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없이도 배설물을 완전히 아래로 흘려보내는 3D 프린팅 변기가 개발됐다. 화중과학기술대 동영상 갈무리
250여년 전 탄생한 오늘날의 수세식 변기는 사람의 배설물과 관련한 생활 위생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줬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수세식 변기는 ‘물 먹는 하마’란 눈총을 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양변기 물을 내리는 데만 하루 1410억ℓ 이상의 물이 소비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아프리카 인구 전체 물 소비량의 6배에 해당한다.
현재 일반 가정에서 쓰는 양변기의 물 탱크 용량은 6~10ℓ다. 크고 작은 용변을 보고 한 번 물을 내리면 그만큼의 물을 하수로 버리게 된다는 얘기다.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하수의 최대 배출원이 바로 양변기다. 절수형 양변기들이 개발돼 출시되고 있지만 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지는 못한다.
중국 우한의 화중과학기술대 연구진이 물 없이도 모든 배설물을 남김없이 흘려보내는 변기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첨단공학재료’(Advanced Engineering Material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우선 플라스틱과 물에 젖지 않는 ‘소수성 모래’ 입자를 섞은 뒤, 이 물질에 레이저를 쏘아 두 물질이 완전히 융합되도록 했다. 이어 이 융합재료를 3D 프린터에 넣어 층층이 쌓는 방식으로 실물 크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변기를 제작했다. 그런 다음 실리콘 오일로 도포해 아주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었다. 실리콘 오일은 기계 감마제나 변압기 오일로 쓰는 액체 상태의 규소 수지다.
실험 결과 흙탕물, 우유, 요구르트, 꿀, 합성 배설물이 모두 새 변기에 전혀 달라붙지 않았다(왼쪽부터). 화중과학기술대 제공
사포로 문지르고 칼로 흠집 내도 ‘주르르’
3D 프린팅 변기의 표면 윤활력을 시험한 결과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흙탕물과 우유, 요구르트, 꿀, 전분으로 만든 젤, 합성 배설물을 변기에 투척했지만 어떤 물질도 변기에 전혀 달라붙지 않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특히 사포로 변기의 표면을 1000번 이상 문지른 뒤에도 표면의 윤활력이 상당히 유지됐다. 심지어 커터 칼로 흠집을 내도 윤활력엔 이상이 없었다. 연구진은 “이는 표면에 도포한 윤활유가 변기 표면의 안쪽까지 침투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도 표면에 윤활 처리를 한 미끄러운 변기가 나온 적이 있지만 내구성이 없는 게 문제였다.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새 변기는 내구성이 큰 만큼 기차나 공중화장실처럼 사용자가 많은 장소에 설치할 경우 물을 절약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진은 또 물 내리는 양이 줄어들면 처리 시설로 운반하는 하수가 줄어드는 만큼 운송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 알토대의 윌리엄 웡 교수(재료과학)는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변기의 내구성이 뛰어나고 사용되는 윤활유도 환경 친화적이지만 레이저 제조 기술을 현재의 변기 생산 공정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웡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 절약하려는 동기가 강하다면 공급망을 탄력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는 벤처기업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명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02/adem.202300703
Abrasion-Resistant and Enhanced Super-Slippery Flush Toilets Fabricated by a Selective Laser Sintering 3D Printing Technology.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