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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싸우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등록 2013-10-04 20:12

피부는 신체 보호, 체온 조절, 배설, 호흡 등의 작용을 한다. 표피는 불투과 성질이 있는 케라틴을 함유한 세포들로 이뤄져 방수가 된다. 표피의 특별한 변형물인 머리카락, 손톱과 발톱, 땀샘도 넓은 의미의 피부다. 위키미디어 공용
피부는 신체 보호, 체온 조절, 배설, 호흡 등의 작용을 한다. 표피는 불투과 성질이 있는 케라틴을 함유한 세포들로 이뤄져 방수가 된다. 표피의 특별한 변형물인 머리카락, 손톱과 발톱, 땀샘도 넓은 의미의 피부다. 위키미디어 공용
[토요판/몸] 피부의 힘
▶ 건조한 가을철, 당신의 피부는 안녕하신가요? 피부는 표피-진피-피하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피 이하가 피부의 90%이며, 진피 아래 지방세포층에 든 콜라겐 성분이 피부의 탄력을 결정합니다. 꿀피부, 아기피부, 늘어진 피부. 보기에는 달라도 역할은 모두 같군요. 몸이 입는 한벌의 옷과 같습니다. 온도 변화에 따라 내부의 열을 내보내기도, 외부의 냉기를 막기도 합니다.

생명체의 기본 구조는 세포다. 세포를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막이다. 세포막에 의해 외부와 구별되는, 세포막 내부의 존재가 세포인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대상이 주변과 구분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존재와 존재가 아닌 주변을 갈라주는 경계가 꼭 필요하다.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면 세포 내부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생존을 논할 수 없는 유기물의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세포막으로 구분되는 순간에야 세포 내부는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보장받는 것이다. 세포들이 수없이 많이 모인 인간의 몸에도 동일한 규칙이 적용된다. 몸도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외부와 구별지어주는 경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부의 장기 및 조직들이 생명활동을 할 수 있고,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서의 삶이 가능해지니까.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몸의 경계는 단연코 피부다.

축구선수가 계속 뛸 수 있는 이유

생명체마다 피부의 특성과 구조는 조금씩 다르다. 피부는 부드럽기도 하고 딱딱하기도 하며, 단층의 구조를 지니기도 하고 다층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피부가 아주 단단하게 각질화되어 물리적 자극으로부터 몸을 방어하기도 하고, 때로는 뿔이나 가시의 형태로 변형되어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피하지방층을 극도로 발달시켜 극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게 진화되었는가 하면, 때로는 성장에 맞게 전신의 외피를 벗어버리고 탈피하는 종류도 있다. 이는 생명체의 피부가 각자 처한 환경에 맞게 적응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부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지금과 같은 구조와 기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피부는 동물의 피부에 견줘 털이 성긴 대신 땀샘이 발달했다. 곧 인간의 피부는 열을 모으기보다는 열을 발산시키는 데 더욱 특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를 바탕으로 진화생물학자인 대니얼 리버먼 등은 인간을 가리켜 ‘장거리 사냥에 능한 사냥꾼’이라고 주장한다. 포유류를 모아 놓고 100m 달리기 경주를 한다면 인간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3.2초/100m)는 고사하고, 엄청난 덩치를 지녀 느릴 것만 같은 아프리카코끼리(9.2초)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장거리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동물 가운데 인간만큼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동물들은 적다. 특히나 기온이 높을수록 이 차이는 더욱 커진다.

그 이유는 피부 구조의 차이에서 온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은 대사 과정에서 열을 발생시키고, 그 결과로 체온을 유지한다. 따라서 달리기를 비롯해 격렬한 신체 운동을 하게 되면 그만큼 열이 많이 발생하는데, 체온의 상승은 신체에 무리를 가져온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열을 빨리 식혀야 하는데, 이 방면에 있어서만큼은 인간을 따라올 포유류가 없다. 털이 거의 없고 땀샘이 매우 발달해(사람의 피부엔 약 200만~300만개의 땀샘이 존재한다) 체온을 식히기 가장 적합한 구조의 피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하루에 약 1ℓ 정도의 땀을 흘리는데, 운동 시에는 이 양이 급격히 늘어난다. 예를 들어 축구 선수는 매 경기 약 4ℓ의 땀을 흘리며, 마라토너의 경우에는 완주까지 6ℓ에 가까운 땀을 흘리게 된다. 땀은 훌륭한 냉각제이다. 물은 수증기로 변할 때 기화열을 필요로 하기에 땀의 증발은 체온을 낮추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인간의 피부는 끈질기게 달려 자신보다 더 빨리 달리는 동물들을 사냥하면서 살아왔던 시대의 흔적이다.

동물과 달리 인간의 피부는
털이 거의 없고 땀샘이 발달해
대사·운동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땀으로 내보내 체온을 유지한다

멜라닌 만들어 자외선 차단하고
피하지방으로 추위 막으며
해로운 세균 막아내는 피부
가장 연약해 보이는 부위가
외부의 적에게서 인간을 지킨다

어떤 종류이든 경계는 안과 밖을 가르는 데 결정적이다. 그리고 그 가름은 단지 구분만이 아니라 내부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지닌다. 피부도 마찬가지다. 피부는 외부의 스트레스, 즉 자외선, 추위와 수많은 미생물들로부터 내부 기관을 보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특화되어 있다. 인간의 피부는 자외선을 받으면 피부세포에서 멜라닌을 만들어낸다. 자외선은 세포의 디엔에이(DNA)를 손상시켜 세포를 죽이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두운 색의 멜라닌을 만들어내 피부 안쪽에 일종의 그늘을 만드는 것이다. 선글라스나 챙모자, 양산, 선크림은 모두 피부에 그늘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멜라닌과 그 역할과 기능이 동일하다. 추위 역시 상당 부분 피부가 막아낸다. 그 이유는 피부의 아래쪽에 존재하는 피하지방 덕분이다. 지방은 열전도율이 낮아 몸 안쪽의 체온을 보호하고, 외부에서 냉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 물론 사람의 경우에는 피하지방층이 두껍지 않은데다 피부 자체가 열 발산에 적합한 구조라 극단적인 추위를 피하지방층만으로 막아낼 수 없지만, 북방물개나 고래의 경우에는 피하지방층이 매우 발달하여 극한의 추위에서도 멀쩡히 생존할 수 있다.

남성의 평균 피부면적은 A4 27장 크기

특히나 피부는 인체를 호시탐탐 노리는 미생물들로부터 인체를 지켜주는 든든한 성벽이다. 건강한 피부로는 어떠한 미생물도 들어오지 못한다. 상처가 난 부위가 감염에 유독 취약한 것은 피부가 손상되어 피부가 쌓은 성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피부가 해로운 미생물들을 제어하려고 다른 미생물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피부를 비롯해 외부와 통하는 모든 신체 부위(구강, 장 내부 점막, 여성의 질 등)에는 항상 세균이 득시글하다. 인간의 몸은 외부와 접촉하는 부위를 비워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생물들로 빼곡하게 채워놓는다. 단, 이 세균들은 인체에 해가 없거나 혹은 인체에 유익한 균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을 정상세균총(normal flora)이라고 한다. 이들이 이미 선점하고 있기에 다른 세균들이 달라붙기 힘든데다 비록 해롭지 않은 세균일지언정 세균들이 늘 존재하고 있기에 면역계를 자극하는 기능도 있어서 오히려 피부가 지닌 미생물 방벽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실제로 정상세균총이 파괴되는 경우, 오히려 피부는 해로운 미생물의 침입에 더욱 취약해진다.

피부가 지닌 이러한 방벽의 기능을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들은 이를 더욱 극대화하고자 피부에 다양한 장식을 하곤 했다. 피부에 짙은색 흙을 바르거나 화려한 색의 그림을 그려 넣는 행위는 미용적인 목적보다는 외부로부터 인체를 호시탐탐 노리는 악령들을 퇴치하거나, 이미 몸 안에 들어온 나쁜 것들을 퇴치하는 주술의 의미가 먼저였다. 피부에 영구적 흔적을 남기는 문신 역시도 초기에는 이런 의미를 지녔을 것으로 추측된다. 5000년 전에 살았던 ‘냉동인간 외치’의 몸에서도 57개의 문신이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문신의 위치와 모양 등을 바탕으로 이것이 장식적인 목적이 아니라 치료를 목적으로 새겨졌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시했다. 몸 안에서 통증을 가져다주는 괴로운 악령들이 문신의 영향을 받아 몸 밖으로 나가 다시는 들어오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로 그들은 바늘이 주는 고통을 기꺼이 감내했다는 것이다.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조사한 <한국인의 피부체표면적>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피부 면적은 남성이 1만6810㎠, 여성이 1만4993㎠ 정도라고 한다. 대략 남성은 A4 용지 27장, 여성은 24장 정도 크기의 피부로 온몸을 촘촘히 덮고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해 보이면서도 가장 강인한 조직인 피부로 거친 세상을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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