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마트 몬스’의 3D 이미지. 미국의 마젤란과 옛소련의 베네라 탐사선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완성한 사진이다. 나사 제공
동트기 전 동쪽 하늘에서 빛날 땐 ‘샛별’, 해가 진 뒤 서쪽 하늘을 밝힐 땐 ‘개밥바라기’.
우리 조상들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 금성을 이렇게 불렀다. 금성은 밤하늘에서 태양, 달에 이어 세번째로 밝게 빛나는 천체다. 그래서 예로부터 아침 일찍 일을 나가거나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길동무 노릇을 했다. 그만큼 인류에게 친숙한 천체로, 무한한 상상력의 무대가 되어 숱한 전설과 신화를 낳았다. 현재 태양계 탐사의 중심은 화성이지만 과거 행성 탐사를 시작한 1960년대에 가장 먼저 탐사선을 보낸 대상도 금성이었다.
금성은 태양계 행성 가운데 지구와 질량과 크기, 밀도가 가장 비슷한 천체다. 반지름이 6052km로 지구(6371km)보다 불과 319km 작다. 중심부에 철 성분의 핵이 있고 이를 암석 맨틀이 감싸고 있는 등 내부 구조도 비슷하다. 이는 지구와 비슷한 정도의 열을 갖고 있다는 걸 뜻한다. 그렇다면 지구와 거의 비슷한 지질학적 메카니즘이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 가운데 하나가 화산 분출이다. 지구에선 연 평균 50여개의 화산이 분출한다. 과학자들은 금성에서도 여전히 화산 활동이 진행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동안 명확한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
금성의 탐사 환경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이다. 대기의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인 금성은 강력한 온실 효과로 인해 표면 기온이 460도에 이르고 기압은 90배가 넘어 탐사선을 착륙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대기층이 두껍고 조밀해 궤도선에서 금성 표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녹록지 않다. 이는 1970년대 이후 금성을 탐사 후순위로 밀어내는 요인이 됐다.
마젤란과 파이오니어금성궤도선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작성한 금성 표면 지도. 마트 몬스 화산은 검은색 네모 안에 있다. 나사 제공
그런데 최근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났다. 미국 페어뱅크스 알래스카대 과학자들이 30년 전의 금성 관측 데이터를 다시 살펴보다가 최근까지도 금성에서 화산 활동이 일어났다는 증거를 처음으로 발견해 1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제54차 달행성과학 회의에서 발표했다.
이번 발견으로 금성은 지구, 목성 위성 이오와 함께 활화산이 있는 태양계 천체군에 합류하게 됐다.
연구진이 들여다본 것은 1990년 8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금성 궤도를 돌았던 마젤란 탐사선이 보내온 레이더 관측 자료다. 마젤란은 금성 표면 전체를 촬영한 최초의 탐사선이다. 마젤란은 레이더 기술을 이용해 최대 100미터 해상도의 금성 표면 지도를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금성 표면의 80% 이상이 용암류로 덮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용암이 언제 분출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간간이 구름 사이로 들여다본 결과 암석의 나이가 어리고 대기중 이산화황 수치의 변화도 화산 활동이 있었음을 시사했으나 확실한 증거는 되지 못했다.
마젤란 탐사선이 촬영한 금성 표면. 왼쪽 `마트 몬스' 화산의 검은색 직사각형이 이번에 화산 활동 증거가 발견된 곳이다(왼쪽). 1991년 2월(A사진)과 10월(B사진) 사이에 ‘마트 몬스’ 정상 북쪽의 활화산 분출구가 커지고 모양도 바뀌었다(오른쪽). 나사 제공
연구진은 마젤란이 금성 궤도를 돌면서 시차를 두고 찍은 표면 관측 사진을 200시간에 걸쳐 비교한 끝에 오랜 궁금증을 풀 단서를 찾았다. 연구진이 주목한 지역은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추정되는 적도 인근의 고원지대 ‘아틀라 레지오’(Atla Regio) 내의 최대 화산 ‘마트 몬스’(Maat Mons)였다. 연구진은 높이 9km로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이 화산에서 마그마가 지표로 흘러나온 통로로 추정되는 곳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2월에 찍은 마트 몬스의 분출구는 크기가 2.2㎢였으나 8개월 뒤엔 4㎢로 두 배 커졌다. 모양도 원형에서 콩팥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연구진은 이는 분출된 마그마가 흘러넘친 것으로 해석했다. 연구를 이끈 로버트 헤릭 교수(행성물리학)는 데이터 분석 작업에 대해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현재 유일한 금성 탐사선인 일본의 아카츠키가 2016년 12월 자외선으로 촬영한 금성. 대기층이 두꺼워 표면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제공
연구진은 이어 어떤 지질학적 상황에서 이런 모양이 나타날 수 있는지 컴퓨터 모델을 돌려봤다. 그 결과 화산 분출만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 화산 활동은 폭발이 아닌 분출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2018년 하와이 킬라우에아 화산 분출이 바로 이런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관측 데이터는 적어도 1990년대까지 금성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지금도 정기적으로 분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금성이 생물학적으론 죽은 천체일지 몰라도 지질학적으론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헤릭 교수는 “짧은 관측 기간 동안 이를 목격한 것은 마젤란이 엄청나게 운이 좋았거나 금성이 지구처럼 정기적으로 분출하는 많은 화산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발견으로 금성에서도 화산 활동이 진행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면서 앞으로 이뤄질 금성 탐사에서 새로운 화산 분출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빈치플러스 탐사선이 금성 표면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모습(상상도). 나사 제공
현재 추진 중인 금성 탐사 계획은 3개다.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베리타스(VERITAS)와 다빈치플러스(DAVINCI+), 유럽우주국의 인비전(EnVision)이다.
궤도선인 베리타스와 인비전에는 마젤란보다 10배 이상 선명한 영상레이더를 탑재할 예정이다. 이를 이용하면 두꺼운 구름에 가려져 있는 금성의 지형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다빈치플러스는 아예 궤도를 벗어나 낙하산을 타고 금성 표면으로 내려간다. 1시간에 걸친 낙하 과정에서 대기 성분을 수집해 검사한다. 다빈치플러스는 2029년, 베리타스는 2032~2034년, 인비전은 2035~2039년에 발사할 계획이다.
과학자들이 이렇게 금성 탐사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뭘까?
나사 수석연구원 제임스 가빈은 2021년 다빈치플러스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자료에서 “금성은 기후 변화, 거주 적합성의 진화, 그리고 행성이 바다를 잃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기록을 읽을 수 있는 ‘로제타 스톤’”이라고 말했다. 로제타 스톤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기록된 암석이다. 한마디로 오늘의 금성에서 지구의 미래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는 것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