제술은 얼음 송곳을 눈에 찔러 휘젓는 방식으로 전두엽을 파괴하는 수술법인데 난폭한 정신질환자들을 온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날뛰던 환자들이 한순간 얌전해지니 가족들은 기뻐했고,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법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년 동안 미국에서만 무려 4만명이 이 수술을 받았으며, 안토니우 모니스에게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하게 하는 등 전두엽 절제술은 대표적인 정신질환 치료법으로 자리잡게 됐다. 하지만 이 치료법은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데다, 성공한다고 해도 후유증이 매우 심각했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생각해보시라. 고등한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을 칼로 들쑤시고 뭉개놓았으니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리가 있었겠는가! 켄 키지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묘사됐듯이 정신질환자들을 감정과 고통에 무감각해진 좀비로 변해가게 됐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했고, 세상에 반응하지 않는, 인격체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자신의 저서 <마음의 미래>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자행했던 마인드컨트롤 실험을 소개한 바 있다. 미국과 소련 간의 무시무시한 냉전 분위기가 한창이던 무렵 시아이에이의 사령부는 어느 날 소련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다. 1950년에 들어서면서 소련이 비밀리에 약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 약은 미군 포로들의 뇌를 리셋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두뇌 세척’ 프로젝트가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첩보였다.
이에 뒤질세라, 시아이에이도 1953년부터 ‘엠케이 울트라’(MK-ULTRA)라는 특급 프로젝트를 가동하게 된다. 인간의 정신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외부 자극을 통해 뇌 기능을 조종하는 프로젝트였다. ‘마음조종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엠케이 울트라’는 1953년부터 1973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비밀리에 진행됐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관들이 무려 80개가 넘는다고 한다. 44개 대학교 연구실을 비롯해 병원, 제약회사, 교도소 등 다양한 연구기관에서 뇌 기능 조종 실험을 자행했고, 시아이에이는 이에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수술도 150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이크로파 세뇌 실험은 실패
그들이 마인드컨트롤을 하기 위해 썼던 방법은 다양했다. 예를 들면, 교도소 수감자로 하여금 진실을 털어놓게 만드는 주사약 개발, 죄수를 대상으로 한 심문 방법 개발, 미 해군 주도로 이루어진 ‘기억 지우기’ 기술 개발, 최면이라는 자기 암시 방법을 이용한 인간 행동제어기술 개발 등이었다. 특히 사람을 빠르게 기절시키면서 흔적은 남기지 않는 약물을 개발한다거나 사람을 순종적으로 만드는 약물 개발 등에도 연구비를 지원했다고 하니 경악할 만한 현실이다. 무슨 과학소설에나 나오는 연구가 실제로 자행된 것이다.
미치오 카쿠 박사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매우 황당한 접근도 마인드컨트롤을 위해 시도됐다고 한다. 한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소련은 마이크로 복사파를 사람의 뇌에 직접 투사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마이크로 복사파를 뇌에 쬐어준다고 해도, 우리 뇌는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없기 때문에 아마도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행위를 비난하기는커녕 군인이나 첩자의 마음을 조종하거나 혼란스럽게 하여 분열시키는 신기술이라고 평가했고, 미국도 유사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보고서에 기술돼 있다고 한다.
미국이 각별히 원했던 기술은 적군의 마음속에 우리가 원하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기술이었다. 저출력 마이크로파 펄스를 적군의 머리에 쏘아주면 가능할 수 있으며, 펄스의 강도를 적절히 조종하면 이해 가능한 문장을 주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특정 인물에게 마이크로 펄스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송출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전혀 그럴듯하지 않다. 인간의 뇌가 마이크로 펄스를 수신할 수도 없을뿐더러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뇌가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제공해주기에는 우리는 아직도 뇌를 잘 모른다. 30년 전이었다면 더더군다나 어려운 일이었을 게다. 미국 국방부는 ‘다른 사람의 의식을 조종한다’는 거대한 비밀 프로젝트에 수백만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제대로 성공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뇌공학 기술은 마음읽기 기술을 넘어 마음조종 기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컨트롤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뇌는 의사결정의 주체인가 보조기관인가? 질문은 점점 철학적으로 옮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