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제작한 돌구슬. 뭔가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LEORE GROSSMAN/사이언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지름 약 8cm, 손에 쥐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야구공 만한 돌구슬.
사냥감을 쓰러뜨리는 돌팔매질용이었을까? 사냥해서 잡은 고기를 짓이기기 위한 분쇄도구였을까? 아니면 놀이용 장난감이었을까?
1960년대 이스라엘 북부 우베이디야의 한 유적지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과학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손도끼 같은 일반 석기와 함께 석회암 돌구슬이 600여개나 쏟아져 나왔다.
1959년 발견된 이 유적지는 당시 출토된 유골과 석기로 보아 14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호모 에렉투스의 유적지로 추정된 곳이다.
온갖 궁금증과 추측만 자아냈던 이 유물은 당시 인류의 조상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 고고학연구소 연구진은 이 돌구슬의 제작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대칭 구조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만든 구체로 보인다고 공개학술지 ‘왕립학회 오픈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돌구슬의 표면 각도와 곡률을 측정하고 계산한 방법. 왕립학회 오픈사이언스
돌구슬에서 찾아낸 특징들
연구진은 새로운 입체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지름 8cm 정도의 돌구슬 150개의 표면에 난 각도를 측정하고 곡률을 계산했다. 이어 이 돌구슬을 만드는 과정을 재구성해본 결과 몇가지 특징을 찾아내고, 이를 근거로 이 돌구슬은 의도적으로 만든 공예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각각의 돌 구슬 표면은 상대적으로 큰 기본 표면과 이를 둘러싼 작은 표면으로 이뤄져 있었다. 돌구슬 모양이 완전한 구체에 가까울수록 기본 표면의 면적은 작았다. 이는 이 돌구슬이 큰 돌을 깨서 얻은 돌 조각의 평평한 부분의 가장자리를 깎아서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둘째, 돌구슬의 표면 질감이 거칠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적인 과정에서 생성된 형태가 아니라는 걸 뜻한다. 예컨대 강바닥에서 발견되는 돌은 물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표면이 매우 매끄럽다. 모양도 둥그런 공 모양이 아니다. 반면 이 돌구슬은 수작업을 거친 듯 표면이 거칠고, 거의 완벽한 공 모양을 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앙투안 뮬러 연구원은 “140만년 전의 호미닌은 속으로 공 모양을 개념화한 뒤, 이에 맞춰 돌 모양을 만들 능력이 있었다”며 “이를 위해선 상당한 계획과 뛰어난 손재주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시기에 나온 다른 석기와 돌도끼와 비교할 때 이 돌구슬은 당시 인류의 조상이 대칭과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공모양의 돌구슬이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지들. 오른쪽이 이번에 분석한 돌구슬이 발견된 이스라엘 우베이디야 지역이다. 왕립학회 오픈사이언스
무엇을 위해 만들었을까
연구진은 그러나 왜, 무엇을 위해 이 돌구슬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지 못했다.
영국 리즈베켓대의 앤드류 윌슨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에 “돌구슬은 망치보다는 발사체였을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보면 이런 돌들은 훌륭한 사냥 무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구체가 던지는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2016년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누가 만들었든 열심히 공을 들여 만든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2020년 발표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의 논문에선, 돌구슬에 붙어 있는 뼈 및 지방 잔류물을 근거로 골수 추출을 위해 뼈를 분쇄하는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최대 200만년 전 것으로 보이는 돌구슬이 발견된 바 있다. 앞으로 추가 분석을 통해 만약 이 돌구슬도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난다면 인류는 아주 오래 전 조상 때부터 대칭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같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98/rsos.230671
The limestone spheroids of ‘Ubeidiya: intentional imposition of symmetric geometry by early hominin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