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구진이 수컷의 체세포로 난자를 만든 뒤 다른 정자와 수정시켜 새끼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픽사베이
수컷 동물의 체세포로 난자를 만들어 새끼까지 출산하는 생명공학 기술이 선을 보였다. 암컷 체세포로 난자를 만든 적은 있으나 수컷 세포로 난자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일본 오사카대 하야시 가쓰히코 교수(생식유전학)는 지난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3회 국제 인간 게놈 편집 학술회의에서 수컷 생쥐의 세포로 난자를 만든 뒤 다른 수컷의 정자와 수정시켜 새끼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하야시 교수의 연구 성과는 1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 발표됐다.
‘네이처’는 이 기술을 인간에게 적용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터너증후군 등으로 인한 불임을 치료하는 것과 함께 동성부모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길을 닦는 초기 개념증명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동성부모 생식 기술이 처음 선보인 건 아니다. 2018년 중국의 한 연구진은 생쥐의 정자 또는 난자를 이용해 만든 배아줄기세포에서 두 아빠 또는 두 엄마를 둔 새끼를 탄생시킨 바 있다. 두 엄마에서 태어난 새끼는 정상적으로 성장했고 그 중 일부는 새끼까지 낳은 반면, 두 아빠에서 태어난 새끼는 며칠밖에 생존하지 못했다.
하야시 교수가 이번에 선보인 기술의 핵심은 수컷 생쥐의 체세포를 이용해 난자를 만든 것이다. 연구를 이끈 하야시 가쓰히코 교수는 “포유류의 수컷 세포에서 난모세포를 만든 첫 사례”라며 “10년 안에 사람의 남성 피부 세포를 이용해 사람의 난자를 만드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야시 교수는 2016년 암컷 생쥐의 피부세포로 난자를 만들어 새끼 생쥐를 탄생시킨 바 있다. 하야시 가쓰히코 교수 제공/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 인용
이번 연구는 생쥐 수컷의 XY 염색체 조합을 암컷의 XX 조합으로 바꾼 뒤 난자로 변형하는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연구진은 우선 수컷 생쥐의 꼬리 피부 세포를 채취해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바꿨다. 이어 이 줄기세포를 배양하면서, 그 과정에서 Y염색체가 소실된 XO염색체를 골라냈다. 이런 세포가 나타나는 비율은 약 6%였다.
그런 다음 세포 분열을 방해하는 화학물질 리버신으로 세포를 처리해 X염색체 복제의 효율을 높였다. 하야시 교수는 “X염색체를 복제하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최고의 기술이었다”며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해서 얻은 XX염색체 세포를 난소 오가노이드(미니 장기)에서 배양해 원시생식세포로 유도 분화시킨뒤 이를 난자세포로 키워냈다. 마지막으로 이 난자 세포를 수정시킨 다음, 여기서 생성된 배아를 대리모인 암컷 생쥐의 자궁에 이식했다.
그러나 이식된 배아의 생존율은 1%로 매우 낮았다. 이식된 배아 630개 가운데 7개만이 새끼로 태어났다. 생쥐 새끼들은 정상적으로 자라 다시 새끼를 낳았다.
연구진의 다음 목표는 실험실에서 인간 세포를 이용해 난자를 만드는 것이다. ‘네이처’는 그러나 인간의 경우엔 성숙한 난자를 생산하는 데 생쥐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기술을 인간 세포에 적용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양 기간이 길다는 건 그 기간에 세포가 원치 않는 유전적 변화를 일으킬 위험이 높아진다는 걸 뜻한다. 조지 데일리 하버드 의대 교수는 ‘가디언’에 “하야시 교수의 연구는 매력적이지만 우리는 아직 인간 생식세포 생성의 독특한 생물학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면 대리모의 도움을 받아 남성 부부 또는 독신 남성이 자신들의 생물학적 자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야시 교수는 그러나 “사회가 이를 수용할지 여부는 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3월15일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 내용을 토대로 실험과정을 다시 고쳐 썼습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