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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비아그라는 최고의 쾌락을 약속하지 않는다

등록 2016-11-26 13:27수정 2016-11-26 17:22

[토요판]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26> ‘성과학’과 만족도 연구
과학은 섹스를 위한 여러 약제와 기구들을 끊임없이 개발해왔다. 그중에서 미국 제약회사 파이저가 1998년에 개발한 비아그라가 가장 유명하다. 비아그라는 노년층 등 발기부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인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영화사 청어람 제공
과학은 섹스를 위한 여러 약제와 기구들을 끊임없이 개발해왔다. 그중에서 미국 제약회사 파이저가 1998년에 개발한 비아그라가 가장 유명하다. 비아그라는 노년층 등 발기부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인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영화사 청어람 제공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나누는 섹스 횟수는 평균 5명의 상대와 2580번이라고 한다. 물론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그 평균값은 다르겠지만. 전희를 포함해서 한 번 섹스할 때 걸리는 시간을 30분만 잡아도 우리가 평생 섹스로 보내는 시간은 약 1290시간, 날짜로 따지면 53.75일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두달 가까이를 섹스를 하며 보낸다.

미국의 한 웹사이트가 벌인 설문조사를 보면, 우리가 평균적으로 섹스를 나눈 상대 5명 중에서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은 겨우 2명뿐이라고 한다. 3명은 단순한 성적 이끌림으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성관계를 나누게 됐다는 얘기다. 어디까지나 서양인의 설문조사를 근거로 얻은 통계 수치이니, 너무 불편해하지는 마시라. 이 통계는 단지 인간관계에서 섹스가 얼마나 복잡한 골칫거리를 안겨줄 수 있는지 상기시켜줄 뿐이다.

‘사이클릭 GMP’ 분비 돕는 실데나필

과학기술은 그동안 황홀한 섹스를 위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세상에 무수히 제공해왔다. 인간의 성기를 닮은 기계장치를 발명해내기도 하고, 쾌락을 늘려주는 약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발기가 힘든 남성에게 발기부전 치료제를 개발해주기도 했다. 지난 20년을 돌이켜 보건데, 인간의 섹스를 위해 가장 크게 기여한 발명품은 단연 비아그라다. 원래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임상실험 과정에서 남성 발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1998년 미국의 제약회사 파이저에 의해 개발된 비아그라의 원료인 실데나필은 남성이 성적으로 흥분할 때 생성되는 ‘사이클릭 GMP’라는 화학물질의 분비를 체내에서 돕고, 발기 저해 물질인 ‘PDE 5(포스포디에스테라아제)’를 분해한다. 활력이라는 의미의 비거(vigor)와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를 합친 합성어인 비아그라란 이름 덕분에 흔히들 비아그라가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정력을 선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cGMP’라는 물질의 생성을 통해 혈관 확장 시간을 늘려 장시간 발기를 돕는 물질일 뿐이다. 물론 발기가 어려운 남성들에게 이보다 더 큰 희소식은 없으며, 발기 걱정 없이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특히 어르신들에게 각별히 유용하다.

만일 사랑이 없다면 예술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그림들, 그리고 서점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소설들. 예술작품들의 대부분은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예찬하고, 사랑에 절망한다. 극장과 전시장, 콘서트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연인들이다.

사실 섹스 에너지가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100년 전,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승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예술과 과학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창조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성적 에너지가 왕성한 데 비해 그것을 발산하고 표현하는 것이 금지되었거나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섹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분의 에너지를 예술을 창조하고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자신의 책 <메이팅 마인드>에서 했던 주장은 프로이트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그는 인간이 억압된 성적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예술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 아니라, 이성에게 선택받고 섹스를 즐기기 위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그는 대부분의 문화적 표현은 성선택이 당면 과제인 시기에 가장 왕성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정자가 나팔관에 이르는 시간은 70분

그렇다면 도대체 섹스에서 절정의 순간, 인간의 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다시 말해, 흥분한 남자가 오랜 피스톤 운동 뒤 2억개의 정자가 담긴 2㏄의 정액을 여자의 질 속에 방출하는 순간, 여성의 몸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거냔 말이다.

실제로, 황홀한 섹스의 순간 남녀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포착한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정의 순간, 여성의 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오르가슴의 실체는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 과학의 메스를 성기에 가져간 것이다. 고환에서 74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낸 정자들은 약 20일 동안 부고환과 정관을 통과하며 정관 말단 팽대부에 저장된다. 그러다가 섹스의 순간 피스톤 운동과 함께 여성의 질로 방출된다. 정자의 크기는 0.05㎜. 꼬리 길이가 90%를 차지하는 이 올챙이 모양의 정자들은 사정 뒤 75~90%는 질 안에서 바로 죽고, 나머지만 자궁경관까지 간다.

정자의 전진 속도는 분당 3㎜ 정도. 사정된 정자는 자궁까지의 8㎝를 27분 만에 도달하고, 여기서 다시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의 10㎝를 42분 만에 도착한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 나팔관까지 18㎝를 여행하는 데 소요하는 시간은 약 70분. 이 길이는 정자 몸길이의 3천배나 되지만, 약 29.5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지고 8만5천배나 큰 단 하나뿐인 난자와 결합하기 위해 2억마리의 정자는 ‘자메이카의 총알’ 우사인 볼트만큼 맹주한다. 여성은 평생 500~1000개 정도의 난자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분석학 창시자 프로이트
“성적 억압이 창조 원천” 주장
진화심리학자가 쓴 <메이팅 마인드>
“이성에게 선택받고자 예술 창조”

섹스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들 풍부
‘성교기계’의 피스톤운동만으론
오르가슴 도달하지 못한다는 결론
불감증·황홀함의 원인은 못 밝혀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적으로 평생 5명의 상대와 2580번의 섹스를 한다고 한다. 인간의 성은 문학과 예술 등 정신활동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2011년에 개봉된 영화 <리벰머 미>의 한 장면. ㈜케이디 미디어 제공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은 평균적으로 평생 5명의 상대와 2580번의 섹스를 한다고 한다. 인간의 성은 문학과 예술 등 정신활동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2011년에 개봉된 영화 <리벰머 미>의 한 장면. ㈜케이디 미디어 제공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던 윌리엄 마스터스는 버지니아 존슨이라는 여성 조수와 함께 생식생물학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남녀가 섹스를 하는 동안 질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은 피스톤 운동을 하는 페니스 카메라, 일명 ‘성교기계’를 만들어 인공성교 실험을 했다.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생긴 길쭉한 카메라가 질 안에서 피스톤 운동을 하도록 해 질 속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이 기계는 ‘수백 차례의 완성된 성반응 주기’를 촬영했고 이 연구는 질의 윤활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섹스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를 정리한 <봉크>(파라북스, 2008)의 저자 메리 로취에 따르면, 일반인들도 ‘골반경’이란 걸 사용하면 누구나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여성이거나 여성과 함께 작업을 해야겠지만. ‘스쿨 오브 원’(School of one)이란 단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이 장치는 자궁이나 질의 변화를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삽입형 비디오카메라다.

마스터스와 존슨은 페니스 카메라를 이용해 인공성교를 하는 동안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해 그전까지 전혀 알 수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우선 페니스 카메라가 피스톤 운동을 하는 동안 질 안에선 윤활작용이 일어났는데, 섹스 때 질이 축축하게 젖는 이유는 샘에 의한 분비작용이 아니라 질내의 모세관 벽에서 스며나오는 혈장에 의해서라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최근까지 그걸 정확히 몰랐다는 사실이 더 놀랍긴 하다!

마스터스와 존슨은 실험 뒤 피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연구 리포트에 따르면 플라스틱 인공성교기를 이용했던 여성들의 70%는 단순한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진 않았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실험에 참가한 여성 중 30%는 카메라의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피스톤 운동에 의한 여성의 오르가슴,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마스터스와 존슨의 페니스 카메라 실험은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었을까?

우리는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 자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성의 피스톤 운동이 어떻게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마스터스와 존슨은 많은 실험을 거듭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진 못한 것 같다. 다만 그들이 실험을 통해 얻은 영상으로 유추한 결론은 남성의 성기가 질 안으로 들어와 진동운동을 할 때 직접적으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진 않지만, 남성의 성기가 소음순을 끌어당기고, 소음순이 당겨지면서 클리토리스를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섹스를 도와줄 뿐 ‘완성’하지는 못해

1984년 콜롬비아의 한 과학자 그룹이 마스터스와 존슨의 추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당겨지는 소음순이 여성 오르가슴의 실체는 아닐 것이라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콜롬비아 칼다스 의대 의사이자 성과학 교수인 헬리 알사테 박사와 그의 동료인 심리치료사 라디 론도뇨는 약 4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질의 성감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험은 좀더 단순했다. “조사자가 손을 씻은 다음, 윤활제를 바른 집게손가락을 피험자의 질 속에 넣고 양쪽 질벽에 체계적으로 마찰을 가한 뒤에 질벽과 일정한 각도를 이룬 채 질의 하반부에서 상반부로 진행하면서 중·강 정도의 압력을 주기적으로 가했다”고 논문은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피험자들이 경험하는 오르가슴이 연구자가 손가락으로 찌르는 동작으로 인한 당김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소음순을 손가락으로 당기며 비슷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결론은 플라스틱 성기의 피스톤 운동은 결코 대부분의 여성들을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할 수 없으며, 마스터스와 존슨의 연구 결과는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소음순을 당기는 것만으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되지도, 오르가슴에 도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직 황홀감의 실체는 과학으로 충분히 탐구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도대체 과학자들은 이런 낯뜨거운 과학실험을 왜 하는 것일까? 아마도 섹스의 메커니즘 연구는 인간이 섹스를 통한 오르가슴을 느끼는 과정을 이해하게 해주고, 불감증과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구에서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얻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받아야 하지만, 남성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만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비아그라는 발기부전을 치료해준다는 점에서 섹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흥분하지 않은 성기를 세울 수는 없으며, 황홀한 교감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페니스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 자체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남성들에게 좀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며, 그것은 결코 포르노에 나오는 슈퍼 남녀의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섹스’로는 배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물론 비아그라나 팔팔정으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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