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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연간 44시간의 수면을 앗아갔다

등록 2022-06-14 10:07수정 2022-06-14 16:41

2100년엔 50~58시간으로 증가할 듯
개도국·여성·노인 수면 손실량 더 커
수면도 기후변화 영향 불평등 못피해
기후변화에 따라 밤 기온이 올라가면서 평균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픽사베이
기후변화에 따라 밤 기온이 올라가면서 평균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픽사베이

사람은 영장류 동물보다 잠을 덜 잔다.

2015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의 수면 시간은 하루 9.5시간, 솜털머리타마린 원숭이는 하루 13시간이다. 심지어 하루 17시간을 자는 원숭이도 있다(‘자연인류학 아메리칸저널’, 2018.2.14.). 반면 산업사회 이전 사람들의 수면시간은 7~8.5시간이었다. 체질량과 뇌의 크기, 식습관 등을 토대로 한 영장류 수면 예측 모델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9.5시간 정도는 자야 정상이라는 계산 수치가 나온다고 한다.

인간의 수면시간이 이렇게 짧아진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수면 가설이다.

데이비드 샘슨 토론토대 교수(인류학)는 ‘인류학 연간리뷰’(2021.7.13.)에서 두 가지 근거를 들었다. 하나는 잠자는 동안 일어날지도 모를 포식자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생활은 아마도 인류의 조상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시작됐을 것이다. 이는 잠을 자는 도중에도 안구운동이 활발한 렘수면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인간을 진화시켰다. 다른 하나는 부족한 수면은 낮잠을 통해 보충했다는 것이다. 집단생활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일부가 보초를 서는 동안 일부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생존환경이 바뀌면서 일어난 생활리듬의 변화였다. 샘슨은 교대로 수면을 취할 수 있게 해준 집단생활 시스템을, 달팽이 껍질에 비유해 사회적 껍질이라 불렀다.

수천년 동안 이어져 온 수면 리듬은 산업화로 다시 크게 흔들렸다. 경제 활동량이 급증하고 밤을 밝히는 전기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수면 시간이 크게 압박을 받았다. 두번째 수면 패턴 변화를 부른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닌 인간 사회 내부의 요인이었다.

‘자연인류학 아메리칸저널’(2018)/BBC에서 인용
‘자연인류학 아메리칸저널’(2018)/BBC에서 인용

취침시간 늦추는 쪽으로 작용

산업화 250여년만에 인류가 또다른 수면 변화 국면에 들어서고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가 나왔다. 이번엔 기후변화가 기폭제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사람들의 수면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진은 세계 각 지역의 수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구 온난화가 연간 평균 44시간의 잠을 앗아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하나의 지구’(One Earth)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우선 2015년 9월~ 2017년 10월 68개국 4만8천명의 수면 시간이 기록돼 있는 손목밴드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어 740만건에 이르는 이들의 수면 데이터와 해당 지역 날씨 데이터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평소보다 더운 밤에는 사람들의 수면시간이 짧아지는 걸 확인했다. 취침 시간은 늦고 기상 시간은 빨랐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잃어버리는 수면시간은 연간 평균 44시간에 이른다”고 밝혔다. 수면 잠식은 주로 잠에서 깨는 시간을 앞당기는 것보다는 잠에 빠져드는 시간을 늦추는 형태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또 온실가스 배출량을 통제하지 않을 경우 2100년에는 수면 손실량이 연간 58시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당히 줄여도 50시간의 수면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평균을 웃도는 기온이 수면을 잠식한다는 걸 전 지구 차원에서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더운 지역 사람들의 수면 손실 더 커

기후변화 영향의 불평등은 수면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면 손실의 정도는 개발도상국 주민, 여성, 노인이 더 심했다. 밤 최저기온이 1도 상승할 때 여성의 수면 손실량이 남성보다 4분의1 더 많았다. 65살 이상 노인은 젊은이의 2배, 개도국 주민은 선진국 주민의 3배였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피하지방이 많아 온도 상승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고령자는 상대적으로 수면 시간이 짧고 체온 조절력도 약하다. 특히 개도국 주민들은 선풍기나 에어컨 같은 냉방기 사용률이 낮아 수면 손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이는 더운 기후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면 잠식 정도가 더 심하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수면 부족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부족한 수면 보충을 위해 낮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상에 변화를 주는 행동을 하지 못했다. 계절 변화에도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예컨대 초여름 열대야보다 늦여름 열대야에서 좀 더 쉽게 잠이 들었다.

수면 부족은 몸의 활력을 떨어뜨릴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이는 업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사고 위험을 높인다. 비만, 우울증, 불안감, 심부전, 치매 등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더위 역시 사망과 입원 위험을 높이고 일의 능률을 떨어뜨린다. 연구진은 수면 부족이 더위가 건강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부르는 주요 메카니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수면 추적 손목밴드를 착용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 더위의 영향을 덜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기후변화의 수면 영향은 과소평가됐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연구에 사용한 데이터는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도 포함돼 있지만 주로 고소득 국가의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 추정치는 보수적일 가능성이 매우 커 실제와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9년 베를린에서 열린 기후파업 시위에서 연설하고 있는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행동가 그레타 툰베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2019년 베를린에서 열린 기후파업 시위에서 연설하고 있는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행동가 그레타 툰베리. 위키미디어 코먼스

청소년들 “기후 불안으로 잠도 설쳐요”

2년 전 영국 ‘비비시’가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8~16살 아동·청소년의 상당수가 기후 변화에 불안감을 표명했다. 5명 중 3명은 기후변화가 자신의 삶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으며, 5명 중 1명은 그런 걱정으로 수면과 식생활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국제시민운동단체 아바즈가 지난해 9월 발표한 국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개국 16~25살 청년의 거의 절반(45%)이 기후 불안으로 자신의 일상이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응답자의 75%는 “미래가 두렵다”고 했고, 58%는 정부가 “나와 미래 세대를 배신하고 있다”고 했다. 아바즈는 이렇게 높은 수준의 고통과 배신감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성세대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놓고 우물쭈물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자녀와 후손들은 더워지는 밤에 근심까지 쌓여 갈수록 더 뒤척이는 밤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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