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취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다. 천재적인 후각의 소유자가 경험해보지 못한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끌려 향수 제조 방법을 배워나간다는 내용의 영화 <향수>(2007)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몸 / 몸 냄새
▶ 봄입니다. 이제 슬슬 땀 납니다. 슬슬 겨드랑이에 신경 쓰입니다. 당신의 냄새는 안녕하십니까. ‘털 없는 원숭이’로 진화한 인간이 여전히 독특한 체취를 풍기는 이유가 뭘까요. 체취가 사랑의 흔적임을 안다면 ‘겨땀’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번 몸 칼럼은 체취를 증오하는 독자를 위한 선물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냄새의 역사를 알려드립니다.
청나라의 여섯번째 황제였던 건륭제는 ‘십전노인’(十全老人: 10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노인)이라는 별명답게 89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차례의 정복 전쟁을 일으켜 대제국을 건설했던 최고의 권력자이자 정복자였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건륭제도 결코 복속시키지 못한 대상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정복지에서 볼모로 끌려와 후궁이 된 한 명의 여인이었다. 그리운 고향 산천에 사랑하는 이를 두고 강제로 끌려온 그녀는 단검을 품은 채 황제에게 전혀 곁을 내주지 않았고, 그런 그녀의 곁에서 애가 달아 안절부절못했던 것은 오히려 정복자인 황제였다고 한다. 도대체 그녀의 어떤 점이 성난 호랑이 같던 건륭제를 순한 고양이로 만든 것일까? 물론 그녀는 절세가인이었으나 넓고 깊은 궁에는 그녀만큼 어여쁜 여성들도 많았다. 그녀가 여타의 미녀들과 달랐던 것은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였다. 그 향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어서 그 체취를 한 번이라도 맡은 이들은 그녀의 발밑에 기꺼이 엎드려 숭배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은 그녀를 향비(香妃)라고 기억한다. 향비와 건륭제에 얽힌 사연은 역사라기보다는 야사나 전설에 가깝지만, 향비 이야기는 수백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왔다. 천하를 호령한 황제를 굴복시킨 것이 겨우 ‘몸냄새’였다는 것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탓일 것이다.
두 땀샘, 에크린샘과 아포크린샘
전신에 퍼져있는 에크린샘은
교감신경계 통해 체온 조절 역할
‘체취’는 아포크린샘이 만들어
지방성분 많은 기름진 땀 분비
여성 400명에게 한 남성의 겨땀
흡수시킨 패드 주고 냄새 실험
얼굴 찌푸리는 여성도 있었고
달콤한 냄새라며 호평한 여성도
비밀은 OR7D4라는 유전자 차이
황제조차 무릎 꿇게 만든 강력한 마약 체취(體臭)는 말 그대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뜻한다. 그중에서도 입냄새와 발냄새처럼 씻지 않았을 때 더해지는 고약한 냄새보다 원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냄새를 의미한다. 즉, 체취의 근원은 인간이 흘리는 분비물, 주로 땀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에크린샘(eccrine sweat gland)과 아포크린샘(apocrine sweat gland)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땀샘을 가지고 태어난다. 에크린샘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땀샘으로 전신에 퍼져 있으며 교감신경계의 조절을 받아 체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평소에 우리가 흘리는 대부분의 땀은 에크린샘에서 분비된다. 이 땀은 대부분은 물(99%)이며 여기에 약간의 염화나트륨, 즉 수분과 미량의 전해질로 구성되어 있을 뿐, 냄새나는 성분은 그다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씻지 않고 내버려두면 박테리아가 번식하여 퀴퀴한 땀냄새가 날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도 씻으면 곧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체취’라고 부르는 잘 사라지지 않는 특유의 냄새를 만들어 내는 것은 주로 아포크린샘이다. 아포크린샘은 사람의 경우 머리 일부와 겨드랑이, 사타구니 부분에만 분포되어 있는 땀샘으로, 태어날 때부터 기능하는 에크린샘과 달리 탄생 후 일정 시기까지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잠들어 있던 아포크린샘이 기지개를 켜는 것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2차 성징이 발현하면서부터이다. 사춘기에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성호르몬들의 융단폭격에 눈을 뜬 아포크린샘은 지방 성분이 매우 많은 기름진 땀을 분비한다. 흰 와이셔츠의 겨드랑이 부분을 누렇게 변색시키고, 최악의 악취로 꼽히는 액취(腋臭)의 기원이 되는 물질이 바로 이 아포크린샘 출신 지방성 땀인 것이다. 사실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는 에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 비해 냄새 물질의 함유량이 많기는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악취라고 할 만큼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지방이 훌륭한 에너지원인 것처럼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된 땀 속에 든 풍부한 지방들은 박테리아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데, 박테리아가 먹었다가 뱉어낸 분비물은 원래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유전적 형질의 차이로 인해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 포함된 성분들이 조금씩 다르기에 박테리아가 뱉어내는 분비물이 함유한 냄새도 달라진다. 다만 그 작은 차이에 박테리아가 더해지면 같은 땀이라도 향비의 그것처럼 황제조차도 무릎 꿇게 만드는 강력한 미약과 주변에 오는 모든 사람을 초토화시키는 화생방 테러 물질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드러난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땀과 분비물이 많아지는 여름이 오면 겨드랑이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인터넷을 쓱 둘러보기만 해도 별생각 없이 팔을 번쩍 들었다가 겨땀으로 생겨난 얼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제모를 하고, 디오더런트를 뿌리거나 땀샘 억제제를 바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술로 아포크린샘 자체를 도려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그곳에서 나는 땀과 그 부산물인 냄새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귀찮은 겨땀 분비의 근원인 아포크린샘은 왜 생겨난 것일까? 사람의 몸에는 아포크린샘에 비해 에크린샘이 월등히 많이 분포되어 있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포유류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역전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개나 고양이, 소 등은 에크린샘이 혀와 입술 주변에만 분포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울 때 사람처럼 전신에서 땀을 흘리는 대신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여서 체온을 조절한다. 이 동물들도 아포크린샘은 매우 발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포크린샘의 발생학적 기원을 추적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기름진 땀은 일종의 천연 최음제 아포크린샘은 지방성 땀샘 외에도 포유류의 유선(乳腺)과 외이도에 존재하는 밀랍 분비샘, 포유류의 생식기 근처에 존재하는 향선과 기원이 같다. 이러한 발생학적 동일성은 아포크린샘이 포유류의 생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든다. 실제로 포유류들은 생식기 주변에 존재하는 아포크린샘을 통해 특유의 냄새를 가진 분비물을 배출하며, 이 분비물은 같은 종의 이성을 유혹하는 관능적인 향수로 이용된다. 인간이 향수의 원재료로 더없이 사랑하는 사향, 영묘향, 해리향은 각각 사향노루, 사향고양이, 비버에게 존재하는 일종의 아포크린샘에서 추출한 물질이다. 그리고 각각의 향은 달라도 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만든 향수들은 한결같이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아포크린샘의 존재 이유가 드러난다. 아포크린샘에서 만들어지는 기름진 땀은 생식에 성공하기 위한 일종의 천연 최음제인 셈이다. 아마 사람에게도 오래전 언젠가는 아포크린샘에서 풍기는 냄새가 악취나 두통거리가 아니라 이성을 유혹하는 섹시한 향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털 없는 원숭이’로 태어난 인간이 2차 성징기에 들어서면 겨드랑이와 생식기 주변에만 털이 나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이 부위에 나는 구부러진 털들은 땀의 증발을 막고 냄새를 가둬 더 오랫동안 진한 향기를 머금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문명은 훤히 드러나 있던 겨드랑이와 생식기를 옷으로 덮어 막아버렸고, 원래부터 축축한데다가 바람길까지 막혀버린 부위들은 곧 박테리아의 최적 서식지가 되어 기름진 땀은 이성을 유혹하는 섹시한 향수가 아니라 다가오는 이성조차도 도망가게 만드는 악취의 근원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발달된 시각과 청각은 이성의 매력적인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를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냄새를 무기로 삼은 아포크린샘은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예전만 못해도 체취는 여전히 우리의 본능에 영향을 미친다. 2007년 미국 듀크대와 록펠러대 연구팀은 여성 400명에게 한 남성의 겨드랑이 땀을 흡수시킨 패드를 주고 어떤 냄새가 나는지 설명하게 했다. 그런데 같은 물질에 대해서 여성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패드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리는 여성도 있었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여성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바닐라처럼 달콤한 냄새가 난다고 평가한 여성도 있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냄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여성일수록 만나보지도 못한 남성의 이미지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즉, 냄새가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냄새에 이토록 다양하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연구팀들은 개인의 체취가 유전적 형질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 여성들의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후각 수용체 중 하나인 OR7D4라는 유전자의 차이가 같은 냄새를 다르게 인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아포크린샘 분비물에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산물인 안드로스테논이 포함되어 있다. OR7D4라는 후각 수용체는 이 안드로스테논을 인식하는데, 이 OR7D4의 변이는 안드로스테논을 다른 종류의 냄새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마치 물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OR7D4 유전자가 어떤 변이를 가지느냐에 따라 안드로스테논의 냄새를 다르게 인식했던 것이다. 결국 상대의 체취가 향기로운지 역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냄새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체취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두 땀샘, 에크린샘과 아포크린샘
전신에 퍼져있는 에크린샘은
교감신경계 통해 체온 조절 역할
‘체취’는 아포크린샘이 만들어
지방성분 많은 기름진 땀 분비
여성 400명에게 한 남성의 겨땀
흡수시킨 패드 주고 냄새 실험
얼굴 찌푸리는 여성도 있었고
달콤한 냄새라며 호평한 여성도
비밀은 OR7D4라는 유전자 차이
황제조차 무릎 꿇게 만든 강력한 마약 체취(體臭)는 말 그대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뜻한다. 그중에서도 입냄새와 발냄새처럼 씻지 않았을 때 더해지는 고약한 냄새보다 원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냄새를 의미한다. 즉, 체취의 근원은 인간이 흘리는 분비물, 주로 땀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에크린샘(eccrine sweat gland)과 아포크린샘(apocrine sweat gland)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땀샘을 가지고 태어난다. 에크린샘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로 그 땀샘으로 전신에 퍼져 있으며 교감신경계의 조절을 받아 체온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평소에 우리가 흘리는 대부분의 땀은 에크린샘에서 분비된다. 이 땀은 대부분은 물(99%)이며 여기에 약간의 염화나트륨, 즉 수분과 미량의 전해질로 구성되어 있을 뿐, 냄새나는 성분은 그다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씻지 않고 내버려두면 박테리아가 번식하여 퀴퀴한 땀냄새가 날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도 씻으면 곧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체취’라고 부르는 잘 사라지지 않는 특유의 냄새를 만들어 내는 것은 주로 아포크린샘이다. 아포크린샘은 사람의 경우 머리 일부와 겨드랑이, 사타구니 부분에만 분포되어 있는 땀샘으로, 태어날 때부터 기능하는 에크린샘과 달리 탄생 후 일정 시기까지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 잠들어 있던 아포크린샘이 기지개를 켜는 것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2차 성징이 발현하면서부터이다. 사춘기에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성호르몬들의 융단폭격에 눈을 뜬 아포크린샘은 지방 성분이 매우 많은 기름진 땀을 분비한다. 흰 와이셔츠의 겨드랑이 부분을 누렇게 변색시키고, 최악의 악취로 꼽히는 액취(腋臭)의 기원이 되는 물질이 바로 이 아포크린샘 출신 지방성 땀인 것이다. 사실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는 에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 비해 냄새 물질의 함유량이 많기는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악취라고 할 만큼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지방이 훌륭한 에너지원인 것처럼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된 땀 속에 든 풍부한 지방들은 박테리아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데, 박테리아가 먹었다가 뱉어낸 분비물은 원래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유전적 형질의 차이로 인해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 포함된 성분들이 조금씩 다르기에 박테리아가 뱉어내는 분비물이 함유한 냄새도 달라진다. 다만 그 작은 차이에 박테리아가 더해지면 같은 땀이라도 향비의 그것처럼 황제조차도 무릎 꿇게 만드는 강력한 미약과 주변에 오는 모든 사람을 초토화시키는 화생방 테러 물질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드러난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땀과 분비물이 많아지는 여름이 오면 겨드랑이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인터넷을 쓱 둘러보기만 해도 별생각 없이 팔을 번쩍 들었다가 겨땀으로 생겨난 얼룩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제모를 하고, 디오더런트를 뿌리거나 땀샘 억제제를 바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술로 아포크린샘 자체를 도려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그곳에서 나는 땀과 그 부산물인 냄새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귀찮은 겨땀 분비의 근원인 아포크린샘은 왜 생겨난 것일까? 사람의 몸에는 아포크린샘에 비해 에크린샘이 월등히 많이 분포되어 있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포유류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역전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개나 고양이, 소 등은 에크린샘이 혀와 입술 주변에만 분포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울 때 사람처럼 전신에서 땀을 흘리는 대신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여서 체온을 조절한다. 이 동물들도 아포크린샘은 매우 발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포크린샘의 발생학적 기원을 추적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기름진 땀은 일종의 천연 최음제 아포크린샘은 지방성 땀샘 외에도 포유류의 유선(乳腺)과 외이도에 존재하는 밀랍 분비샘, 포유류의 생식기 근처에 존재하는 향선과 기원이 같다. 이러한 발생학적 동일성은 아포크린샘이 포유류의 생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든다. 실제로 포유류들은 생식기 주변에 존재하는 아포크린샘을 통해 특유의 냄새를 가진 분비물을 배출하며, 이 분비물은 같은 종의 이성을 유혹하는 관능적인 향수로 이용된다. 인간이 향수의 원재료로 더없이 사랑하는 사향, 영묘향, 해리향은 각각 사향노루, 사향고양이, 비버에게 존재하는 일종의 아포크린샘에서 추출한 물질이다. 그리고 각각의 향은 달라도 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만든 향수들은 한결같이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아포크린샘의 존재 이유가 드러난다. 아포크린샘에서 만들어지는 기름진 땀은 생식에 성공하기 위한 일종의 천연 최음제인 셈이다. 아마 사람에게도 오래전 언젠가는 아포크린샘에서 풍기는 냄새가 악취나 두통거리가 아니라 이성을 유혹하는 섹시한 향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리라. ‘털 없는 원숭이’로 태어난 인간이 2차 성징기에 들어서면 겨드랑이와 생식기 주변에만 털이 나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이 부위에 나는 구부러진 털들은 땀의 증발을 막고 냄새를 가둬 더 오랫동안 진한 향기를 머금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문명은 훤히 드러나 있던 겨드랑이와 생식기를 옷으로 덮어 막아버렸고, 원래부터 축축한데다가 바람길까지 막혀버린 부위들은 곧 박테리아의 최적 서식지가 되어 기름진 땀은 이성을 유혹하는 섹시한 향수가 아니라 다가오는 이성조차도 도망가게 만드는 악취의 근원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발달된 시각과 청각은 이성의 매력적인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를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냄새를 무기로 삼은 아포크린샘은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예전만 못해도 체취는 여전히 우리의 본능에 영향을 미친다. 2007년 미국 듀크대와 록펠러대 연구팀은 여성 400명에게 한 남성의 겨드랑이 땀을 흡수시킨 패드를 주고 어떤 냄새가 나는지 설명하게 했다. 그런데 같은 물질에 대해서 여성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패드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리는 여성도 있었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여성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바닐라처럼 달콤한 냄새가 난다고 평가한 여성도 있었다. 다른 연구에서는 냄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여성일수록 만나보지도 못한 남성의 이미지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즉, 냄새가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냄새에 이토록 다양하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연구팀들은 개인의 체취가 유전적 형질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 여성들의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후각 수용체 중 하나인 OR7D4라는 유전자의 차이가 같은 냄새를 다르게 인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아포크린샘 분비물에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산물인 안드로스테논이 포함되어 있다. OR7D4라는 후각 수용체는 이 안드로스테논을 인식하는데, 이 OR7D4의 변이는 안드로스테논을 다른 종류의 냄새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마치 물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OR7D4 유전자가 어떤 변이를 가지느냐에 따라 안드로스테논의 냄새를 다르게 인식했던 것이다. 결국 상대의 체취가 향기로운지 역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냄새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체취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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