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표면의 대폭발로 분출된 고에너지 입자가 지구로 날아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생명체의 필수 재료인 단백질의 구성 물질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나사 제공
지구 생명의 역사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과학 논쟁 주제다.
그동안 제시된 주장들은 대체로 초기 지구의 단순한 원소들이 특정한 조건에서 화학적으로 결합해 생명의 기초 물질을 만든 뒤 여러 복합적인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는 가설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됐는지에 대해선 여러 이론이 있다.
미 항공우주국(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블라디미르 아이라페티안 박사(천체물리학)가 이끄는 미-일 공동연구진이 실험 결과를 근거로, 태양 표면의 강력한 폭발이 지구에 영향을 미쳐 생명체 탄생을 촉발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국제학술지 <라이프>에 발표했다.
태양 표면에서 방출된 입자가 초기 지구의 대기 입자들과 충돌하면서 단백질과 유기체의 기본 구성요소인 아미노산과 카르복실산(아미노산의 전구체)을 만들어냈고, 이 유기분자들이 잇따라 결합하는 과정을 거쳐 생명체 탄생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단백질과 세포 생명체의 재료 물질인 아미노산이 어떻게 생성됐느냐에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에서 비롯된 ‘따뜻한 연못 가설’(warm little pond hypothesis)이다. 아직 열이 식지 않은 초기 지구의 따뜻한 연못에서 번개, 열 등에 의해 활성화된 화학물질들이 어우러져 농축되면서 유기분자를 형성했고, 이것이 생명체 탄생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생전의 스탠리 밀러 교수.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제공
이 가설은 1953년 미국 시카고대의 스탠리 밀러 박사가 원시 지구의 조건을 재현하는 실험을 통해,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확인함으로써 유력한 가설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밀러는 실험실에서 밀폐된 용기에 메탄, 암모니아, 물, 수소 분자(지구 초기 대기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추정되는 가스)를 채운 뒤 반복적인 전기 스파크로 번개 효과를 일으켰다. 그런 다음 일주일 후 용기의 내용물을 분석한 결과 20가지 아미노산이 형성된 것을 발견했다.
초기 지구 대기의 구성 물질에서 복잡한 유기분자가 합성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성공적 실험이었다.
그러나 지난 70년 사이 초기 지구에 대한 정보가 더욱 쌓이면서 지금은 이런 해석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초기 지구의 대기엔 밀러 실험의 주된 재료였던 암모니아(NH3)와 메탄(CH4)이 생각만큼 풍부하지 않았다. 대신 지구의 대기는 이산화탄소(CO2)와 질소 분자(N2)로 가득차 있었다. 두 가스는 분해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또 이 물질들 역시 아미노산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양은 메탄과 암모니아에 비해 매우 적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해졌다.
그렇다면 초기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으로 쓰일 수 있는 아미노산을 만든 에너지원은 뭐였을까?
이전 연구에서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에 떨어진 운석의 충격파나 태양의 자외선을 후보로 꼽았다. 이번 연구진은 케플러우주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이용해 그 에너지원이 태양 표면에서 돌발적으로 다량 방출되는 태양 입자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지구가 생긴 지 첫 1억년 동안 태양이 내는 빛은 지금보다 30% 더 약했다. 그러나 오늘날 약 100년에 한 번꼴로 있는 슈퍼플레어(대폭발)는 당시엔 3~10일마다 발생했다. 이 슈퍼플레어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입자를 분출해 지구 대기에 쏟아부으면서 활발한 화학반응을 촉발했다.
2016년 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블라디미르 아이라페티안 박사가 이런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자 일본의 고바야시 겐세이 요코하마국립대 교수(화학)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태양계 외부에서 오는 입자인 은하 우주선이 초기 지구 대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연구하던 중이었다.
두 사람은 초기 지구 대기의 구성을 재현한 기체 혼합물을 만들었다. 이산화탄소와 질소 분자, 물을 주된 요소로 한 뒤 여기에 다양한 양의 메탄을 결합했다. 이어 이 기체 혼합물에 태양 입자를 본뜬 양성자를 쪼이거나 번개를 본뜬 전기 스파크를 일으켜 밀러 실험과 비교했다.
그 결과 메탄 비율이 0.5% 이상인 실험 기체에 양성자를 쪼인 혼합물에서는 아미노산과 카르복실산이 유의미하게 검출됐다. 그러나 스파크를 일으킨 기체에선 메탄 비율이 15%를 넘어야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 또 스파크가 만든 아미노산 생산량은 양성자가 만든 것의 100만분의 1에 불과했다.
양성자는 또 스파크보다 아미노산의 전구체인 카르복실산도 더 많이 생성했다. 연구진은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하다면 태양 입자는 번개보다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수십년 전 밀러는 초기 지구에서도 번개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흔했을 것으로 가정했지만, 태양이 30% 더 어두웠다면 번개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따라서 번개보다는 태양 입자가 생명체 촉발에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3390/life13051103
Formation of Amino Acids and Carboxylic Acids in Weakly Reducing Planetary Atmospheres by Solar Energetic Particles from the Young Sun.
Life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