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몸]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사람 몸에서 산소가 많은 혈액은 동맥으로 흐르고, 산소가 적은 혈액은 정맥으로 흐른다. 동맥은 상수도, 정맥은 하수도라고 보면 된다. 어느 동네를 위한 상수도와 하수도는 나란히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구조를 위한 동맥과 정맥은 나란히 있고, 이름이 같다. 보기를 들어 콩팥을 위한 동맥과 정맥은 나란히 있고, 이름이 콩팥동맥과 콩팥정맥이다.
해부할 때에는 동맥만 남기고, 나란히 있는 정맥을 뗀다. 동맥만 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맥을 떼어야 동맥을 깨끗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중요한 것을 돋보이게 하려고 덜 중요한 것을 희생한다. 뭔가를 얻으려고 다른 뭔가를 잃는 것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생이 정맥을 떼다가 실수로 동맥을 자르기도 한다. 선생은 자른 동맥을 보고 묻는다. “누가 잘랐어?” “제가 동맥을 잘라먹었습니다.” 그날 선생은 다른 일 때문에 기분이 좋다. 따라서 실수한 학생을 꾸짖지 않고, 대신에 우스갯소리를 한다. “자른 것은 그렇다고 치고, 동맥을 먹으면 어떡하냐?”
상수도는 하수도보다 수압이 높다. 먼 동네와 높은 동네까지 수돗물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맥은 정맥보다 혈압이 높다. 온몸으로 혈액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력을 거슬러 심장에서 뇌까지 혈액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혈압이 높은 동맥이 찢어지면 큰 출혈이 일어난다. 정맥이 찢어지면 혈액이 줄줄 새지만, 동맥이 찢어지면 혈액이 분수처럼 솟는다. 따라서 동맥은 다치지 않도록 정맥보다 깊은 곳에 있다.
병원에 가면 정맥주사를 놓는다. 팔에 있는 피부정맥에 주삿바늘을 꽂아서 혈액을 빼기도 하고, 약을 넣기도 한다. 누구든지 자기 팔에서 피부정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피부정맥과 나란히 있는 피부동맥은 볼 수 없다. 얕은 피부밑조직에 피부동맥이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많이 한 남자는 피부정맥이 더 잘 보인다. 커진 근육으로 드나드는 혈액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얇아진 피부밑조직이 피부정맥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솜씨 좋은 간호사 또는 임상병리사는 아기의 가는 피부정맥, 즉 보일까 말까 하는 피부정맥도 찾아서 주삿바늘을 꽂는다. 이런 달인이 운동을 많이 한 남자의 피부정맥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주삿바늘을 던져도 피부정맥에 꽂히겠다.” 가까운 과녁을 본 명사수가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총알을 던져도 과녁에 맞히겠다.”
동맥은 안전하게 근육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근육으로 덮여 있지 않은 동맥도 간혹 있으며, 그 동맥에서는 맥박을 만질 수 있다. 맥박이 만져지는 것은 그 동맥의 혈압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그 동맥이 근육으로 덮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과대학 남학생이 여자친구를 만나면 이 지식을 써먹는다. “맥박을 잴 때, 대개는 엄지손가락 쪽에 있는 노동맥을 만진다. 그런데 새끼손가락 쪽에 있는 자동맥도 만질 수 있다.” 여자친구의 손목을 만지다가 위팔로 간다. “위팔두갈래근의 안쪽에서 위팔동맥을 만질 수 있다. 덕분에 위팔동맥은 혈압을 잴 때 쓴다.” 마침내 수위를 더 높인다. “빗장뼈 위에서 빗장밑동맥도 만질 수 있다. 집중해야 만질 수 있으니까 가만히 있어라.”
그 남학생은 피부정맥도 만지지 않고 못 배긴다. 자기 손가락을 여자친구의 손등 피부정맥에 대고, 몸 쪽과 먼 쪽으로 번갈아 민다. “몸 쪽으로 즉 위로 밀면, 혈액이 피부정맥을 금방 채운다. 그러나 먼 쪽으로 즉 아래로 밀면, 혈액이 피부정맥을 채우지 못한다. 혈액이 몸 쪽으로 흐른다는 증거이다.” 그 남학생은 여자친구의 손을 더듬으면서, 해부학이 얼마나 쓸모 있는 과목인지 깨닫는다. “해부학을 이렇게 써먹을 줄 몰랐다. 뭐든지 배워 두면 써먹을 데가 있구나.”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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