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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불공정한 건 못 참아, 나는 인간이니까

등록 2016-05-06 19:42수정 2016-05-08 11:06

존 내시는 여러 사람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서로 비협조적이면 서로 많은 손실을 보기에 함께 살기 전략을 택한다는 가설을 수학으로 증명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내시의 삶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시(러셀 크로)가 ‘내시 평형’을 증명할 수학 공식을 기숙사 유리창에 적고 있는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존 내시는 여러 사람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서로 비협조적이면 서로 많은 손실을 보기에 함께 살기 전략을 택한다는 가설을 수학으로 증명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내시의 삶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내시(러셀 크로)가 ‘내시 평형’을 증명할 수학 공식을 기숙사 유리창에 적고 있는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토요판]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12) 호모 에코노미쿠스와의 이별
신경경제학은 행동경제학의 동생이다. 경제학을 행동주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라면, 신경경제학은 행동경제학적 선택의 원인을 뇌에서 찾는 신경과학이 결합한 학문이다. 인간이 그다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제주체가 아니며, 그들이 복잡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그것을 뇌가 작동하는 원리에 기반해 설명하려는 학문적 시도다.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베르스키가 경제학 분야에 뛰어들어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프로스펙트 이론은 불확실한 조건에서 잠재적 손실과 이익을 어떤 프레임에서 판단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좌우된다는 가설을 제안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이 이론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내시, ‘최적의 전략’ 존재 증명

프로스펙트 이론에서 제안된 핵심 개념 중 하나가 손실 회피(loss aversion)다.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모험을 하기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쪽으로 결정하는 성향이 있다는 얘기다. 회사에서 주는 보너스를 당첨 확률이 50%인 1000만원짜리 로또와 현금 300만원, 둘 중 어떤 형식으로 받을 것인지 물어보면 대부분 현금을 선택한다. 더 큰 금액을 받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느니, 안전한 현금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로또의 기댓값이 500만원임에도 불구하고. 기댓값은 여러 번 시행해서 얻게 되는 평균 금액이고, 선택은 한 번뿐이라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로또 당첨 금액을 높여도 사람들이 계속 현금을 고수해야 한다. 그러나 로또의 기댓값이 현금의 두 배가 되면 현금을 선택한 사람들만큼이나 로또를 선택한다. 다시 말해, 당첨 확률 50%의 1200만원 로또에 당첨된 기쁨의 크기가 현금 300만원과 유사한 가치를 가진다는 뜻이다.

여기까지가 행동경제학적인 연구다. 그렇다면 신경경제학은 우리에게 이 현상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2007년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러셀 폴드랙과 그의 동료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손실 회피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반응을 관찰한 논문을 발표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측정장치를 이용해 뇌활동을 모니터링한 결과, 복내측 전전두피질(VMPFC)에서 손실 회피와 관련한 반응이 활발히 나타났다. 대뇌피질 앞쪽에 위치한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원래 공감이나 동정,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사회적 정서 반응과 관련된 뇌영역이다.

자신의 선택을 감정이라는 틀로 판단하고 다시 들여다보는 이 영역은 ‘생존’이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선택보다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댓값이 낮음에도 현금을 선택하는 것이다.

손실 회피가 뇌 안에서 정서를 처리하는 영역과 관련되었다는 폴드랙의 연구결과는 행동경제학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었다. 주류 경제학 이론인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경제활동의 주체인 인간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완전히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가정해왔다. 하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으로는 손실 회피와 같은 불합리한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합리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행동경제학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신경경제학에 의해 뇌 안에서 손실 회피의 생물학적 근거가 밝혀짐에 따라 호모 에코노미쿠스 가설은 점점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인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은 간단한 게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여러 사람이 전략을 세워 ‘최적의 전략’을 찾아야 하는 게임에서 비합리성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박사과정 학생이던 존 내시는 여러 사람이 함께 게임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최대가 되게끔 노력할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 또는 우리 편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가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게임에서 ‘최적의 전략’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게임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의 전략이 주어졌을 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가장 적절한 전략이 내 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것이 항상 ‘최적’이라 할 순 없겠지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전략이라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이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이것을 ‘내시 평형’(Nash 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존 내시는 이 사실을 증명한 공로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그가 이것을 증명하는 과정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매우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배우 러셀 크로가 존 내시 역을 맡았다)

행동경제학의 프로스펙트 이론
모험보다 ‘손실 회피’ 성향 주목
영상장치로 뇌활동 관찰해보니
복내측 전전두피질 반응 발견
공감 등 사회적 정서 작용 증거

맘대로 돈 배분 ‘최후통첩 게임’
반응자, 불공정하면 손실 감수
제안자, 대부분 5대5로 배분
경제학의 합리성 가정과는 상반
경제선택 주체로 ‘인간’에 주목

불공정 상황 땐 ‘뇌섬’이 분노 반응

그렇다면 최근 신경과학자들 사이에 주목받고 있는 경제학 게임인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에서 가장 합리적인 전략인 ‘내시 평형’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제목에 나오는 바로 그 ‘얼티메이텀’이 들어가는 이 게임에서 얼티메이텀이란 자신의 메시지를 마지막에 상대방에게 던지는 ‘최후통첩’이란 뜻이다.

이 게임은 1982년 독일 훔볼트대의 베르너 귀트 연구팀이 개발한 이래 행동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연구가 돼온 실험 패러다임이다. 이 게임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게임을 위해서는 두 명의 참가자가 필요하다. 한 명은 제안자, 다른 한 명은 반응자라고 부른다. 이 게임을 주재하는 사람이 제안자에게 1만원을 건넨다.(10만원이나 100만원으로 해도 된다) 제안자가 하는 역할은 이 돈을 자기 몫과 상대방(반응자)의 몫으로 나누는 일이다. 자신이 6000원을 갖고 상대방에게 4000원을 줘도 좋고, 자신이 9000원을 갖고 상대방에게 1000원을 줘도 좋다. 그 비율을 정하는 사람은 제안자다.

제안자가 돈을 어떻게 나눌지 제시하면 반응자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제안자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반응자가 제안자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면 두 사람은 제안된 몫대로 나눠 가지면 된다. 그러나 반응자가 제안을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이 게임이 경제학자들에 의해 처음 개발된 것은 공정성과 이익 추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본성을 경제원리로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수학적이고 경제적인 제안자라면 이 게임에서 얼마를 제안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일까. 존 폰 노이만이 만든 ‘게임 이론’에 따르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서는 먼저 반응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생각하면 된다. 반응자는 제안자가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제시해 오면 (0이 아닌 이상) 거절하는 것보다 무조건 받는 것이 이득이다. 다시 말해 반응자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0이 아닌 어떤 금액을 제안받는다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제안자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방(반응자)에게 최소한의 금액만 제시하면 된다. 이것이 서로가 굳이 자신의 선택을 바꿀 필요가 없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전통적인 경제 이론과 게임 이론은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공평하게 5 대 5로 나누겠다고 결정한다. 왜 이런 의사결정을 하는 걸까? 프린스턴대학 뇌·정신·행동연구센터의 책임자인 조너선 코언은 최후통첩 게임을 하는 피실험자들의 뇌를 촬영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9 대 1 혹은 8 대 2 같은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경우 대뇌 안쪽에 있는 뇌섬(insula)이 강한 분노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똥을 볼 때 역겨움을 표상하는 뇌섬이 9 대 1 같은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때도 활성화되는 것이다. 실험 참가자에게 ‘내가 9000원을 가질 테니 네가 1000원을 가져’ 같은 제안은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받아들일 수 없는 셈이다.

그래서 그 순간 실험 참가자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기꺼이 포기하면서까지 불공정에 맞선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1000원의 제안을 거부하는 일은 일반적인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비합리적 반응이다. 그가 제안을 거부하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1000원이라도 받는 것이 경제적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 실험은 인간이 언제나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만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는 금액을 높여 실험을 해도 비슷한 결과를 얻는다. 오스트레일리아 경제학자 리사 캐머런은 인도네시아에서 3개월치 월급인 20만 루피아를 나눠 가지는 실험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5만 루피아, 즉 25% 이하로 제안했을 경우에는 응답자의 대부분이 거절했다. 그들 중 일부는 30%를 준다고 했을 때도 거절했다. 5만 루피아면 보름 이상 급여에 해당하는 액수지만 경제적 이익보다는 공평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불공평한 제안을 수락하느니, 차라리 월급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즉,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불로소득에 분노하는 이유

사람들이 늘 불공정한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같은 제안에 대해 여러 명이 경쟁하는 경우, 사회성이 결여된 그리고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컴퓨터를 통해 제안되는 경우에는 공평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진 않는다.

불공정한 제안을 하는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도록 허용하느니, 차라리 둘 다 돈을 못 받게 하는 선택은 과연 어리석은 선택일까? 이 연구는 우리가 돈과 관련된 선택의 경우에도 항상 나의 이익만 고려하는 선택을 내리진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불공정한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즉 불공정한 상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도 있다.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공정성을 추구하는 일이 비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건 경제학자들밖에 없다. 인간의 삶은 그보다 좀더 복잡하다.

우리는 불로소득에 분개하고, 불공정한 거래에 화가 치밀고,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거나 사회적 특권층에 각별한 혜택을 줄 때 분노가 밀려온다. 공동체의 선, 사회적 정의감은 아마도 이런 것에서 비롯됐으리라.

신경경제학자들은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인간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경제적 이득 외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친밀성, 공정성, 과거의 기억, 미래에 대한 기대 등 다양한 기준으로 선택한다. 판단 기준도 근시안적이지 않고, 먼 미래까지 내다보면서 중요한 가치를 추구한다. 신경경제학의 매력은 주류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경제적 선택의 주체를 비로소 ‘인간’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정재승 교수
정재승 교수
정재승 교수

▶ 정재승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를 받은 뒤 예일대 정신과 연구원,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쳤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크로스>(공저) 등의 책을 냈다.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행동을 탐구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 연재물은 영혼을 조종하는 뇌의 탐구를 통해 자연과학과 공학·인문학·사회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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