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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과학

먼지가 되어서라도 너의 곁에…토성 고리 정체는 ‘부서진 위성’

등록 2022-09-20 10:02수정 2022-09-20 10:58

1억6천만년전 부서진 위성 입자가 형성
토성에 가까워지다 중력 힘에 산산조각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위성이 지금의 토성 고리와 자전축 기울기(26.7도)를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위성이 지금의 토성 고리와 자전축 기울기(26.7도)를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태양계에서 목성 다음으로 큰 행성 토성의 가장 큰 특징은 적도 둘레에 매우 크고 선명한 고리가 있다는 점이다. 목성과 천왕성, 해왕성에도 고리가 있기는 하지만 토성에 비할 바는 못된다. 토성 적도 바깥쪽으로 6600~12만km에 걸쳐 있는 고리는 평균 두께 20m로 주로 얼음 입자들로 구성돼 있다.

얇은 레코드판을 연상시키는 토성의 고리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1610년 갈릴레이가 자신이 제작한 망원경 관측을 통해 처음 발견한 토성 고리의 수수께끼가 400여년만에 풀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과학자들은 토성 궤도를 돌던 한 얼음 위성이 1억6천만년 전 다른 위성의 영향으로 궤도가 바뀌어 토성에 너무 가까워지는 바람에 토성 중력에 의해 부서지면서 토성의 고리를 형성하게 됐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가상의 위성에 크리살리스(Chrysalis, 번데기라는 뜻)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이언스’에 논평 글을 기고한 마랴메 엘 무타미드 코넬대 교수(행성역학)는 “토성 고리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창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과학자들은 오랜 기간 토성 고리의 형성 시기를 놓고 논쟁을 벌여 왔다. 애초엔 45억년 전 태양계 초기에 형성됐다는 가설이 우세했다. 그러나 2017년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가 보내온 관측 데이터는 그렇게 오래 전에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토성 고리의 질량이 무겁지 않았고 물얼음 상태가 비교적 깨끗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나사 과학자들은 당시 토성 고리의 형성 시기를 1억5천만년 전 ~ 3억년 전 사이로 추정했다.

탐사선 카시니호가 토성을 탐사하고 있는 상상도.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탐사선 카시니호가 토성을 탐사하고 있는 상상도.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토성 자전축 기울기의 비밀

그러나 카시니의 방대한 관측 자료로도 고리의 형성 원인은 알아낼 수 없었다. 특히 토성 고리의 형성 시기가 3억년 이내라면 거대한 혜성이나 소행성이 토성 중력장에 잡힐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토성에 접근한 소행성이나 혜성을 고리 형성의 원인으로 보는 이전 가설의 토대가 무너진 셈이다.

연구진은 토성의 자전축 기울기가 26.7도라는 데 주목했다. 목성과 토성은 똑같은 가스행성이지만 자전축 기울기가 3도에 불과한 목성과 달리 토성의 자전축은 옆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어떤 연유로 이렇게 기울기가 차이가 많이 나게 됐을까? 토성에는 83개에 이르는 많은 위성이 있다. 이 위성들은 토성을 공전하면서 서로 힘을 주고 받는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이 힘과 함께 자전축의 세차운동(회전축이 일정하게 흔들리는 현상)이 비슷한 해왕성과의 공명(또는 중력 결합)이 합쳐지면서 토성의 자전축 기울기를 증가시킨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타이탄 위성이 1년에 11cm씩 토성에 멀어진다는 카시니호의 관측 데이터를 대입해본 결과 해왕성과의 공명 현상은 이제는 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으로 가상의 위성 ‘크리살리스’를 떠올렸다. 이어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리 형성의 기원까지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찾아냈다.

토성 반지름의 43배 되는 거리, 즉 타이탄(가장 큰 위성)과 이아페투스(세번째로 큰 위성) 사이에서 토성을 공전하는 이아페투스 크기만한 위성이 이 시나리오의 주인공이다.

토성의 위성인 이아페투스(지름 1470km, 왼쪽 아래)의 크기를 지구, 달과 비교한 사진. 달 지름의 40%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토성의 위성인 이아페투스(지름 1470km, 왼쪽 아래)의 크기를 지구, 달과 비교한 사진. 달 지름의 40%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390회 중 17회 일어날 확률

연구진이 컴퓨터로 모델을 390회 돌려본 결과, 이 위성이 약 1억6000만년 전 다른 위성들과의 복잡한 중력 상호작용 끝에 어느 순간 궤도에서 이탈해 타이탄이나 이아페투스와 충돌하거나 토성 시스템 밖으로 퇴출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시뮬레이션 중 17회는 위성이 토성을 스쳐 지나가면서 토성 중력의 힘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부서진 얼음 위성 파편들이 흩어지면서 고리를 형성했을 수 있음을 뜻한다. 연구진은 부서진 물질의 99%는 토성의 대기로 떨어지고 나머지 1%가 행성의 고리를 생성한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의 일원인 MIT 대학원생 롤라 드보크는 ‘사이언스’에 “17번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기에 충분한 횟수”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위성의 존재를 통해 토성 자전축 기울기의 수수께끼도 풀었다. 이에 따르면 토성은 해왕성 및 타이탄 등 다른 위성과의 중력 상호작용에 의해 기울기가 계속 증가해오다 이 위성이 사라지면서 지금의 기울기로 고정됐다. 만약 이 위성이 그대로 있었다면 토성의 자전축 기울기는 36도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토성의 고리. 위쪽은 가시광선 사진, 아래쪽은 전파 관측 사진.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토성의 고리. 위쪽은 가시광선 사진, 아래쪽은 전파 관측 사진.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하나의 가설로 여러 수수께끼 동시 해결

연구에 함께 참여한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 프랜시스 님모(행성과학) 교수는 “이번 연구로 지금까지 별개로 여겨져왔던 두 가지 수수께끼, 즉 토성의 기울기와 고리의 기원을 하나의 이론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전폭적인 지지는 유보하고 있다.

엘 무타미드 교수는 “훌륭한 설명이지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야 가능한 일”이라며 “좀 더 상세한 역학 모델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스웨스트연구소 류크 돈스 연구원(행성과학)은 온라인 미디어 ‘기즈모도’에 “크리살리스란 위성을 동원함으로써 설명은 되지만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 스콧 트레마인 교수(천체물리학)는 일간 ‘가디언’에 이번 연구가 “대담하지만 그럴듯한 하나의 가정”을 동원해 토성의 몇가지 퍼즐을 풀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분의 위성이 한때 존재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하나의 가설로 퍼즐 몇가지를 설명한다는 건 매우 좋은 투자 수익”이라고 덧붙였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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