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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우라늄 할아버지, 방사능 광물 찾아 들로 산으로

등록 2016-08-22 10:37수정 2016-08-22 10:47

가이거 계수기 만들어 상 받고
‘우라늄 사냥꾼’ 할아버지 유랑하고
원자력전시회 100만명 오던 그 시대

누구에게는 ‘노스탤지어'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잘못된 시작'…
중고등학생들에게 별도 교과서까지 보게 하면서 국가적으로 심혈을 기울이던 과학 과목이 있었다. 1950년대 말, 60년대 초 이야기다. 시기상으로 1957년의 ‘스푸트니크 쇼크’와 이어지니까 ‘우주과학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답은 ‘원자과학’이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핵심 전략 분야가 아이티(IT) 산업이라면, 그 당시에는 원자력이 바로 그런 위상을 차지했었다. 1956년 초 한국 정부는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었고 이어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신설했다. 그 전까지 미국 원자력위원회 등에서 오는 모든 서신이며 자료들은 외무부가 아닌 경무대에서 직접 챙겼다고 한다.

1950년대는 곳곳에서 원자력 계몽 포스터와 사진, 책자 등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 광물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조명됐고 가이거 계수기를 들고 전국 폐광을 찾아다니는 ‘우라늄 할아버지’도 있었다.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1950년대는 곳곳에서 원자력 계몽 포스터와 사진, 책자 등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 광물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조명됐고 가이거 계수기를 들고 전국 폐광을 찾아다니는 ‘우라늄 할아버지’도 있었다.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1956년 가을에는 원자력전시회가 열려 한 달이 넘도록 전국을 순회하면서 관람객이 100만명을 훌쩍 넘겼다. 또한 그해 열린 제3회 과학전람회는 아예 원자력관을 별도로 두었다. 전국에서 200여점에 달하는 원자력 관련 전시물을 출품했는데, 서울 신광여고가 가이거 계수기 모형 등 11점을 내놓아 국방부장관상을 받았다.

1957년에 한국은 유엔 산하기구로 설립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창설회원으로 가입했다. 정부에서는 원자력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해외로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했으며 그 수가 60년대 초까지 190여명에 달했다. 그중에 국비유학생이 70% 가까이 되었다고 하니,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나라 살림을 고려하면 상당한 투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59년에는 독립된 정부기구인 원자력원이 발족하여 초대 원장에 김법린이 취임했는데, 그는 문교부 장관과 자유당 원내총무를 지냈던 정치인 출신이었다. 당시 과학자가 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음에도 그가 초대 원장이 된 것은 이승만 정부가 원자력 개발 분야에 그만큼 힘을 실으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당시의 원자력 계몽 분위기는 1959년에 나온 한 원자력 홍보서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가이거 계수기를 들고 전국의 산과 들판을 누비면서 방사성 광물을 찾는 사람의 사진에 붙은 글이다.

“주변에 있는 한 움큼의 모래나 한 보시기의 물에서부터 광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을 원자력으로 전환(융합반응 또는 핵분열)시켜 농업, 공업, 의학, 교통, 기타 모든 부면에 응용함으로써 국민 생활을 보다 더 부유하게 개선시킬 것이다.”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서울에스에프아카이브 제공
지금처럼 원자력 산업 자체의 폐쇄성이나 유지 보수에 드는 추가 비용의 경제적 득실 등등까지 따질 생각은 못할 때였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숨진 조선인이 5만명, 귀국한 생존자가 4만3천명에 달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도 없었다.

이승만 정부가 의욕적으로 펼치던 원자력 정책은 4·19 혁명과 5·16 쿠데타를 거치는 동안 잠시 정체되었다가 박정희 정권하에서 이내 다시 드라이브가 걸렸다. 1962년에 한국 최초의 원자로가 연구 용도로 설치되고 나서, 50년 이상이 흐른 지금은 전체 전력의 31.5%(2015년, 한국수력원자력)를 원자력 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원자력 안전은 과연 미더운 수준일까? 2013년의 원전비리 사건은 전력대란을 불러와 피해금액이 9조9500억원으로 추산될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더 중요한 건 소련 체르노빌이나 일본 후쿠시마 같은 끔찍한 환경 재앙의 가능성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동시대의 진영 간 갈등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 간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거대과학’이 등장한 시대다. 그러나 거대과학의 도입에 앞서 사회적, 생태적 영향을 미리 가늠해 보는 절차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전히 힘겹게 체계화되어 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원자력이다. 현시대에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에너지원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언제까지나 원자력을 끌어안고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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