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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남대문에 원폭 떨어지면…자동차 내렸다가 타고 가라?

등록 2016-10-03 09:25수정 2016-10-03 09:45

[미래] 박상준의 과거창
1966년 ‘학생과학’ 내놓은 시나리오
핵전쟁 공포가 적지 않던 시기
‘핵무장론’ 나오는 지금은 어떤가
1966년 잡지 ‘학생과학’에 실린 ‘서울 원자폭탄 가상 시나리오’ 기사. 피해 범위 및 대피 요령을 상세하게 서술했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다르게 행동해야 할 게 많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1966년 잡지 ‘학생과학’에 실린 ‘서울 원자폭탄 가상 시나리오’ 기사. 피해 범위 및 대피 요령을 상세하게 서술했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다르게 행동해야 할 게 많다. 서울SF아카이브 제공
‘냉전’이라는 말이 어느덧 아련해졌다. 2차 대전 이후부터 1990년대 초 동구권이 몰락할 때까지의 세계정세는 이 ‘냉전’이라는 한마디로 표현된다. 이 시기에 미국과 옛 소련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핵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힘을 쏟았다. 물론 중간에 데탕트(긴장 완화)라는 화해 무드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냉전 시대는 늘 핵전쟁의 공포가 우리의 일상에 악취처럼 배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화생방’ 대비 훈련을 반복해서 받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화학, 생물학, 방사능 무기를 일컫는 이 말은 영어로 ‘ABC 전쟁’, 즉 원자(Atomic), 생물학(Biological), 화학(Chemical) 무기 전쟁으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냉전의 한가운데였던 1966년에 ‘학생과학’ 12월호에는 ‘남대문 상공에 원자폭탄이 떨어진다면’이라는 무시무시한 글이 실렸다. ‘학생과학’은 60년대 중반에 창간되어 90년대 초까지 명맥이 이어졌던,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양과학 잡지다.

이 글은 서울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터질 경우의 피해 범위 및 대피 요령에 대해서 다섯 쪽에 걸쳐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남대문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하면 남쪽으로 용산 즈음까지의 반경(1.2㎞)에 해당하는 지역 안에서는 지하에 있지 않은 이상 생존이 어렵다고 보았다. 그리고 반경 6~8㎞ 안에 있는 건물들은 온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이 아주 낮다. 더 바깥으로 나가면 인천, 용인, 수원, 의정부 등은 모두 직접적인 피해 범위 안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열폭풍, 방사선, 충격파, 방사능 낙진 등의 직간접 피해가 모두 망라된다.

그런데 이 글은 지금 보면 몇 가지 한계가 드러난다. 먼저 폭발한다고 가정한 원자폭탄의 위력이 너무 작다. 아마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폭 정도로 가상했던 것 같은데, 그 위력은 15㏏(킬로톤), 즉 티엔티(TNT) 1만5천t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의 전략핵무기는 무려 500㏏ 정도의 폭발력을 지닌다. 따라서 실제로 서울 상공에서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이 글에서 설명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자동차에 탑승했을 경우 시동을 끄고 내려 대피했다가 나중에 다시 타고 안전한 곳으로 운전해 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건 EMP(전자기 충격파)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얘기다. 핵폭발이 일어나면 열폭풍이나 방사선 못지않게 순간적으로 강렬한 전자기 충격파가 발생한다. 이 충격파를 받는 모든 전자제품은 일시에 마비 상태가 되어 작동을 멈출뿐더러, 심한 경우 반도체 소자들이 타버리는 물리적 손상까지 발생한다. 60년대와는 달리 요즘의 자동차에는 온갖 전자제어 회로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결국 핵폭발을 맞는 순간 자동차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물론 휴대전화, 피시 등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당시 잡지에 이런 글이 실렸던 배경은 무엇일까? 1966년은 우리나라 주변 정세에 몇 가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 때이다. 그해 여름 북한은 중국이나 소련에 치우치지 않는 자주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그 뒤에는 중-소 간의 갈등이라는 복잡한 배경도 있었다. 또한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마오쩌둥에 충성을 맹세하는 홍위병들이 국가의 든든한 지원 아래 무소불위의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렇듯 사회주의권 내부의 몇몇 요소들이 요동을 치는 환경에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새삼 긴장 국면이 조성되었을 수도 있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일단락된 지 불과 십수년 뒤였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지 20년 남짓 지난 때였다. 당시는 핵전쟁에 대비한다는 일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사안이었을 것이다.

미국이 2차 대전의 승리자가 되고 우리나라 역시 그 혜택을 입은 쪽이기 때문에 간과되고 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는 반인륜범죄였다. 두 도시에서 즉사한 사람이 최소 11만명 이상인데 대부분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핵무기의 실전 사용은 인류 역사에서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해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여차하면 인간이기를 포기하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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