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라는 불청객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던지고 한마디 말 없이 떠났다. 바둑 애호가들에게는 흥분의 도가니 같은 시간이었으나 이제는 차분히 정리할 때이다. 알파고는 협의의 관점에서는 인공지능(AI) 영역이지만 넓게는 소프트웨어(SW) 전반의 주제다. 아이티(IT)에서 20% 몫을 차지하는 하드웨어 속성은 모래(반도체)와 쇠이다. 이런 원초적 기억장치와 계산장치가 순서에 맞게 조화를 이뤄 작동하도록 지시하기 위해서는 오에스(OS)라는 소프트웨어를 기억장치에 깔아놔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태생적으로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창출해내려면 반드시 ‘데이터’라는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한다.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명확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정보시스템이 제작될 수 있다.
알파고는 분명 소프트웨어다. 건축물에 비유하면 펜트하우스 격 최상층이다. 알파고가 구동하려면 최하단의 오에스가 있어야 하고 바로 위층에 데이터베이스를 관장하는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한다. 그 위에서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돌아간다. 알파고가 대국 때 다음 한 수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했던 데이터는 바둑판 자체였다. 돌 하나하나 깔린 위치가 바로 데이터였다. 정보화에서 가장 핵심인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내는 창작품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계는 소프트웨어 제작과 데이터 제작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들은 인간 손끝의 예리한 ‘예술적’ 감각을 통해서만 제작 가능한 것이어서 기계에게는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다. 여기까지가 ‘아이티 상식’의 절반이다.
나머지 상식의 절반은 무엇일까. 알파고처럼 소프트웨어로 무장된 기계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둔갑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 능력이다. 어떤 이는 인공지능 기술이 무슨 무슨 기술과 결합되는 순간 인간은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 이 논제의 해답은 알파고의 성능 수준을 통해 유추 가능하다. 알파고는 혜성처럼 등장한 유망 신생 기술류가 아니다. 인공지능 역사는 꽤 됐다. 인공지능은 미지의 세계에 대해 확률이라는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기계 나름으로 해법을 탐색해 나가게 하는 독특한 소프트웨어 분야다. 생리적으로 ‘확률’에 집착하는 점에서는 다른 소프트웨어 분야와 대별된다. 지난 30여년 동안 꾸준히 연구돼와 이제는 성숙기에 안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잘 정립된 분야에서 배출된 역작들의 대표가 알파고이다. 많은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알파고의 5전 완승을 예견했던 배경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기술이라도 인간에 의해 설계 제작됐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라는 굴레 역시 운명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가 버그를 하나도 내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이티 분야에서 흔히 회자된다는 사실도 참고할 만한 이야기다.
이런 상식에 동의한다면 정보화 성인식 통과 의례를 치른 셈이다. 하지만 시선을 정부 쪽으로 돌려보면 과연 성인식을 치렀는지 의문이 든다. “왜 우리에게는 구글 같은 기업이 나오지 않느냐”는 ‘구글 타령’을 되뇔까 우려된다. 정부는 구글이 시장에서 절로 태생한 기업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야심작으로 키워낸 역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구글 초기 창업 아이템이 ‘공공도서관 도서 디지털화 사업’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1940년대 컴퓨터의 탄생, 1950년대 오에스의 탄생, 1960년대 인터넷의 탄생 등 작품 하나하나가 산학연구를 주도하고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후견인 역할을 정부가 자처하고 나선 끝에 거둔 성과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제2의 구글’ 탄생을 꿈꾼다면 지금이라도 시장만 바라볼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이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해줘야 한다.
문송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영국 뉴캐슬대 교수
문송천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영국 뉴캐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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