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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살균제 치약’보다 ‘늦장 정부’가 더 위험하죠

등록 2016-09-30 19:50수정 2016-10-01 09:41

김정수 미래팀 선임기자 jsk21@hani.co.kr

요즘 양치질할 때마다 좀 찜찜한 독자들 많으시죠? 미래팀에서 환경 분야를 취재하는 김정수입니다. 저는 오늘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혼합물이 함유된 치약 사용에 따른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정부의 치약 사태 대응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자신이나 가족이 CMIT/MIT 성분 함유 치약을 사용한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은 자신도 모르게 건강 피해를 입은 건 아닐까 하는 점인 것 같습니다. 적은 양이 들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CMIT/MIT가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돼 사망 피해자까지 낸 유독물이라니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점에 대해서는 크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9월 가습기 살균제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계기로 ‘의약외품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의 ‘의약외품용 보존제 및 사용 범위’에 치약제 항목을 신설하고, 사용할 수 있는 성분을 벤조산나트륨 등 3종으로 못박았습니다. 하지만 국외 사정은 다르다고 하네요. 식약처는 미국에서는 CMIT/MIT도 별도의 기준치가 없어 사용 가능하고, 유럽연합(EU)은 최대 15ppm까지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유럽의 허용기준치는 하루에 사용하는 치약 속의 잔류 CMIT/MIT가 인체에 모두 흡수돼도 안전한 수준인데, 이번에 문제가 된 치약들의 CMIT/MIT 함량은 유럽 기준치의 3400~6800분의 1인 0.0022~0.0044ppm에 불과하니 안심하라는 것이죠.

환경보건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런 식약처의 설명이 틀렸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임종한 교수는 “소화기로 흡수된 살균제 성분은 혈액을 따라 돌면서 최종적으로는 폐 쪽에 전달돼 폐 손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애들한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치약을 개별적으로 보면 거기 들어 있는 (CMIT/MIT) 함량이 미미하기 때문에 위해도가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건강에 불안해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임 교수는 환경단체 환경정의다음지킴이운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환경보건전문가입니다. 식약처의 설명이 미심쩍은 분들도 임 교수와 같은 전문가의 말은 믿어볼 만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CMIT/MIT가 함유된 치약을 그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험성이 높든 낮든 유독물질에는 되도록 덜 노출되는 것이 좋을 것은 당연하니까요.

다음은 이번 논란에 대한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살펴보지요. 치약 속 CMIT/MIT 함유는 명백히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이 마련돼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부나 기업들은 가습기 살균제처럼 제도가 미비한 탓이라는 변명도 내놓기 어렵게 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돼 온나라를 시끄럽게 한 CMIT/MIT가 금지물질인지도 모르고 치약 원료에 넣었다는 원료 제조업체, 입에 들어가는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도 그 속에 어떤 유독물질이 들어있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치약 제조업체의 무신경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가 뒤늦게 자신이 문제점을 적발한 것인 양 시치미를 떼고 있는 식약처입니다.

식약처는 지난 9월26일 이례적으로 다음날치 신문의 초판 마감까지 지난 시각, 치약에 CMIT/MIT가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 자료 배포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 보좌진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된 문서까지 추적해 어렵게 확인한 성과를 가로챈 것입니다. 자신들의 노력은 언급조차 없는 식약처발 기사를 보고 당황한 이 의원실에서 추궁하자, 식약처 관계자는 이 의원실의 제보로 기사를 쓴 한 조간 신문의 다음날치 초판 기사가 저녁에 미리 나온 것을 입수해 보도자료를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합니다.

사실 식약처에 기회는 많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치약은 언론과 시민환경단체 등에서 제기한 제품 목록의 맨 앞줄에 있었습니다. 식약처가 이런 지적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면 더 일찍 밝혀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죠. 정부는 29일 모든 치약 제조회사의 제품에 대해서 ‘금주 중’ 전수조사를 완료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금방 할 수 있는 일을 왜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문제가 드러나고 나서야 움직이는, 가습기 살균제에서 드러난 정부 대응의 문제점이 치약 사태에서 그대로 재연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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